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한 지 3개월이 지나 갓 수습 티를 벗을 때쯤, 신입사원에게 가장 필요한 역량 중 하나가 운전임을 알게 되었다. 면허는 있었지만 신분증용으로 전락한 지 오래였고, 나는 운전 연수를 받으며 새로운 마음으로 운전의 세계에 들어섰다. 운전을 시작한 지 채 몇 개월이 되지 않았지만, 제법 운전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골머리를 앓게 하던 주차 실력도 꽤 늘었다. 회사나 집, 마트처럼 익숙한 주차장에서는 뒷 차가 따라오지 않는 한 허둥대지 않는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애초에 내 차의 주차자리는 최소 지하 2층보다 밑이지만. 그래도 이제는 혼잣말로 ‘사이드 브레이크 풀고, 기어 D로 조정, 사이드 미러, 백미러 확인’을 순차적으로 읊어대지는 않을 정도고, 우회전을 앞두고 좌회전 깜빡이를 켜는 일도 없다. 운전은 몸의 기술이라더니, 한 번 익숙해지니 동작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무언가를 배운다는 건 무질서의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다. 운전은 안 하더라도 운전하는 사람은 얼마나 많이 보아왔던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무수히 많이 버스와 택시, 부모님의 차를 타고 도로 위를 달려왔건만, 도로의 생태계는 내게 늘 미지의 세계였다. 운전을 시작하니 차들이 마냥 쌩쌩 달리던 도로가 하나의 큰 시스템이자 질서이고 그 속에서 차들이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날마다 느낀다. 물론 여전히 사이드 미러도 확인하지 않고 차선을 변경하려 드는 나 같은 초보운전자나 신호를 무시한 채 달리는 겁 없는 차들 같은 돌발변수가 존재하지만 처음 운전대를 잡은 그 순간보다는 도로도, 옆 차선의 버스도, 무엇보다 핸들을 잡고 있는 내가 조금은 덜 낯설고 두렵다.
운전을 하다가 종종 시속 40km인 나를 쌩쌩 지나가는 옆 차들을 볼 때면, 어쩌면 회사에서의, 사회에서의 내 모습도 운전하는 나와 같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난 몇 개월간 회사라는 공간에서 이십 년 넘게 배운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배운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사회라는 세계에 새로운 질서가 부여된 셈이다. 밤을 밝히는 도시의 불빛들은 전구가 아니라 한 사람의 저녁이라는 사실을 배운다. 팀장님의 뒷모습과 부장님의 한숨, 대리님의 동분서주를 보며 한 사람이 자기 몫을 다하며 산다는 것은 외로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면서 나는 내 몫을 다하고 있는지 물어본다. 실수는 만연하고 성장은 요원하다. 회사라는 공간에서와 마찬가지로 아직까지는 청춘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마냥 선택을 유보하고 있는 내 삶도 그렇다. ‘대학만 가면’, ‘취업만 하면’이라는 삶의 조건들은 사실 언제나 끝이 아니라 시작을 의미한다. 나는 여전히 내가 있는 곳이 내가 있을 곳이 맞는지 의문이고, 정답 없는 삶인데도 틀려버릴까 두렵다. 인생이라는 도로 위에서도 나는 여전히 긴장한 초보 운전자인 셈이다.
갑자기 끼어드는 차에 놀라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옆 차선 버스의 위용에 움츠러들면서, 문득 어디선가 읽은 글귀가 떠올랐다. 인생에도 신호등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가야 할 때와 가지 말아야 할 때, 조심하고 주의해야 할 때를 알려주면 인생의 시행착오가 좀 줄어 들 텐데. 그러나 야속하게도 인생은 늘 돌발변수 천지다. 깜빡이와 온갖 신호등이 나를 다독이고 대비시키고 독려하는 도로 위에서도 이렇게 긴장이 되는데, 그럼에도 언제나 사고의 위험은 도사리는데, 그런 지침 하나 없는 인생에서 깜짝 놀라지 않기란, 위험하지 않기란, 뜻대로 살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러니 깜빡이 없이 태클 들어온다고 너무 놀라지 말 것. 시간이 지나 빨간불에 액셀을 밟아 버렸고 파란불에 브레이크를 밟았던 걸 뒤늦게 깨닫게 되더라도 나 자신을 너무 원망하지 말 것. 시속 40km가 넘어가면 절로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고 확신이 서지 않는 초보 운전자이자 사회 초년생은 홀로 그렇게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