디어 마이 프렌즈(2016, tvN)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산다는 건 늘 뒤통수를 맞는 거라고. 인생이란 놈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어서 절대로 우리가 알게 앞통수를 치는 법은 없다고. 나만 아니라, 누구나 뒤통수를 맞는 거라고. 그러니 억울해 말라고. 그러니 다 별일 아니라고. 하지만 그건 육십 인생을 산 어머니 말씀이고 아직 너무도 젊은 우리는 모든 게 다 별일이다.
- <그들이 사는 세상> 中
노희경 작가는 지오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했었다. 그러나 그녀는 <디어 마이 프렌즈>를 통해 이렇게 다시 말한다. 인생은 언제나 별일이라고. 나이가 많으나 적으나 인생은 늘 별꼴이라고. 나이가 든다고 해서 뒤통수치는 인생에 익숙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나이가 든다고 상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고. 그러니 산다는 것은 언제까지나 참으로 전쟁 같은 일이라고.
이 드라마는 자신의 인생 경험치가 어디까지인지에 따라 다르게 읽힐 것이다. 그래서 오로지 자식이고, 오로지 젊은이인 지금의 나는 딱 그만큼만 이 드라마를 헤아릴 수 있다. 아마도 시간이 지나 나도 부모가 되고, 나이가 들면 또 다른 방식으로 이 드라마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인생은 부모와 자식 간의 전쟁이고, 또한 늙은이들과 젊은이들 간의 전쟁이다."
이 작품을 설명하는 가장 명료한 대사라고 생각한다. 인생은 끝없는 전쟁인 것이다. 부모와 자식의 시간은 영영 평행선이다. 부모가 젊을 때 자식은 너무나 어리다. 나날이 자식이 젊어질 때 부모는 나날이 늙어간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은 가끔 한 몸처럼 가깝지만 늘 다른 은하계에 속한 것처럼 멀다. 자식이면서 동시에 부모가 되는 시기쯤 되어야 결국은 나의 부모와 내가 하나의 은하계였다는 것을, 늘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자식의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디어 마이 프렌즈>는 기꺼이 부모 자식 사이에 놓인 평행선의 아득함을 그렸다. <디마프>에는 젊은 완과 민호가 보는 엄마도 있지만, 난희와 정아가 생각하는 엄마도 있다. 난희와 정아는 늙은 부모이면서, 늙은 자식이기도 한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자식의 숙명과 부모의 숙명을 모두 겪어 본 이들이다. 그런 그들에게도 삶이란 아직도 서툰 것이어서, 나이 든 자신의 부모와는 화해해나가면서도 젊은 자식들과의 소통은 여전히 어렵다.
늙은이들과 젊은이들은 어떤가. 기본적으로 '사랑'과 '연민'이 바탕이 될 수 있는 부모와 자식 관계보다 훨씬 어려운 것이 늙은 꼰대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의 갈등이 아니겠는가. '저런 어른은 되지 말아야지.' 그런 다짐을 하게 만드는 이들이 분명 있는 법이다. 반대로 정말 어처구니없는 젊은이들도 분명 있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틀린 사람들도 있지만, 그저 다른 사람들도 있다. 똑같이 2016년에 살고 있어도, 딛고 선 세상, 지나온 세상이 다르다는 것. 그것은 모든 비극의 시작이지만 또 이해의 시작이기도 하다.
절대로 끝나지 않을 이 전쟁.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두 부류들의 조금의 이해, 약간의 화해를 위해 노희경 작가가 이 작품을 썼으리라 짐작한다. 이 작품을 보며 내게 떠오른 한마디는 이것이다. "섣불리 판단하거나 함부로 가늠하지 말 것." 누군가에 삶에 대해, 그것이 부모이건 자식이건, 늙은이 건 젊은 이건 어쭙잖게 판단하려 들지 말고 좀 지켜보자고. 모두가 서툴기만 한 이 세상에서 서로에게 연민을 좀 가져보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일까.
삶이란 종으로 횡으로, 그야말로 종횡무진 복잡한 것이 아니겠는가. 안에서는 부모 자식의 전쟁이, 밖에서는 늙은이들과 젊은이들의 전쟁이 쉬지 않고 벌어지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서로에게 조금의 연민과 잠깐의 기다림을 베푼다면 화해는 가능할지도 모른다.
"인생이란 죽어서도 끝나지 않는다는 걸, 죽어서도 뜨거운 화해는 가능하는 걸 그때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