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먹으면서도 이민 가려는 이유
이민을 생각하게 된 건 초등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5학년 여름방학, 두 달간 미국 캘리포니아에 사시는 이모 댁에 머물렀다.
"아빠 회사 다녀올게~~"
"아빠 다녀왔어~"
당시 30대 후반 정도였을 이모부는 해가 떴을 때 출근하고, 해가 떴을 때 퇴근했다. 그리고 매일 초록빛이 감도는 공원에서 아들 딸과 산책을 하고 농구도 했다.
퇴근하고 나서도 그만큼이나 에너지가 남았다. 그 에너지는 아내에게, 아이들에게 든든한 지지대가 돼 줬다.
같은 시각, 대한민국 인천의 어느 아파트.
아빠는 억울했다. 본인은 미처 억울하다 생각하지 않을 수 있어도, 내가 보기에 아빠는 억울한 삶을 살았다.
돈이 없어 이사 가지도 못하는 거 뻔히 알고도, 그 회사는 인천 끄트머리에 사는 사람을 경기도 수원으로 발령 냈다. 아빠는 매일 50km가 넘는 도로를 달리고 달렸다.
새벽 해가 뜨기 전에 길을 나섰다. 야근은 필수. 어떻게든 집에 일찍 도착하려는 마음에 저녁밥도 안 먹고 일을 끝냈다. 그래도 9시가 넘기 일쑤였다. 그렇게 배가 곯은 채로 다시 수원에서 인천으로 향했다.
인천항에 다다른 구간에는 거대한 화물차가 줄지어 달렸다. 그 깜깜한 밤에 아빠는 흙먼지를 날리며 위협적으로 달리는 화물차 사이에 있었다. 그 당시 아빠 차는 10년 넘은 작은 엘란트라였다.
"아빠 왔다!"
딸들이 보인다. 내가 일하는 이유.
딸들은 나를 반갑게 맞아주지만, 그것도 잠깐이다. 밥 먹으면 10시 반이 넘고, 딸들은 잔다. tv보다 깜빡 잠들면 하루는 그렇게 끝난다. 새벽 6시는 빠르게 돌아온다. 그땐 토요일도 법정 근무일이었던 시절.
회사에서 일하면서 딸을 둘 낳았다. 남들은 부러워했다. 하지만 딸 키우는 것도 내 맘대로 되지 않았다. 어릴 땐 몰랐지만, 커 보니 깨달았다. 딸과 아빠는 '겉으로만' 친한 관계를 쌓아왔을 뿐, 나는 딸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서로 마음을 나누는 연습조차 못 했다. 그래서 여전히 외롭다.
정년이 되기 전 회사는 내게 나가라 했다. 되도록이면 오래 일해 보려고, 우리 집에는 '내 돈으로' 산 회사 물건이 즐비했는데. 때가 되면 나오는 '신상 기계'를 회사는 영업직도 아닌 내게 떠맡겼다. 영업 나갈 시간도 없는데, 가족에게 팔 수밖에. 그렇게 산 신상 기계는 딸들에게 갔고, 딸 친구들은 우리 딸이 잘 사는 줄로 알았다고 했다.
아무튼, 20년 넘게 뼈가 삭도록 일한 회사에서 나는 50대 중반 나이에 떠밀려 나왔다. 퇴사 다음 달, 난 원치도 않는 병 진단을 받았다. 가족과의 미안하고도 불편한 동거가 시작됐다.
이렇게 아빠 세대가 지나고, 내 세대가 왔다. 나는 아빠와 같은 삶을 살지 않으려 발버둥 쳤다.
평범한 직장인이 되지 않은 것도, 어떻게든 대학원에 진학해 보려 했던 것도, 혀를 차는 사람들 시선에도 첫 직장을 작은 인터넷 매체로 정했던 것도, 다 아빠와 같은 삶을 살아보지 않으려는 시도였다. 그렇게 3년이 지났다.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지고 있어도, 적어도 내 세대에는 15년 전 이모부와 같은 삶을 살기는 어려웠다.
아주 돈이 많아서 여유롭거나, 재능이 뛰어나 특별한 삶을 살지 않는 이상 나같이 평범한 사람은 25년 전 아빠와 비슷한 삶을 살아야 했다. 여전히 동일한 대한민국의 싸이클.
그래서 나는 이민을 간다.
그곳에서 내가 어떤 직업을 가질지, 어떤 차별을 받을지, 그러다 하층민이 돼 버릴지도(이건 지금도 마찬가지) 모른다. 그래도 간다. 여기서 이렇게 똑같은 삶을 살아갈 순 없다.
*ㄱㅅ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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