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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귤 Jul 03. 2017

대학이 친구보다 중요해

상처받은 그녀를 위하여

"어딘데?"

"응?"


친구 N은 절대 입을 열지 않았다. 나머지 4명은 서운했다.


"솔직히 네 학교가 궁금한 건 아니야.

그냥 우리가 친구 맞나 싶어..."





중학교가 끝날때 쯤?

N은 대치동으로 이사간 친구였다.


경기도 부천에서 강남 대치동이라니.

학원 뺑뺑이를 돌던 우리들에겐 할리우드와 같았다. 가끔 대치동까지 학원을 다니기도 했으니 말이다.


은마아파트로 간다고 했다. 

잘사는 집도 아니고, 의아했다. 한편으로는 아니, 뭐 그럴수도 있지. 2005년 교육열이 얼마나 셌는데.


멀리 떨어져도 우리 다섯은 가끔 연락하며 지냈다. 연락이라기 보다는, 어머니들 손에 이끌려 억지로 만났다. 어머니들 모임에 우리 테이블을 따로 만들어주는 식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엄마들 성화에 친구가 됐고, 같은 학원을 다니면서 친구가 됐고, 중학교에서 우열반을 따로 만들어주면서 친구가 됐다. 

우릴 묶는 건 '너와 함께하면서 너를 견제해야 겠어. 라고 생각하는 엄마들'이지, '순수한 우정'은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자의든 타의든 계속 만나온 덕에 2011년. 삼수한 친구들까지 모두 대학생이 된 그해, 우린 다시 만났다.


근황은 이랬다.

고려대/고려대/고려대/경인교대/그리고 대치동 친구 N.


N은 삼수끝에 대학을 갔다고 했다. 그녀는 절대 자기 얘기를 하지 않았다. 우리 말만 듣고싶어했다. 한편으로는 이해했다. 서운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우리는 몇번 더 만났다. 나중에 우리 넷은 N의 비밀스런 삶에 지쳤고, 더이상 연락을 먼저하지 않게 됐다.

"요즘 뭐해? 시간 언제 돼?"


우리 마음을 알았는지, N은 우리 넷에게 따로 연락해 시간을 일일이 맞추고 다섯 명 모임을 힘겹게 주선하곤 했다. 감정에 솔직한 친구 둘은 "걔랑 내가 친구가 맞는지 모르겠어"하며 더이상 모임에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마지막 모임은 2015년. N과 나. 우리 둘. 내가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측은함'에서 비롯된 만남이었다.


친구는 '대학'에 대한 비밀이 여전했고, 우리 대화는 겉돌다가 끝나버렸다.



그 친구가 잘못됐다고 말하고 싶진 않다. 그녀는 상처받은 아이였다.


"좋은대학 못 가면 너 인생 망쳐"

라는 누군가의 말에 삼수를 했을지도 모르고


"너는 대학도 못간 게 어디 그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고 하냐"

는 누군가의 말에 우리에게 그토록 자신을 숨겼을지도 모른다


"내가 누구때문에 대치동에 왔는데"

라는 눈물섞인 한탄에 소녀의 자존감은 한없이 떨어졌을지도 모르지.


N은 중학교 친구 넷을 잃었다.




지금은 어딘가에서 살고있을 친구에게

한없는 위로를 보낸다.



어쩌면 그 친구 나처럼 과거를 돌아보며 굳센 다짐을 할지 모른다.

"우리, 애 제대로 키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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