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입은 영혼들을 위하여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닫은 순간
인기척이 느껴졌다.
위에서 누군가 날 바라보는 느낌.
'어떡하지. 지금 내가 나가면 이 사람한테 두들겨 맞는 거 아니야?'
'나 찍힌건가? 수치스럽고 무섭다...'
처음 경험한 이 상황에
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여자화장실은 '여자들만의 공간'이라고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에겐, 충격과 공포의 몇 초였다.
머리를 울리는 심장소리를 부여잡고,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건물 복도를 거닐며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
엄마의 위로를 기다렸던 건 지나친 기대였을까.
솔직하게 그 상황을 대면해주지 않았다. 회피하려 했고, 또 그런 상황에 내가 처했다는 걸 수치스러워 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마치 그 사건을 겪으면 상품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처럼 느꼈달까.
사건이 일어났던 곳은 분당 정자역 학원 화장실. 2006년. 나는 열일곱 소녀였다.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그 사건은 내게 상처로 남았다.
몇년 뒤에 엄마에게 말해봤다. 그 상황에 내가 얼마나 무서웠으며, 엄마의 보호를 기다렸는지. 그래도 똑같았다. '무시'가 답이었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끊임없이 나를 '보호해 줄' 사람을 찾게 됐다.
내가 사소한 위험에 처해있을지라도,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 줄 사람. 내가 연락이 닿지 않으면 나를 기다려주고 끊임없이 나를 찾아 헤메일 사람.
이게 내 채식주의자 리뷰다.
어릴 때 아버지와의 기억으로 마음의 병을 얻은 영혜. 그 병은 영혜가 어른이 돼 결혼까지 한 뒤에 갑자기 드러난다.
어릴 때 상처 또는 추억이 그 아이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지. 엄마가 될 나는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
채식주의자 리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