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나는 남들의 친절에 약한 편이다. 그래서 호텔 같은 서비스 영역에 들어가면 몹시 불안해지는데, 내가 받을 권리가 없는 친절을 받으면 마음 깊이 민망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얼마 전 베트남에서 어느 호텔에 묵었다. 첫날 체크인하는데 갑자기 직원이 로비에 앉아 기다리던 내 앞으로 와서 무릎을 꿇더니(세상에, 죽고 싶었다) 목에 화관을 걸어주는 것이 아닌가(그 순간엔 두 번 죽을 수 있다면 기꺼이 그러고 싶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태어나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에게 무릎을 꿇는다는 행위가 보편적이지 않은 인생을 살아와서인지 나는 남이 내 앞에서 무릎을 꿇거나 하는 행위를 지켜보는 것이 몹시 괴롭다. 제가 왕정시대의 왕도 아닌데 왜 제 앞에 무릎을 꿇으시는 건가요, 제발 그러지 마세요, 하고 말할 틈도 없다. 그런 일들은 늘 내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징조 없이 이루어지며(난 호텔 로비에서 무릎 꿇은 직원이 내 목에 화관을 걸어주는 광경을 그 일 초 전에도 예상하지 못했다) 막기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나는 민망해서 쥐구멍에라도 얼굴을 박고 싶은 심정이었다. 직원분은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환영한다며 활짝 웃어 보였고.
때때로 호텔에선 정말 사소한 일로도 죄송하다는 말을 듣게 되는데 그럴 때도 좌불안석이다. 그냥 커피가 다 떨어졌을 뿐이고 그건 직원 탓이 아닌데 너무 죄송하다고 거듭 말하는 것을 듣고 있으면 나도 마주 죄송한 기분이 되어버린다. 그 커피를 혼자 다 드신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죄송해하세요. 혹시 내가 컴플레인이라도 걸면 불이익이 있을 테니까? 그래서 그런 걸까. 때때론 서비스의 생리를 잘 모르겠어서 아리송하다. 직원과 나 사이엔 서로 죄송함만 쌓이는데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손님이 왕이라는 말은 누가 만들었을까. 나는 왕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는데. 내가 돈을 냈다고 해서 남이 내 앞에 무릎을 꿇게 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하는 사람이 그저 자본주의 서비스의 업무를 행하는 것뿐이고 아무 생각도 없다 해도 지켜보는 내가 너무 민망하니까. 그리고 나 역시도 서비스라는 명목 하에 무릎을 꿇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내가 낸 돈이 공간이나 물건이 제공하는 편리함이길, 만약 사람이 개입한다면 평등한 관계를 전제하길 기대하지 다른 사람이 그렇게 자세를 낮추어 제공하는 서비스인 것은 싫다. 나는 남들의 친절이 늘 평등한 관계에서만 머물렀으면 좋겠다. 친절한 사람들을 좋아하지만 혹시라도 그것이 그 사람들에게 굴욕이라면 차라리 친절하지 않은 편이 낫다. 내 마음이 편하기 위해서 그 편이 더 좋다.
아무도 나한테 필요 이상으로 미안해하지 말았으면 좋겠고 정말 두 번 다시는 무릎은 꿇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 그런 왕정시대 예절까지 돈으로 샀다는 생각을 하고 싶진 않으니, 제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