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생긴 일
미국에서 첫 아침을 맞았다. TV를 틀었다. 첫 소식이었다.
"지난밤, 라스베이거스 맨덜레이 베이 호텔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최소 ㅇㅇ명이 숨졌고, ㅇㅇ명이 부상했습니다. 용의자는 현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동생과 한동안 멍하니 뉴스를 봤다. 4년 만에 온 미국은 내게 맨 얼굴을 들이댔다. '그래, 여긴 미국이지.'
4살 때부터 캘리포니아에 산 사촌동생은, 내가 총을 언급하면 항상 이렇게 대답했다. 동생은 캘리포니아에서도 비교적 안전한 동네에 산다. 어바인 근처 작은 소도시, Aliso viejo.
10분만 차를 몰고 가면 아름다운 해변이 있고, 사시사철 언제든 서핑보드를 싣고 나가 파도를 탈 수 있는 뜨끈한 동네. 한 집에 차가 최소 2대 이상에, 뒤뜰에는 바베큐장이 있다. 동네마다 수영장도 있다. 그곳은 하루 대부분이 비어있지만, 돈 덕분에 아름답게 운영된다.
동생 말에도, 난 걱정을 떨칠 수 없었다. 사촌집에 놀러 가 동네 산책을 할 때면(특히나 밤에), 두려움이 엄습했다. '누군가 집 안에서 나를 겨누고 있으면 어쩌지.' '내가 동양인이라 더 표적이 될지도 몰라.' 나는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물론 내 '지나친 걱정병'도 한 몫했지만.
브런치 집이었다. 동생이랑 앉아서 흡입 준비(진공청소기 가동 준비)를 하고 있는데, 동생이 조용히 나를 불렀다.
머리가 하얗게 쇤 백인 할아버지였다. 금테 잠자리 안경을 쓴 배불뚝이 노인들,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백인 할아버지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그들은 허리춤에 작은 권총을 차고 들어왔다.
우리를 쏘려고 들어온 건 물론 아니었다. 호신용이거나, 총 성애자였겠지. 아니면 며칠 전 일어난 라스베이거스 총기난사 사건으로 갑자기 호신 욕구가 급격히 상승했거나.
나는 그들이 내 눈빛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혹시나) 공격 태세를 갖출까 봐 그들을 힐끔 바라보는 데 그쳤다. 궁금해도 볼 수 없었다. 그들은 나를 겨누고 "정당방위였다. 그녀가 곧 총을 꺼낼 자세를 취했다."라고 말할 수 있으니까. 게다가 나는 '아시안 외국인'이니까 그들은, 그리고 경찰마저도 내 목숨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테니까.
레치워스 파크 여행을 끝내고, 차를 타고 뷰포인트를 찾아다녔다. 절벽 옆 주차장에 차를 대고 아이폰을 꺼냈다. 마지막으로 사진을 담으려고.
그곳엔 우리뿐이었다. 잠시 뒤, 차 하나가 서더니 20대로 보이는 남자 넷이 내렸다. 머리에 유대인 모자 키파를 쓴 남자들이었다. 그중 하나는 총을 메고 있었다. 권총은 아니었다. 총구가 길었다. 사냥총 같았다.
여기서 삶을 마감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크레이지 가이는 크레이지 비헤이비어를 해도 크레이지 한 게 아니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동생아, 그냥 가자. 여기 별로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원래 흥분하면 더 공격의 대상이 되는 법) 차로 돌아왔다. 스르르 풀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엑셀을 눌렀다. "부아아아앙!!!!!!!" 엔진을 켜도 차는 앞으로 가지 않고, 소리만 요란했다. 파킹 브레이크를 풀지 않았던 거다. 난 그만큼이나 긴장했었다.
그들도 이 곳이 별로였는지, 우리가 차에 탄 뒤 바로 차에 올랐다. 그들은 얼마간 우리를 따라왔다. 다음 뷰 포인트에 우리는 차를 대고 내렸고, 다행인 건지 원래 목적지가 있던 건지, 그들은 우리를 지나쳐갔다.
2012-13년 미국 교환학생 시절이 생각났다. 사람이 많이 모일수록 두려웠다. 총기 난사를 계획하는 사람은 사람이 많은 곳을 노리니까.
그래서 사람이 바글대며 뻥 뚫린 도서관을 가장 두려워했다.
미국은 돈 많고 좋은 나라다.(도라이 도럼프 빼고ㅋ) 그 넓은 나라 각지에 깔린 깔끔한 도로를 보면. 바다면 바다, 산이면 산, 사막이면 사막, 다양한 자연환경을 보면. 자유로운 사회분위기를 보면, 부러움에 치를 부들부들 떨 정도다.
그런데 이건 확실하다. 총 때문에 사람을 의심해야 하고, 뚜렷한 이유 없이 눈알을 굴리며 어디서든 두려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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