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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귤 Oct 26. 2017

총을 직접 보니 다리가 풀리더라

미국에서 생긴 일

미국에서 첫 아침을 맞았다. TV를 틀었다. 첫 소식이었다.

"지난밤, 라스베이거스 맨덜레이 베이 호텔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최소 ㅇㅇ명이 숨졌고, ㅇㅇ명이 부상했습니다. 용의자는 현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동생과 한동안 멍하니 뉴스를 봤다. 4년 만에 온 미국은 내게 맨 얼굴을 들이댔다. '그래, 여긴 미국이지.'

City of Stars~ are you shining just for me

"Nuna~ 나는 여기 살면서 한 번도 총 본 적 없어ㅋㅋㅋㅋㅋ"

4살 때부터 캘리포니아에 산 사촌동생은, 내가 총을 언급하면 항상 이렇게 대답했다. 동생은 캘리포니아에서도 비교적 안전한 동네에 산다. 어바인 근처 작은 소도시, Aliso viejo.


10분만 차를 몰고 가면 아름다운 해변이 있고, 사시사철 언제든 서핑보드를 싣고 나가 파도를 탈 수 있는 뜨끈한 동네. 한 집에 차가 최소 2대 이상에, 뒤뜰에는 바베큐장이 있다. 동네마다 수영장도 있다. 그곳은 하루 대부분이 비어있지만, 돈 덕분에 아름답게 운영된다.


동생 말에도, 난 걱정을 떨칠 수 없었다. 사촌집에 놀러 가 동네 산책을 할 때면(특히나 밤에), 두려움이 엄습했다. '누군가 집 안에서 나를 겨누고 있으면 어쩌지.' '내가 동양인이라 더 표적이 될지도 몰라.' 나는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물론 내 '지나친 걱정병'도 한 몫했지만.

이거 ㄹㅇ 맛있었는데... 드립커피+감자, 양파볶음+야채 오믈렛+토스트, 버터 = 총 15,000원

브런치 집이었다. 동생이랑 앉아서 흡입 준비(진공청소기 가동 준비)를 하고 있는데, 동생이 조용히 나를 불렀다.


"언니, 저기 할아버지 두 명 총 가지고 들어왔어."


머리가 하얗게 쇤 백인 할아버지였다. 금테 잠자리 안경을 쓴 배불뚝이 노인들,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백인 할아버지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그들은 허리춤에 작은 권총을 차고 들어왔다.


우리를 쏘려고 들어온 건 물론 아니었다. 호신용이거나, 총 성애자였겠지. 아니면 며칠 전 일어난 라스베이거스 총기난사 사건으로 갑자기 호신 욕구가 급격히 상승했거나.


나는 그들이 내 눈빛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혹시나) 공격 태세를 갖출까 봐 그들을 힐끔 바라보는 데 그쳤다. 궁금해도 볼 수 없었다. 그들은 나를 겨누고 "정당방위였다. 그녀가 곧 총을 꺼낼 자세를 취했다."라고 말할 수 있으니까. 게다가 나는 '아시안 외국인'이니까 그들은, 그리고 경찰마저도 내 목숨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테니까.


그날 처음, 난 미국에서 총을 봤다. 그땐 더 무시무시한 총을 볼 거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번 미국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레치워스 파크(Letchworth Park), 동양인은 우리뿐이었던...

레치워스 파크 여행을 끝내고, 차를 타고 뷰포인트를 찾아다녔다. 절벽 옆 주차장에 차를 대고 아이폰을 꺼냈다. 마지막으로 사진을 담으려고.


그곳엔 우리뿐이었다. 잠시 뒤, 차 하나가 서더니 20대로 보이는 남자 넷이 내렸다. 머리에 유대인 모자 키파를 쓴 남자들이었다. 그중 하나는 총을 메고 있었다. 권총은 아니었다. 총구가 길었다. 사냥총 같았다.


그들은 총을 들고 우리가 있는 곳으로 왔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쉣)

여기서 삶을 마감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크레이지 가이는 크레이지 비헤이비어를 해도 크레이지 한 게 아니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렇게 생긴 총이었다

"동생아, 그냥 가자. 여기 별로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원래 흥분하면 더 공격의 대상이 되는 법) 차로 돌아왔다. 스르르 풀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엑셀을 눌렀다. "부아아아앙!!!!!!!" 엔진을 켜도 차는 앞으로 가지 않고, 소리만 요란했다. 파킹 브레이크를 풀지 않았던 거다. 난 그만큼이나 긴장했었다.


그들도 이 곳이 별로였는지, 우리가 차에 탄 뒤 바로 차에 올랐다. 그들은 얼마간 우리를 따라왔다. 다음 뷰 포인트에 우리는 차를 대고 내렸고, 다행인 건지 원래 목적지가 있던 건지, 그들은 우리를 지나쳐갔다.


그때 기억은 지금 떠올려도 아찔하다. 총으로 사람 목숨을 끊는 건, 그만큼 손쉬운 일이니까.

2012-13년 미국 교환학생 시절이 생각났다. 사람이 많이 모일수록 두려웠다. 총기 난사를 계획하는 사람은 사람이 많은 곳을 노리니까.


그래서 사람이 바글대며 뻥 뚫린 도서관을 가장 두려워했다.

대량으로 사람을 학살할 수 있는 곳이었다.


미국은 돈 많고 좋은 나라다.(도라이 도럼프 빼고ㅋ)  그 넓은 나라 각지에 깔린 깔끔한 도로를 보면. 바다면 바다, 산이면 산, 사막이면 사막, 다양한 자연환경을 보면. 자유로운 사회분위기를 보면, 부러움에 치를 부들부들 떨 정도다.


그런데 이건 확실하다. 총 때문에 사람을 의심해야 하고, 뚜렷한 이유 없이 눈알을 굴리며 어디서든 두려워해야 한다.

죽음에 초연하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수 있겠다. 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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