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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아토르 Jun 25. 2016

말의 무게

피노키오(2014, SBS)

<너목들> 드림팀이 다시 뭉친 <피노키오>는 <너목들>과 마치 쌍둥이처럼 닮았다. 내게 이 두 드라마는 연작처럼 느껴진다. 단지 같은 제작진이고, 같은 배우가 출연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두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 때문이며, 그 메시지가 그려지는 장소 때문이다.


말의 무게     


<너목들>은 이전 글에서 썼듯 '진정한 소통'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본인이 원하지 않아도 오로지 진실만을 들을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진 소년 수하는 덕분에 조숙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지만 덕분에 다른 사람의 말을 제대로 '듣는'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진짜 어른이었던 관우 역시, 상대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넓은 품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의 짱다르크 혜성은, 이 두 남자 덕분에 진실에 다가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제대로 듣고, 보기 위해 노력하는 멋진 국선 변호사로 거듭났다.

     

<너목들>이 던졌던 화두들. 진정한 소통, 진실. 이 두 가지 키워드는 <피노키오>에서 그대로 이어진다. 이번에는 '귀'가 아니라 '입'이다. '제대로' 말하는 것의 중요성을 <피노키오>는 전달하고자 한다. 

"사람들은 피노키오가 진실을 말한다고 생각하죠. 그리고 사람들은 기자들도 진실만 전하다고 생각해요. 피노키오도, 기자들도 그걸 알았어야죠. 사람들이 자기 말을 무조건 믿는다는 것을. 그래서 자기 말이 다른 사람 말보다 무섭다는 것을 알았어야 합니다. 신중하고 또 신중했어야죠. 그걸 모른 게 그들의 잘못입니다. 444번을 보니까. 피노키오가 기자가 되면 안 되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네요.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무시하고 떠드는 사람이 기자가 되면 얼마나 위험한 건지, 자기 말의 무게를 모른 채 함부로 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무서운 지 알겠어요."

달포가 인하에게, 달포가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인하가 차옥에게 했던 말이다. 이 대사에 <피노키오>의 핵심적인 메시지가 함축되어 있다. 말의 무서움. 더구나 거짓말을 못하는 피노키오나 진실을 전달하는 것이 존재 이유인 기자의 경우에는 그 무서움이 더욱 크다. 이 메시지에 대해 굳이 반복하여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그 무서움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언론의 펜과 사람들의 입은 때로 칼과 총보다 잔인하고 무섭다. 그래서 달포가 말했듯 그들의 말은 아주 무거워야 한다. 하지만 무서움의 실상과 무거움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참 쉽고 가볍게 말을 거두기도 한다. 한 사람의 인생이, 한 가족의 운명이 달려 있을지도 모르는 일에 함부로 말하고는 "내가 잘못 알았네, 미안"이라는 말 한마디로 정리해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말은 아주 무겁기도 하고, 아주 가볍기도 하다. 


<피노키오>를 보며, 내 스스로를 돌아본다. 영향력이 기자보다 크지는 않아도, 적어도 1인분 어치의 말은 하고 산다. 때로 그것이 여론에 포함되기도 할 것이며, 그저 나를 둘러싼 작은 사회 속에서 맴돌다 사라지기도 한다. 그 1인분 어치의 말에도 그만큼의 무게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 무게를 스스로 알고 있었는지, 아는데서 그치지 않고 그 무게를 책임지기 위해 노력했는지, <피노키오>를 보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기레기 혹은 기자     


박혜련 작가는 <너목들>을 기획할 때 속마음을 듣는 능력이 어디에서 가장 필요할까,를 생각해보니 법정이 떠올랐다고 했다. 누군가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또 억울한 옥살이를 만들지 않기 위해 법조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진실을 보는 혜안일 것이다. 아마 <피노키오>를 집필하면서는, 진실을 말하는 능력이 어디에서 가장 필요할까,를 생각해보니 언론이 떠오르지 않았을까 싶다. 법정과 언론. 진실이 밝혀지는 곳이다. 수많은 말이 오가는 곳이다. 때로 뒤통수를 맞는 일이 있음에도, 사람들은 법정과 언론에서 흘러나오는 말을 믿고 싶어 한다. 법정과 언론의 공정성과 신뢰도가 높다면, 그 사회는 올바른 사회일 것이다.


<너목들>이 법정에서 진실을 향해 가야 할 법조인들의 자세에 대해 논했다면, <피노키오>는 방송국에서 진실을 밝혀야 할 기자들이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에 대해서 조목조목 따진다.

 "기자는 지켜보는 게 공익이야. 그걸로 뉴스를 만드는 게 공익이고, 그 뉴스를 구청 직원이 보게 만들고, 대통령이 보게 만들고, 온 세상이 보게 만드는 게, 그게 기자의 공익이다. 니들이 연탄 두세 개 깨는 동안에 빙판길 문제로 뉴스를 만들었으면 그걸 보고 구청 직원들이 거기에 제설함을 설치했을 거다. 사람들은 집 앞에 눈을 치웠을 거고, 춥다고 손 넣고 다니는 사람들은 넘어지면 다치겠다 싶어 손을 빼고 다녔을 거다. 니들이 연탄 몇 장 깨서 몇 명 구하겠다고 뻘짓 하는 동안에 수백수천 명 구할 기회를 날린 거야."

기자를 꿈꾸는 이들은, 세상의 불편한 진실들을 캐내어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것을 통해 조금이나마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를 꿈꿀 것이라고 감히 짐작해본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기자는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겪게 된다. 기자는 많은 경우에 그저 묵묵히 들어야 하고, 묵묵히 지켜봐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말로, 글로 전해야 한다. 모르긴 몰라도 인하와 범조처럼 빙판길을 내려오는 아이들을 구해야 할지, 카메라에 담아야 할지를 두고 많은 수습기자들이 처음에 고민하리라 생각한다. 나 역시 인하의 의문에 동의했고, 김공주 기자의 말을 듣고는 인하가 그랬듯 나도 납득했다.     


사실 드라마로서 <피노키오>는 '청춘 멜로'의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주인공들이 기자로서 성장하는 과정, 그 과정에서 생기는 질문들을 허투루 넘기지는 않았다. '기레기'라는 비하가 새삼스럽지 않은 요즘이다. 김공주 기자의 대사를 곱씹으며 기레기와 기자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본다. 사람들이 빙판길에서 우스꽝스럽게 넘어지는 모습을 통해 클릭수를 높이고, 시청률 높이는 데에만 급급하다면 그는 기레기일 것이다. 그걸 사람들이 많이 보면 무엇이 달라질지 생각하고, 무엇이 왜 공익인지 고민한다면 그는 기자일 것이다. 달포가 말했듯, 기자는 생각보다 훨씬 무섭고 무겁다. 하지만 그건 달리 생각해보면 그만큼 사람들이 기자를 믿고 싶어 하고, 기대하는 바가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피노키오>는 소망한다. 대중의 믿음과 기대를 배반하지 않는 기자들이 많아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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