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수진 Dec 06. 2023

오랜 날, 오랜 밤, 오랜만에

영화 「싱글 인 서울」

오랜 날, 영호

오라 청하지 않았던 날도 결국은 오더라. 마치 제 계절을 만나지 못해 푸르게 설익은 감을 베어 문 듯, 쓰고 떫기만 한 날들의 기억. 시작을 말든지, 끝을 말든지. 숨을 내쉴 때마다 코끝에 남는 그 떫은 향이 오랫동안 지끈하게 괴롭힌다.


오랜 밤, 현진

둘의 시작이란, 어찌 낭만적이기만 한지. 소란하게 상승하는 마음을 굳이 막을 필요는 없지 않나. 어수선한 방 안, 어두운 부엌에서 혼자 먹는 사발면은 맹숭맹숭하기만 하다. 노란 전등 빛만이 내려앉은 여기 내 앞에, 당신이 앉아 있다면 어떨까 살짝 턱을 괴어 본다.


한창 영화에 빠진 동안은 추운 이 계절에만 느낄 수 있는 버석한 공기와 몽글한 분위기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거리에 꽃 하나 없이 마른 계절은 되레, 서로를 위하는 애정으로 빈 나뭇가지를 채우기 더없이 좋으니. 이번 겨울, 나의 빈 나뭇가지 위에는 겨울비가 쏟아진 다음 날같이 명료한 영호와 폭닥폭닥 눈 내리는 밤처럼 수선한 현진의 느린 로맨스가 소복이 내려앉은 듯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런 기분

영화관은 두 계절의 ‘서울’을 보러 온 관객들로 가득했다. 이번 주말에는 무얼 볼까 리모컨 똑딱 유튜브 쓱쓱 넘기기보다, 양손에 갓 튀긴 캐러멜 팝콘 한 소쿠리와 얼음 동동 띄운 제로 콜라 한 컵 나눠 들고 영화관으로 외출해 보는 건 어떨까.


12월의 겨울,

어느 곳보다 무해하고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서울은 여기뿐.


영화 「싱글 인 서울」




작가의 이전글 프랑수아 알라르 : 비지트 프리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