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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귤 Dec 25. 2017

종현, 90년생 친구들에게 남긴 것

잠이 오지 않았다

(종현 1주기 생각나서 다시 들어와봤다

나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하고싶은 대로 살고 있다

애씀은 이미 멈춘 지 오래다

내가 필요한 곳에서 적당한 노동을 제공하며 산다)

-2018.12.17


꼬박 일주일이 지났다. 그 친구가 떠난 지. 만나본 적 한 번 없어도, 종현은 친구였다.


2008년 한창 수능 공부에 허덕이고 있을 시절,

마르고 왜소했던 열아홉 종현은 "누난 너무 예뻐"라고 노래 부르며 TV에 나타났다. 아이돌 그룹 '샤이니'랬다. 고등학교 3학년 때가 노래를 가장 많이 들었던 시기였다. 핑크색 MP3에 담겼던 샤이니 목소리는 지친 밤 책상에 앉았던 내게 에너지를 선물했다.


당시 샤이니 멤버들은 중학생부터 성인까지 나잇대가 다양했다. 학생 시절에는 지금보다 더 '나이'에 민감했는데, 우리는 알고 있었다. 1990년생 종현은 우리랑 동갑이란 걸. 공부가 고달팠던 우리는 언뜻 이런 질투섞인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기도 하다.

"종현은 좋겠다. 벌써 데뷔도 하고(인생이 벌써 결정 났네.)"


그렇게 고3 생활이 끝나고, 어른이 됐다.

돌이켜보니 대학 시절은 그다음 미래를 위한 준비에 또 허덕이며 '있었는지도 기억이 안 나게' 후딱 지나가 버렸다. 대학 시절에는 가수에 별로 관심이 없다. 인간 구실 하는 법 배우기에도 바쁘니까. 그래서 종현은 가끔 예능에서만 보는 연예인이 됐다.


그때는 그렇게 부러워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도 내 길을 찾아가느라 힘들었고,

그도 아이돌에서 아티스트로 노선을 변경해가느라 고달파 보였다.


가끔 종현의 솔로곡이 나왔던 것 같기도 하다. 내가 특별히 좋아했던 아이유 앨범에도 종현이 만든 노래가 있다고 했다. "우울하다. 우울해~"라고 시작하던 '우울시계'라는

이 노래가 재생되면 나는 재빨리 다음 곡으로 돌려버렸다.


우울해질랑말랑 할 때, 우울한 노래를 들으면 감정의 무게추가 '우울'로 옮겨가기 때문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니 그랬다. 내게 '종현' 하면 바로 떠오르는 노래는 아이유의 '우울시계'였네.




연합뉴스 속보가 떴다. 예측할만한 사건이 전혀 없었기에 타살인가 했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내가 그의 목숨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있었을까.

아니 전혀 없었을 거야. 아는 사람도 아닌데. 아니 그의 인스타그램이나 평소 출연 영상을 보면서 뭔가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아냐. 관심 없었잖아. 그래.


허망하다. 삶이 참 짧다. 내가 본 그는 원하는 꿈을 거의 다 이룬 친구였는데. 들으면 단번에 알아챌 법한 독특한 음색에, 동료 가수들에게 곡을 선물하는 솜씨, 나 같은 '라디오 알못'도 몇 번쯤은 들어봤을 라디오 DJ까지. 못 하는 게 없는 친구였다. 게다가 그 정도 외모, 재능, 유명세, 재력이면 보통 주변에서 여자들의 추파는 끊이질 않았을 거다. 그런데 그가 왜.


바라던 걸 거의 가졌다고 생각했던 친구였는데, 그가 원하던 건 뭐였을까.


감히 추측하건대(내 추측은 보통 내 상황에서 비롯된다. 그의 마음을 추측한 게 아니라 그냥 내 평소 삶에 대한 불만족과 다른 삶에 대한 갈망이라고 봐야 옳겠다. 내 상황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만약 나였다면 이랬겠다 싶은 거다.) 그의 아픔은 현재의 삶을 '차마 버릴 수 없었음'에서 왔다고 봤다. 자길 바라보는 사람들, 그들을 향한 책임감. 다 버리면서 자유로워지고 싶을 때가 많았지만 지금까지 해온 걸 다 무너뜨릴 수 없었고, 자길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길 수 없었다.

