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미힐미> (2015, MBC)
뚜껑을 열기 전 특이한 로코인줄만 알았던 <킬미힐미>는 치유에 관한 드라마였다. 두 주인공이 함께 겪은 어린 시절 학대의 기억은 한 명에게는 완전한 망각을, 또 한 명에게는 완전한 분열을 주었다. 차도현의 일곱 가지 인격은 그렇게 분열된, 그의 조각난 마음들이다. 그의 인격들은 그의 상처를 외면하면서 동시에 직면했기에 생긴 결과물들이다. 강한 신세기는 여린 도현을 보호했고, 밝은 요나는 죽음에 다가서는 요섭을 저지했다. 페리 박과 나나는 죄책감과 두려움을 안고 태어났다.
좋은 드라마는 소재를 주제로 발전시킬 줄 안다. <킬미힐미>는 '다중인격'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단지 재미를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하지 않고, 뚝심 있게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아동학대가 어린 영혼을 어떻게 파괴시키는지, 사람이 부서진 마음을 안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버거운지를 <킬미힐미>는 똑똑히 이야기했다. 그 덕분에 아동학대뿐만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폭력과 아픔과 상처들을 아우를 만한 좋은 이야기가 탄생했다.
"누구나 죽고 싶을 때가 있어, 매일매일 죽고 싶은 나와 살고 싶은 내가 싸우면서 살아가. 포기하고 싶은 나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내가 매일매일 싸우면서 살아간다고."
모든 사람은 어느 정도 조각난 마음을 안고, 여러 개의 가면을 쓰고 산다. 세상에 완성된 한 가지 모습만을 가진 채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자식, 친구, 동료, 연인, 수많은 역할을 하며 살고, 그 과정에서 상처받기도 하고 위로받기도 한다. 노래 가사처럼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은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여러 마음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킬미힐미>는 말한다. 결국 그 마음들을 우리는 함께 버텨야 한다. 조각난 삶을, 모순으로 가득 찬 하루를 버틸 수 있게 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어린 리진의 상처가 덧나지 않은 것은 리온이네 가족 덕분이었다. 그리고 도현에게는 리진이가 치유가 되어 주었다.
세상에 의해 마음이 더 많이 조각날수록 삶은 ‘산다’는 동사보다 ‘버틴다’는 동사와 더 가까워진다. 각자의 고달픔으로 또 부서진 마음의 조각을 움켜쥐며 하루를 버티고, 내 안의 여러 나와 싸운다. 그때 나에게 버틸 용기, 싸울 용기를 주는 나의 사람들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요섭은 떠나며 말했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이렇게 바꾸어 곱씹어본다. ‘그대가 있다, 살아야겠다.’
"앞으로 킬미(Kill me)라는 말 대신 힐미(Heal me)라는 요청을 보내. 그런다 해도 너희들은 죽는 게 아니라, 이 안에 살고 있는 거야. 대신 더 이상 흩어진 조각이 아니라, 제대로 꼭 맞춰진 퍼즐처럼, 더 멋진 그림으로. 차도현이란 이름의 더 멋진 사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