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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집가 Aug 17. 2024

[노각] 아빠에게 70만 원 티셔츠가 생겼다

바람인가, 로또인가


이게 다 아빠 때문이다.

마음에 드는 셔츠를 색깔별로 사고, 편한 속옷이나 양말은 수 십 개씩 쟁여두는 나의 쟁여병도,

운동 시작에 앞서 고수들이 쓰는 장비를 미리 사두는 것도,

귀에 염증이 생겨도 이어폰과 에어팟, 헤드셋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도.

사는 걸 좋아해 결국 직장에서도 구매팀으로 10년 가까이 일 하고 있는 것도.


취미 부자 아빠는 내 생일엔 본인이 더 들떠있었다. 초등학생 땐 MD와 CD 플레이어를, 중학생 땐 MP3를, 고등학생땐 무려 아이팟을 사주었고 크리스마스엔 스타크래프트와 심즈, 해리포터 게임 CD를 사주었다. 보통 뭘 갖고 싶어 하면 그걸 사주는 게 선물일 텐데, 아빠가 주는 선물은 그야말로 아빠의 취향이 가득 담긴 것들이었다. 하지만 유튜브도, 틱톡도 없던 시절엔 아빠의 선물 덕분에 친구들 사이에서 유명한 (친구가 몇 없었지만,,,) 얼리 어답터였다.


딸에게 취향을 조기교육 시키던 아빠는 자기의 취미도 야무지게 챙겼다. 볼링에 빠져있을 땐 엄마랑 커플 볼링공을 맞추고, 가방, 장갑, 옷 등 '볼링용' 장비들을 샀다. 골프에 입문하고부터는 골프채, 신발, 거리 측정기 등 바쁘게 사 날랐다. 그 시절 아빠는 잘 벌고 잘 쓰는 사람이었다. 토목 쪽 일을 하던 아빠에게 4대 강 사업을 하던 2010년 전후는 르네상스였고 나는  그 덕분에 걱정 없이 유럽 여행을, 미국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바깥으로 나도느라 몰랐다. 그 후 10년은 서서히 하락세였음을, 그리고 코로나를 기점으로 더 힘들어졌다는 사실을. 결혼 후 30년 넘는 세월 동안 늘면 늘었지 줄어든 적 없는 생활비를 끊은 것도 그즈음이었다. 언니와 엄마와 나는 가세가 기우는 것도 모르고 있었던 터라 크게 당황했다. 처음 한 두 달은 아빠가 상심이 클 테니 아무 말 안 했다. 집 대출도 갚아야 하고, 매일 장도 봐야 하는데 예고도 없이 갑자기 끊긴 생활비 때문에 점점 초조해지는 엄마를 보며 언니랑 내가 돈을 좀 내야 하나 싶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의 생활비가 다시 입금됐고, 전보다 턱도 없이 적은 금액이지만 0원일 때와 비교하면 그마저 감사한 일로 여기며 지냈다.


무심한 과거를 인정하기보다는 몰랐던 척 발 빼는 게 더 쉬웠기에 갑작스레 맞이한 하락세라고 표현했지만, 이제 와서 보면 여기저기 하락의 징후가 있었다. 아빠와 함께 일하는 삼촌이 '너네 아빠 낮에 술 좀 그만 드시라 해'라고 했을 때, 장비병 있는 아빠가 골프채를 세트로 사지 않고 하나씩 바꿀 때 (안 사진 않더라고요..), 새로운 기계를 좋아하는 아빠의 휴대폰이 4년째 그대로일 때. 눈치가 조금 빨랐다면 아빠 혼자 짊어진 가장의 무게를 나눠 들 수도 있었을 텐데. 아니, 사실 짠순이인 나는 알면서도 모른 채 지냈던 것 같기도 하다

.


텃밭을 할 때 아빠를 위한 작물 하나쯤은 기르고 싶었다. 제철 음식, 산지 직송을 유달리 좋아하는 아빠가 좋아하는 노각(늙은 오이)의 모종을 사서 가장 볕 좋은 곳에 심었다. 지지대도 마련해 주고 오이가 타고 올라갈 넝쿨도 감아줬다. 보통 오이보다 크고 물이 많은 노각에 고춧가루, 고추장, 설탕, 깨, 참기름만 넣으면 여름 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밑반찬이 된다. 도시의 마트엔 잘 팔지 않아 텃밭 하는 지인에게 하나 둘 얻어서야 겨우 만드는 노각무침. 그걸 주고 싶었다.

노각 지지대를 만드는 중


상추, 쑥갓, 강낭콩 등 기르는 작물마다 쑥쑥 잘 자라 초심자의 행운을 만끽하던 내게 첫 시련은 하필 노각이었다. 잎이 바스락거리길래 너무 더운가 싶어 매만지다가 보니 뒷면에 자글자글 검은깨 같은 게 묻어 있었다. 잎이 큰 작물에 쉽게 생긴다는 진딧물이었다. 놀란마음에 잎 여러 장을 잘라버리고 집에 와서 찾아보니 물 1.5리터에 마요네즈 한 티스푼을 섞어 잎 뒤에 골고루 뿌려보라고 한다. 케일이나 가지였다면 미련 없이 뽑아버렸을 텐데, 노각만큼은 살리고 싶었다. 아빠가 좋아하는 노각. 지금 당장의 시련은 있지만 결국 잘 극복시킬 노각.


주말 하루 겨우 갔던 텃밭에 자주 가게 되었다. 회사도 다녀야 하니 매일 가진 못하지만 내가 한번, 남편이 한번 가서 꼼꼼하게 마요네즈물을 뿌렸다. 그렇게 세네 번 정도 관심을 기울이니 기적처럼 살아났다. 잎 뒤가 깨끗하고 촉촉했다. 꽃도 피고 벌도 앉아있더니 결국 열매를 맺어냈다. 기특하고 대견한 노각이 크게 자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몇 개 수확해 노각무침을 만들었다. 결과는 절반의 성공. 고춧가루가 너무 커 고춧가루 노각이 됐다. 볼품없어 아빠에게 주진 못했다.


얼마 전 엘리베이터에서 아빠를 마주쳤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메리야스와 트렁크를 입은 채 앉아있는 아빠만 보다가 오랜만에 옷 입은 아빠를 본 거다. 근데 아빠가 회색 몽클레어 카라티를 입고 있었다. ‘엥? 아빠 이 옷 어디서 났어?’ 물었더니 아빠가 샀다고 답했다. 다음날엔 출장 때문에 늦게 출근하느라 아빠가 나가는 모습을 봤는데 어제와는 다른 짙은 회색의 몽클레어 카라티였다. 아빠에게 '오 ~ 아빠 몽클레어도 알아?' 했더니 '아빠 다 안다'며 뿌듯해했다. 도대체 몇 개나 있는 거야 궁금한 한편, 다시 아빠에게 취미가 생겨 기뻤다. 버버리나 프라다 로고의 카라티였으면 엄마에게 바로 들켰을 텐데, 그러면 그 옷 살 돈으로 생활비를 더 내라며 잔소리 들었겠지? 당분간 아빠의 몽클레어 사랑은 우리끼리의 비밀로 해둬야겠다. 노각무침은 맛있게 못해줘도 생일에 몽클레어 사주려면 열심히 돈을 모아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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