그건 아티스트 '본인'에게도 용납할 수 없는 상태였다. 실망보다는 상실이 나았던 걸까.


모든 걸 용납해주는 '안전 기지 관계'나 '상담자'를 만났다면 아무것도 없는 자신 모습도 용납할 수 있었을 텐데. 다 포기하고 얼마간은 본인에게 '평안'을 선물할 수 있었을 텐데.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본인도 충분히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란 걸 알 수 있었을 텐데.


자신을 '잘 꾸며야 하는' 사회인 연예계에서 그의 삶은 혹독했다. 그는 솔직했고 '정말 웃기고 즐거워야 웃는' 사람이었다. 본인에게 진실된 말만 하려는 사람이었다. '진짜 나'와 '방송 속의 나'는 너무나 달랐다. 다른 연예인들과 비슷해져보려는 노력도 수포로 돌아갔다.



그는 세상을 떠나며 동갑인 내게 숙제를 하나 안겼다.


"친구야 넌 네가 원하는 삶을 살아. 꿈을 이뤘는데 그게 만약 네가 원하던 삶이 아니었다면, 과감히 비틀어도 좋아. 지금 당장 네 '마음이 원하는' 곳으로 떠나"


새벽 2시. 한 시간 동안 종현이 내게 준 마음과 씨름했다. 결론을 내리기 전에는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래서 결론을 내렸다.


3년째 같은 마음으로 괴롭다. 이전 직장에서 괴로웠고, 지금 직장에서도 괴롭다. 이유는 단 하나, 다른 나라에 가 살고 싶다는 것. 실패하고 돌아와도 좋으니 20대에 한 번이라도 그 경험을 하고 싶다는 것.

3년째 캐나다 비자 기다리는 중. 나는 왜 캐나다만 바라보고 머뭇거리지. 조금만 생각을 넓히고 포기하면 호주도 있는데. 그래 이제 그만 주저하고 캐나다, 영국 비자 안 나오면 일단 호주 가보고 생각하자.

20대가 아니면 더 힘들어질 거야. 지금이 아니면 영영 하지 못할 것 같아. 나중에 죽으면서 그냥 그때 떠날 걸... 그럴 걸... 후회할 거야 분명히, 그래.

결론: 2017년 3월 31일 이전에 출국하기


이렇게 종현은 내게 이 마음을 남기고 떠났다. 그는 떠나면서도 좋은 친구였다. 그런데 그에겐 좋은 친구가 필요했다. 세상에 어떤 말도 다 할 수 있는 '안전 기지' 관계 하나만 있었어도 삶을 포기하지 않았을 텐데. 나는 그 관계가 부족해 '심리상담 선생님'에게 의지하곤 하지만.



사람마다 성격, 기질이 다르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그걸 헤쳐나가는 마음가짐과 방식이 다르다.

고난이 찾아왔을 때 아주 조금은 더 수월하고 담대하게 건강한 길을 결정하는 사람이 있다.


1990년생 동갑 배우 김태리가 그렇다. 뉴스 에이드 인터뷰에 그의 말이 실렸다.


"근데 이런 생각 하지 않으면 계속할 수 없어요. 언제든지 도망칠 수 있다는 생각을 모든 사람들이 했으면 좋겠어요."


번외)

만약 정말 괴로워서 미칠 것 같고, 고민이 끊이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심리상담'을 추천한다.

'정신과'는 보통 약물치료이기 때문에 당신의 '근본적 고민'을 같이 나눠주고 해결해주지 못한다.


나는 '정신과'와 '심리상담' 그 두 가지를 모두 경험해 봤다. '정신과' 약물로 해결하지 못한 내 '우울감'을 '심리상담'에서 해소했다. 정신과 의사 선생님도 내게 말했었다. "심리상담을 받아 보라"고.


물론 '상담 전문가'도 자신에게 맞는 사람이 있다. 나는 처음부터 내게 맞는 선생님을 만났지만, 한 두 번은 실패할 수 있다는 너그러운 마음을 갖고 상담기관을 찾자.


당신 좋은 사람이다. 남은 시간도 많다.

지금 여기서 애씀을 멈춰도, 당신은 망하지 않는다.

행복했던 그와, 세상에 남겨진 강아지

*ㄱㅅ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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