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 초딩은 잠을 잘 수 없었나
은 식탁에 앉아 공부를 했다. 밤 11시가 넘은 시각. 어린이의 두 발은 바닥에 채 닿지 않아 허공을 헤맸다.
뜨끈한 집 공기에 고개가 꺾였다. 안쓰럽게 바라보던 엄마는 껌을 권했다.
"이 껌은 이 닦아도 씹어도 되는 거래."
자일리톨이 한국에 출시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나는 껌을 씹으며 검지에 힘을 꽉 줬다. 그래도 내려오는 눈꺼풀은 막을 수 없었다.
'왜 나는 잘 수 없을까?'
아무리 졸려도 할 건 하고 자야 했다.
이었고, 추웠으며 또 밤이었다.
"복도 한 바퀴 돌고 올까?"
소녀는 어린이 내복을 입고 복도 이쪽에서 저쪽까지 뛰었다.
시원한 바람이 가슴속을 스며들었지만, 순간뿐이었다. 그렇게 난 한 시간은 더 공부하고 잤을 거다.
국어, 영어, 수학 등 모든 과목을 가르치는 종합학원에 들어갔다. 공부를 잘한다는 친구들 사이에 끼어 수업을 들었다.
학원 수업 시작은 6시 정도였고, 끝나는 시간은 밤 12시 20분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수백 명이 같은 공간에 들어앉아 수업을 듣고 자습도 했다.
"배고프지 밥 먹자~"
집에 오면 엄마는 밥을 차려 줬다. 난 허겁지겁 밥을 들이켰다. 그 시간에 밥이라니, 살은 뒤룩뒤룩 찔 수밖에 없었다.
새벽 1시, 당시 MBC 라디오 '최정원의 감성시대'를 들으며 잠에 들 채비를 했다.
무릎이 아팠다. 어른들은 성장통이라고 했다. 엄마는 내 다리를 주무르며 함께 졸았다. 나는 키가 안 큰 이유를 이 시절에서 찾곤 한다.
이런 날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계속됐다. 어른들은 내게 의사도 묻지 않고 나를 구슬려 책상에 앉혔다. 어른들은 자신을 믿으라고 했다.
그들을 비난할 순 없다. 다 나 잘되라고 그런 거니까. 그리고 사회는 그것만이 성공의 길이라고 몰아붙였으니까.
2012년 교환학생 때 다른 나라 아이들을 보며 깨달았다. 그들에게는 원하는 삶을 가꿔 온 내력이 있었다.
2013년 취업 전선에 떨어졌을 때 다시 깨달았다. 20살 때까지는 공부만 하라 그러더니, 24살이 되니 공부 외엔 뭐 했냐고 나를 몰아세웠다. 대기업에 취직해도 40대 중반 이후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했다. 신의 직장은 공무원이 됐다.
난 남들의 시선, 하다못해 부모님의 시선도 무서워하던 아이여서 아래 일곱 살 어린이와 같은 말은 입밖에도 내지 못했다.
하지만 언제나 마음은 이 말을 외쳤다.
내 아이에겐 이런 삶을 물려줄 순 없다. 한국에서도 다르게 살 수 있다고?
이게 요즘 유치원 입학 문제라는데? 뭔가 단단히 잘못됐다.
난 아이에게 행복한 유년시절을 선물하고 싶다. 부모와도 건강한 애착관계를 만들어, 어른이 돼도 흔들리지 않는 아이로 키울 거다.
*ㄱㅅ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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