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재즈 클럽

House of Blues & Jazz

by 이수진

“그냥 걸어가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이 말을 이해하는 데 한 박자 늦었다. 날씨에 취약한 두 명은 오늘 저녁부터 비가 온다는 예보에, 이른 오전부터 상하이 시내 5km를 뛰었다. 오후 동안은 신호등조차 계속 초록불이어서, 쉴 틈도 없이 모든 거리를 뚜벅뚜벅 걸었고. 방금 전까지는 비에 젖은 와이탄 야경에 “이게 낭만 아니겠냐”라며 망고 스무디의 힘으로 황푸강 강변을 동서남북으로 만끽했으니 말이다.


우산 하나를 나눠 쓰고, 서로의 발을 맞추며 걷다 보니 오래된 이야기들이 톡톡 떠올랐다. 우리가 열네 살이던 여름방학, 갑자기 쏟아진 비에 쫄딱 젖어 뛰어 들어갔던 포장마차. 그곳에서 먹었던 떡볶이와 사르르 몸을 녹여 주던 어묵 국물이 진짜 맛있었다는 얘기부터. 여행 오기 일주일 전, 여의도 한강공원을 뛰다 예고 없이 내린 비에 뜻밖의 우중 러닝을 하게 됐던 일까지. 함께 보낸 20년의 시간 속에 같은 추억들이 방울방울 맺혀 있었다.


우리는 아침부터 얼마나 걸었는지도 잊은 채, 이제 막 산책을 나온 사람들처럼 계속 걸었다. 빗줄기는 점점 굵어졌고, 어느덧 자정이 가까워졌다. 아무래도 이번 상하이 여행은 이쯤에서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호텔까지는 2~3km 남짓 남아 있었고, 궂은 날씨에 택시는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더할 일정도 돌아갈 다른 방법도 딱히 없었다. 지도 앱을 훑어보던 친구는 덤덤하게 “그냥 더 걷자”라고 말했다. 진작 3만 보를 넘긴 지금, 지붕 뚫린 만보계에 마지막 박차를 가해 보기로 한다.


안개처럼 희뿌연 비였다면 이런 느낌은 아니었을 텐데, 적당히 힘 있게 쏟아지는 비에 기분은 오히려 상쾌했다. 잠시 비를 피하던 건물에서 나와 다시 우산을 폈다. 길목을 돌아 걷기 시작한 지 5분쯤 지났을까. 여행 전, 어느 블로그에서 스치듯 봤던 재즈 바가 눈앞에 나타났다. 오래된 건물 뒤편에 숨어 있던 출입구. 모든 순간이 우리를 여기로 이끌기 위해 설계된 것만 같았다. 진한 색소폰 소리가 문밖까지 흘러나왔고, 이 걸음을 계속하기에는 이 우연이 너무 완벽했다.


House of Blues & Jazz(Waitan, Shangh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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