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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귤 Jun 25. 2017

화장실에서 날 훔쳐보던 그 놈

상처입은 영혼들을 위하여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닫은 순간

인기척이 느껴졌다.

위에서 누군가 날 바라보는 느낌.


카메라였다.

'어떡하지. 지금 내가 나가면 이 사람한테 두들겨 맞는 거 아니야?'

'나 찍힌건가? 수치스럽고 무섭다...'


처음 경험한 이 상황에

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여자화장실은 '여자들만의 공간'이라고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에겐, 충격과 공포의 몇 초였다.


머리를 울리는 심장소리를 부여잡고,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건물 복도를 거닐며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엄마... 우엉엉 ㅠㅠㅠ 헉 헝 ㅁㅇㅇ라ㅓ이ㅏㅜㅏ우ㅏㅣㅠㅠㅠㅠ"

"왜...?"

"어떤 남자가 화장실 위에서 날 찍었어. 너무 무서워. 어떻게 해야할 지를 모르겠어"

"...? 깔깔.. 뭐라고 또.. 학원 선생님한테 이야기해 봤어?"

"아니 방금 일어난 일이야..."

"그 사람 없지? 빨리 들어가. 선생님한테 내가 얘기할게."

"아니 엄마 지금 나 너무 무섭다고..."

"응 빨리 들어가~ 끊어~"


???

엄마의 위로를 기다렸던 건 지나친 기대였을까.


솔직하게 그 상황을 대면해주지 않았다. 회피하려 했고, 또 그런 상황에 내가 처했다는 걸 수치스러워 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마치 그 사건을 겪으면 상품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처럼 느꼈달까.


사건이 일어났던 곳은 분당 정자역 학원 화장실. 2006년. 나는 열일곱 소녀였다.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그 사건은 내게 상처로 남았다.

몇년 뒤에 엄마에게 말해봤다. 그 상황에 내가 얼마나 무서웠으며, 엄마의 보호를 기다렸는지. 그래도 똑같았다. '무시'가 답이었다.



보호.

그때부터였다.

나는 끊임없이 나를 '보호해 줄' 사람을 찾게 됐다.


내가 사소한 위험에 처해있을지라도,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 줄 사람. 내가 연락이 닿지 않으면 나를 기다려주고 끊임없이 나를 찾아 헤메일 사람.



이게 내 채식주의자 리뷰다.


어릴 때 아버지와의 기억으로 마음의 병을 얻은 영혜. 그 병은 영혜가 어른이 돼 결혼까지 한 뒤에 갑자기 드러난다.


어릴 때 상처 또는 추억이 그 아이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지. 엄마가 될 나는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


완벽할 순 없지만, 좋은 엄마가 돼야 하니까.


채식주의자 리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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