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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집가 Jan 03. 2024

내겐 너무 아까운 OO

#3_24시간이 모자라


사람마다 아끼는 건 다르다. 남편은 휴지든, 비닐봉지든, 옷이든 생명이 다한 것들조차 한 번 더 쓰고 버린다. 비닐봉지도 씻고 다시 쓰고, 또 씻고 또 쓰는 그런 종류의 사람. 신혼 초에는 식탁에도, 싱크대 옆에도, 협탁에도 모든 곳에 이미 한 번 쓴 휴지들이 널브러져 있어 화도 냈지만, 이제 그러려니 하게 됐다. (지구를 위한 거라서, 뭐라 못하겠더라고요...)

차라리 ...죽여줘 .jpg

내가 아까워하는 건 뭘까 생각해 봤다.

돈? 아낀다기엔 너무 생각 없이 쓰는 것 같다.

옷? 아까워서 안 입는 옷은 없고 좋아서 맨날 입고 싶은 옷은 있다.

음식? 썩은 식자재를 보면 죄책감이 들지만 식당에서 억지로 다 먹기보다는 남기는 편이다.


여러 후보들을 올렸다 내렸다 하며 내린 결론은 시간이었다. 평소 싫은 말을 잘 안 하는 편인데 쓸데없는 회의에 가거나 미팅을 하고 나면 '제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다신 이런 회의 들어가고 싶지 않아요.'라고 대놓고 말할 정도로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아까워한다. 물론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어플 속을 헤엄치며 몇 시간씩 낭비할 때도 있긴 하지만, 내가 낭비하는 시간과 내게 낭비되는 시간은 엄연히 다르다.


왜 이렇게 시간을 아까워하게 됐을까?


나는 기억력이 좋지 않다. 그래서 남들보다 2배 열심히 살아도, 남들의 반 정도밖에 기억하지 못한다. 또 성격이 급해 깊게 고민하지 않고 빨리 결정 내린다. 그렇게 급히 내린 결론은 제대로 되지 않은 것들이 많아서, 정확하게 원하는 바가 있는 사람보다 한참을 돌아간다. 그래서 내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더 많이 헤매고 더 많이 경험해야 겨우 내가 되니까.


한때는 기억력을 향상해 보려고 뇌에 좋다는 영양제도 먹고, 화투도 치고 나름대로 노력을 했다. 그리고 생각에 생각을 더해 결론을 내려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영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종이에 장점 단점 주르륵 나열해 가며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기보다는, 에라 모르겠다 그냥 직접 부딪혀봐야 속이 편하다. 직선 길을 뺑 돌아 갈지라도.



잘못된 사이즈의 옷을 입고 다른 사람의 속도로 살지 않는 대신 나의 이야기를 쓴다. 역시 시간도 노력도 많이 드는 일이지만, 돌아가는 걸 좋아하는 나니까 어쩔 수 없다. 두 배만큼의 노력은 나만 아니까, 나만 읽는 한이 있더라도 써서 남겨두는 것이다. 대충 내린 결론으로 여기저기 헤맨 길도 역시 나만 아니까. 그 길에서 만난 우연한 아름다움을 남겨두는 것이다. 언젠가 시간이 많이 남을 내가 잊지 않고 회상할 수 있도록 지금 순간순간의 생각을 꼭꼭 씹어 꾹꾹 눌러쓴다.


여러분이 가장 아까워하는 건 뭔가요? 그 답이 당신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요?



#100일글쓰기

#영감수집

#아까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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