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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집가 Jan 02. 2024

회사에서 드센 여자로 살아남기

#2_누가 괴롭히면 나한테 말해요



직장생활 9년 차, 1년 정도 쉬는 기간이 있었지만 어느덧 회사에서 중간 관리자다. 오늘 팀에 신입사원이 들어왔다. 떨려하며 첫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니 9년 전 긴장되던 첫 출근날이 떠올랐다. 파트도 다르고 내가 이 회사에 이직한 지 이제 막 1년이 지난 상황이라 큰 도움은 못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럼 뭘 해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 다른 건 자신 없어도 누군가 괴롭히면 목소리 내어줄 사람은 될 수 있겠다는 자신이 있었다.


목소리 내주는 사람은 사회 초년생일 때의 내가 가장 필요로 했던 사람이다. 눈감지 않고, 귀 막지 않는 정의로운 사람. 나도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나는 지금까지 세 개의 회사를 다니며 점점 더 세진 대기만성형 인간이다. 누군가가 보기엔 그냥 소리만 크게 내는 몰티즈나 포메라니안쯤으로 여길 수 있겠지만, 이젠 나를 건드리는 사람이 있으면 물을 수 있을 정도로는 컸다. 첫 회사에서는 내가 나를 지키는 방법을 몰라서 참 많이도 망가졌다. 주량 이상으로 억지로 술을 마시고 다음날엔 변기통을 붙잡고 내내 토한 적도 많았고, 얼마 전 룸살롱 갔다 왔다는 팀장님의 자랑(?)을 수십 번도 더 들었다. 취해서인지 취한척해서인지 회식자리의 나를 룸살롱 직원으로 여기는 듯한 그의 행동에도 슬며시 자리를 피할 뿐 짖거나 무는 법을 몰랐다.


분명 같은 테이블에서 내가 당하는 걸 본 사람들도 나를 위해 목소리 내어주진 않았다. 나조차도 찍소리 내지 않으니 그들로서는 더 힘들었겠지, 이제는 이해할 수 있지만 당시엔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직원들이 원망스러웠다. 팀장은 나뿐만 아니라 우리 팀의 모든 여자 직원들에게, 그전엔 지방 사업장의 계약직 직원들에게, 그전엔 CS 부서의 어린 여자 직원들에게 나쁜 짓을 했다. 회사는 다 알고도 그를 내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참다 참다 퇴사를 말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라는 심정으로. 다른 팀 보내주면 남을 거냐는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했다. 한 번 결정 내리면 누가 와도 못 꺾는 내 고집 덕분에 나오는 과정은 비교적 간단했다.


일 년 정도 쉬며 내 안에 있던 더럽고 어두운 감정들을 덜어냈다. 혼자 한 달 살기를 훌쩍 떠나고, 제대로 된 사람과 연애하며 인간 혐오를 극복했다. 모아둔 돈이 떨어졌고 집에서 마냥 빈둥거리기에는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사회생활을 하러 나가야 했고 전과 같은 날들이 계속될까 봐 겁이 났다. 그래서 아주아주 뾰족한 가시를 세우고 회사를 다녔다.


그래서 지금은 어떻냐고요?


쉽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 말을 걸기에도(이건 좋은 것 같지만은 않습니다만), 같이 일을 하기에도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은 사람 취급받고 있다. 후배들은 '저 나중에 이직하면 선임님처럼 할 거예요'라고 말한다. 팀장님보다 빨리 퇴근해도 뭐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일을 못하진 않아서라고 첨언을 해봅니다)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재깍재깍 직접 말한다. 오해가 쌓일 틈이 없어 속 시원하지만 그래서인지 사람들 사이에 '김선임 님한테 혼나기 전에'라는 밈이 생겼다. (억울합니다. 전 혼낸 적 없어요)


신입사원은 내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에게 하는 말이 의식하지 않아도 내게 들린다. "퇴근할 땐 노트북 시건장치 꼭 하고 가요. 안 그럼 김선임 님한테 혼나요"라는 말을 듣고 피식 거리며 다짐했다. 누가 괴롭히면 혼내주는 사람이 되겠다고.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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