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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귤 Mar 03. 2018

너보다 나를 사랑해서 하는 결정 4가지

유의미한 탈출을 꿈꾸는 당신을 위한 영화 <레이디 버드>

이민 가고싶었다. 시민권, 영주권, 하다못해 워킹홀리데이 비자라도 필요했다. 간절히 원했다.


3년째 지원해도 왜 안되느냐고 따졌다. 어서 한국을 떠나고 싶은데 왜 아무 생각 없던 동생이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캐나다에 가게 된 건지 분해 씩씩댔다.


그래서 이렇게 놀러라도 왔다. 캐나다 토론토다. 지난해 9월에 이어 불과 5개월 뒤인 2월에. 한 달치 월급을 모조리 쏟아부었다.

8박 9일 일정 마지막 날. 혼자 영화를 보러 갔다. 영화관이 궁금하고, 또 심심해서.

<레이디버드>

너무 울면 목울대가 얼얼하다. 마음이 진정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온타리오 호수의 쨍한 칼바람이 떨어지는 거리를 걸으며 눈물을 훔쳤다.

레이디버드는 나였다.(스포주의)

레이디버드는 고향 새크라멘토를 떠나 대도시에 가고 싶어 하는 고등학교 졸업반 소녀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새크라멘토가 그녀에겐 '시골'로 느껴졌나 보다. (지도에서 수없이 봐왔던 지명인 데다, 캘리포니아주에 있다는 것만으로 내겐 꿈의 도시나 다름없는데) 그녀는 '문화'가 있는 '대도시'로 떠나겠다 마음먹는다.


같은 주(state)에 있는 주립대에 지원하면 수준 높은 교육을 저렴하게 받을 수 있는데, 레이디버드는 동부(eastcoast) 미국으로 가겠다 고집한다. 집엔 돈이 없다. 엄마가 가족 5명을 먹여 살린다.


그럼에도 이 열일곱 어린 소녀는 포기하지 않는다. 학자금 대출'을 받아내고, 알아주는 명문대부터 평범한 대학까지 동부에 있는 대학이라면 모조리 지원한다. 카페 알바로 직접 마련한 원서비로.


고향 새크라멘토에 만족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어도, 레이디버드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녀에겐 그녀가 제일 중요하다. 남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그녀의 삶을 찾아나가려 고군분투한다.

레이디버드는 한국(서울, 부천)을 떠나 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 어디든 떠나고 싶어 하는 나를 닮았다.

대학원 갈 돈은 없어서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지원하고, 낙방해도 또 지원하는 내가 레이디버드였다.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안 되면 '대학원 1년 과정'이라도 듣고 취업하려고 돈을 모았다.

(그런데 지난 월요일, 영국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았다. 2년짜리다.)


엄마는 하나뿐인 딸, 레이디버드를 너무 사랑한다.

그래서 그녀를 막아선다. 그래서 갈등의 골은 깊어진다.


엄마는 레이디버드가 동부대학에 지원하지 못하게 필사적으로 막았다. 몰래 지원한 사실을 알았을 때, 엄마는 배신감에 레이디버드와 '말을 하지 않는다'.


엄마 본인은 '심리 상담 치료사'다. 하지만 딸 앞에서 '딸과 진심으로 소통'하려는 직업적인 모습은 불가능하다. 딸은 가족이니까.


결국 레이디버드가 뉴욕으로 떠날 때까지 엄마와 레이디버드는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한다. 딸의 애원에도 끄덕 없다.

레이디버드: 제발 한 마디만 해줘!! 제발. 부탁이야. 내가 나빴고, 다 잘못했어. 제발 한 마디만 해줘.

엄마:...

엄마는 '직업'으로는 남을 이해해주는 상담사였지만, 가족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묵은 감정을 푼 뒤, 남은 시간을 귀하게 보낼 기회를 잃었다.


엄마도 결점 많은 사람이니까.


남들이 볼 때는 문제없고 친절하고 똑똑하기까지 한 우리 엄마, 하지만 진짜 가까운 가족에게 마음여는 법을 모른다. 문제가 생기면 레이디버드 엄마처럼 나와의 '소통을 닫아버렸다'. 그게 잘못되고 불쌍한 일이란 걸, 나는 상담을 통해 알게 됐다.

