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번째
아침식사로 흰 식빵을 접시에 올리다가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이런 퍽퍽하고 아무 맛도 나지 않는 식빵이 아침식사로 나오는 기숙사에 한때 살았었다. 나는 성장기였고 자주 배가 고팠으므로 맛대가리 없는 식빵도 꾸역꾸역 입에 쑤셔 넣곤 했다.
갑자기 그 시절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나면서 나는 그때 정말 그런 식빵을 먹었었는지 확인해보고 싶어 졌다. 만약 요즘 같았다면 간단하게 스마트폰 갤러리를 열어보고 찍어둔 사진 같은 걸 확인하겠지만, 그 시절엔 스마트폰도 간단한 디지털카메라도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이어서 사진을 남기는 것이 지금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갑자기 나는 한 시절을 통째로 잃어버린 것 같은 이상한 박탈감에 젖는다.
사진 없는 추억이라는 것. 오로지 기억으로만 남은 기억은 마치 백업조차 하지 않고 날려먹은 원고 같아서, 오로지 내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신기루이다. 추억팔이를 할 때조차도 끊임없이 그 기억이 정말 있었던 일이긴 한지, 오로지 내 상상에만 존재하는 건 아닌지 의심해야 하는.
그러나 재미있는 건, 사진이 지금처럼 간단하게 보편화되기 전의 기억은 지금보다 훨씬 더 뚜렷하게 남아있다는 것이다. 내가 스마트폰에 시각적 기억을 의탁하기 전에는 내 뇌도 그럭저럭 최선을 다한 모양이다. 나는 그때의 식빵 맛, 식당 의자와 식탁의 색깔, 접시의 모양 같은 것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 아침 여섯 시에 울리던 알람, 잠이 덜 깨서 눈을 연신 비벼가며 퍽퍽한 빵을 부지런히 씹던 아침.
사진이란 건 종종 망각을 의미하기도 한다. 나는 가끔 갤러리에 시간별로 일목요연히 정리된 사진들을 성의 없이 넘겨보다가, 내가 이런 곳에도 갔었다고? 하고 놀랄 때가 있다. 내 기억을 통째로 스마트폰에 저당 잡힌 것처럼 그 장소에 대해선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기도 한다. 거기서 뭘 했는지, 그 공간의 온도는 어땠는지, 거기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완벽한 백지인 기억을 뒤적거릴 때면 정말로 한 순간을 잃어버린 것은 이런 게 아닌가 싶다. 사진 한 장으로만 남은 그 순간을 정말 내 추억이라고 할 수 있을지.
그러나 여전히 사진이라는 확고한 기록으로 그 시절을 보고 싶은 마음은 억누를 수가 없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누군가 타임머신이라도 개발하지 않는 한 그 시간은 영영 지나가 버린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