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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진 May 03. 2023

프랑수아 알라르 : 비지트 프리베

장소애(場所愛). 풍경이나 장소에 대한 사랑


Topophilia, 시인 김소연의 산문집 「어금니 깨물기」에서 이 단어를 처음 봤다. 첫 문장을 읽다가 대번에 궁금한 미간이 지어졌다. '공간이라는 말을 즐겨 쓰다가 언젠가부터 장소라는 말을 더 자주 사용하게 되었다.' 나는 두 단어의 뜻을 의식적으로 구별해서 사용한 적이 있었나. 어떤 약속을 하면서 우리가 만날 '장소'를 정하는 데 썼고, 어떤 여행 중 멋들어진 '공간'에서 마신 커피가 떠오를 때 말하고 싶은 느낌대로 사용한 정도. 길치의 특징이 느낌대로 갈 방향을 정하기 때문이라는데. 그렇다고 한다면, 난 두 단어 사이에서도 길치의 면모를 보인 것 같다.

시인은 두 단어의 차이를 활자로써 표현했다. '장소는 시간이 부여해준 가치와 역사가 부여해준 이야기를 함께 담은, 고유한 이름이 있는 공간이다. 장소는 유일하고 공간은 보편이다. 장소는 변화를 겪고 공간은 그대로다. 장소는 파괴되지 않지만, 공간은 파괴될 수 있다. 지붕이 무너지고 벽이 허물어져도 그곳에 깃든 이야기마저 소멸시키지는 못한다는 점에서, 장소는 언제까지나 건재할 수 있다.'라고.



프랑수아 알라르는 당신만의 장소애를 수천 장의 사진으로 표현했다. 첫 시작은 단순한 호기심이었을지도 모른다. 저명한 예술가의 일상이 담긴 거주공간, 취향과 영감이 혼재하는 작업공간은 어떻게 생겼을까, 가보고 싶다. 공상이 숙성되면 열망이 되기 마련. 그는 시대의 미술가, 음악가, 디자이너들의 집과 아틀리에를 필름에 담았다.


사울 레이터의 생가(왼), 카프리 섬의 말라파르테 주택(오)

작가의 사진은 보통의 인테리어 사진과는 달랐다. 오랜 우상인 사이 톰블리의 사적공간에 초대받기 위해 두드린 15년의 감격이 담겨서인지, 카프리 섬 절벽 끝에 지어진 말라파르테 주택에서 바라본 해안을 포착하기 위해 기다린 10년의 해방감이 느껴져서인지, 어떤 연인의 연애와 함께 짓게 된 별장이 건축 중 이별로 중단돼 폐건물이 되고만 공간을 ‘사랑의 역설‘이라 표현한 감각 때문인지. 공간과 오브제를 기술적으로 찍었다기엔 글쎄, 그것만으로는 알라르가 담고자 한 장소애를 설명하기 쉽지 않다.공간과 오브제를 기술적으로 찍었다기엔 글쎄, 그것만으로는 알라르가 담고자 한 장소애를 설명하기 쉽지 않다.



시인의 글 말미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한 장소에 사는 한 명의 예술가가 그 장소에 대하여 세세한 기록을 남겨 그 이야기를 붙들어놓고 그 이야기가 소멸되지 않도록 기록해두는 일은 소중하다. 가시적으로는 모든 것을 잃는 듯해 보이겠지만 비가시적으로 잃지 않는 것이나 다음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활자와 사진으로 ‘장소애’에 알맞게 링크된 순간. 시인 김소연의 해석으로 사진작가 프랑수아 알라르의 작품을 천천히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공간에 서사를 넣어 마침내 장소를 만들어가는 프랑수아 알라르의 토포필리아, 완벽하게 사적인 방문.



프랑수아 알라르 : 비지트 프리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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