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철, 모든 요일의 기록
읽고 기억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일까?
타고난 기억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 책을 읽고 감명받아 밑줄 치고 서평도 썼지만, 다시 볼땐 늘 새로워하는 사람. 한참 읽다가 그어진 밑줄을 보고 그제야 '아 내가 이 책 읽었구나!' 알게 되는 사람. 그래서 한동안 읽는 것의 무용함을 느끼고 독서를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알게 된 <모든 요일의 기록>이란 책은 읽고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다는, '나'라는 나무가 자라날 토양이 비옥해지고 있다는 안심을 주었다. 그리고 언제 어떤 나무를 길러내고 싶어도 잘 준비된 토양이고 싶은 마음을 먹게 했다.
나는 내가 비옥한 토양을 가진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여기에서 어떤 나무가 자라날지는 모르겠지만 그 나무가 튼튼했으면,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200)
김민철 작가의 책을 읽으며 10년, 20년 뒤 내공이 쌓인 내가 쓴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친근한 기억력뿐만 아니라, 쉽게 좋아하는 마음, 늘 뭔가를 바쁘게 배우고 있는 행동,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경험을 쌓는 일상 등 동질감을 느낄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더 좋아하고 더 읽고 싶어졌다. 좋아하는 작가를 닮게 된다던데,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김민철이라 미래가 기대되었다. 그래서 서평의 시작은 이 책이어야 했다.
<모든 요일의 기록>은 말 그대로 읽고, 듣고, 찍고, 배우고, 쓰는 모든 날들의 이야기이다. 좁고 좁은 내가 넓은 세상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 많은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 나는 읽는다. 에세이도 읽고, 소설도 읽고, 인문학도 읽는다. 매번 다른 책 읽는 걸 좋아하는지라 두 번 이상 읽은 책이 손에 꼽는데, 이 책은 이미 5번 ~ 10번 정도 읽었다. 아마 살면서 계속 읽을 테니 내 생에 가장 여러 번 읽은/읽을 책이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곳에 밑줄 치게 되는 경험. 그 경험이 쌓여 20대, 30대, 40대의 나는 이런 문장을 좋아했구나 되돌아볼 수 있는 책이 되리라 확신한다.
그러나 모든 독서는 기본적으로 오독이지 않을까? 그리고 그 오독의 순간도 나에겐 소중할 수밖에 없다. 그 순간 그 책은 나와 교감했다는 이야기니까. 그 순간 그 책은 나만의 책이 되었다는 이야기니까. 그때 나를 성장시켰든, 나를 위로했든,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든, 그 책의 임무는 그때 끝난 거다. (40)
블로그에 300권이 넘는 책의 서평을 써왔다. 하지만 누가 읽었으면 하는 글이 아닌 아카이빙 목적의 글이었다. 읽히기 위한 서평은 낯설지만, 혼자만의 독서보다는 함께하는 독서를 하고 싶어 일단 시작해본다.
뚜벅뚜벅 걷다 보면, 만나는 길과 사람들을 통해 또 새로운 것을 알게 될 것이기에.
후회와 미련은 나의 단어가 아니다. 다만, 내 삶이,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다른 길로 멀리 펼쳐져 있음을 깨달았을 뿐이다. 그 길이 어떨지, 선택하지 않은 그 길은 또 어떨지, 나는 결코 알지 못한다. 다만 충실히 뚜벅뚜벅 걸어갈 뿐이다. (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