엄마는 자기 힘든 문제를 가족과, 친한 친구와 소통하는 법을 모른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어릴 적 단짝이 만나자고 연락해도, 피한다. 문제없는 사람은 없는데, 본인 문제가 엄마에겐 엄청 대단한 일이고 수치스러운 일이다. 혼자 해결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건 내가 '바보'가 돼 버리는 일이다. 상황을 친구나 동료에게 토로하며 스트레스를 낮추는 법도 모른다.

엄마 본인이 깨닫고 상담실을 두드리는 수밖에.

언젠가는 이 곳을 떠날 예정이지만,

레이디버드는 사랑 찾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고, 스스로 성장의 기회를 만든다.

그렇게 찾은 소중한 상대가 '내 사람'이 아닌 걸 깨달았을 때, 그녀는 고민하지 않고 돌아선다.

그녀에게 중요한 건 '나 자신'이지, 내가 '의지할 그 사람'이 아니다. 나를 위한 사람, 나와 함께 행복할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다.


내가 요즘 고민하는 것들.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하는지, 이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게 맞는지. 내가 어느 수준으로 다가가야 하는지. 지나치게 가까이 다가가 상대에게 부담을 주는 건 아닌지.

또 내가 만약 한국을 떠나게 된다고 해도 이 사람을 만나도 되는건지. 내가 떠나고 싶어 한다는 걸 그에게 말해도 되는지.

일단 확실한 건 내가 어느 정도 노력했을 때 나를 알아주고, 결국엔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거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말고. 그게 내겐 '나를 사랑하는 법'이다.


삶에는 가족이 채워줄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 부분이 바로 친구다.

레이디버드의 절친 줄리. 서로 부끄러운 일도 나눌 줄 알았던 귀한 관계.


부자면서 닮고 싶게 예쁜 다른친구 제나를 만나면서, 줄리와의 관계는 멀어지는 듯한다. 하지만 여느 영화가 그렇듯, 레이디버드는 결국엔 줄리에게 달려간다. 프롬 데이트(a.k.a. 전남친)를 버리고 줄리와 프롬에 간다. 결국 대학에 가서는 어쩔 수 없는 거리(뉴욕-캘리포니아)로 멀어지지만,


이런 관계를 경험해봤다는 건 어디서든 또 이런 친구를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친구. 내겐 너무 어려운 이야기다.

엄마를 닮아 '내 속 얘기'를 남에게 하길 두려워한다. 내가 얘기하면 상대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안 그래도 우울하게 생겼는데, 불평불만만 말하다가 친구가 도망갈까 봐.

그래서 친구랑은 고민 이야기하기를 꺼린다. 동생에게만 말하는 편이다.

그런데 최근, 동생이 토론토에 살게 되면서 새로운 관계들이 많이 생겼다. 초등학교 친구, 친하게 지내는 인턴 동생. 그들과 '진짜 속 얘기'를 나누느냐 하면, 아직 그렇진 않다. 연습해가는 중이다.

한국에 돌아가면 일단 밥을 먹으면서 내 얘기를 할 예정이다. 엄마 아빠 없이도, 동생 없이도 홀로 잘 살 수 있는 방법이지. 진짜 친구 만들기.

친구 이야기부터 줄줄 흐른 눈물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계속됐다.

내겐 너무나 고마운 영화. 내 '현재'와 겹치는 부분이 상당했던 영화.


토론토 여행 마지막 날 이 영화를 만났다. 갈피를 못 잡던 내 인생은 0.01도 틀어져 더 괜찮은 방향으로 조정됐다.


'삶을 바꾸는' 영화는 좋은 작품이다.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뉴욕에 살게 된 레이디버드는 고향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린다. 집에 전화하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고, 음성메시지를 남긴다.


한국을 떠난다면, 한국에서의 삶이 더 소중해질 테지.


내 삶은 한국에서도 사랑스러울 거다. 이민 간 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고.


그리워 눈물이 나고, 사랑하는 사람과 멀어져도, 나는 나를 제일 사랑하는 방향으로 선택하고 살아갈 거다.


번외로 하고 싶었던 말:

레이디 버드를 연기한 배우 시얼사 로먼. 그녀는 '고향을 떠나 정착'하는 역할에 어울리는 배우일까.


그녀는 영화 '브루클린'에서 가난한 영국 고향을 떠나 뉴욕에 정착하는 소녀를 인상적으로 그려냈었다.

한국인에게는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케이크 만드는 소녀로 잘 알려져 있다.

저는 권귤, ㄱㅅㅇ

아니 권수연입니다. (영화 본 사람만 이해할 수 있음. 어서 보러 가세요)


*소심한 관종*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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