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이라고 불러라

3. 나의 7살. 나는 버림받은 아이였다.

by Sophi Perich

집을 나가 마산에서 살던 아빠가 시골집으로 돌아왔다. 아주 젊고 예쁜 언니와 함께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언니는 겨우 갓 20살이 되었거나 20대 초반이었던 걸로 생각된다.


시골집 바로 옆에 할머니, 할아버지 소유의 빈집이 한 채 있었는데 그곳에서 두 사람이 살 것이라고 했다. 어린 마음에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 아빠가 너무도 반가웠다. 예쁜 언니도 함께 와서 나랑 놀아 줄 수 있겠구나 싶어서 너무도 설레었다.


아빠는 헤벌쭉 웃는 나를 집 옆의 골목으로 잡아끌었다. 삼촌이라고 부르라고 했다.

딸 있는 거 저 언니가 모르니까 절대 아빠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빈집에서 살림을 차렸고 나는 매일 언니에게 놀러 갔다. 최선을 다해 아빠를 삼촌이라고 불렀다. 간간이 실수를 하기는 했지만 내 나름 최선을 다해 재빠르게 말을 번복해 위기를 모면하곤 했다.


언니는 참 순한 사람이었다. 검은 생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예쁜 언니는 내 머리도 땋아주었고 책도 읽어주었으며 밭에 나가 놀이를 하듯 밭일을 같이 하기도 했다.


우리 집도 그랬지만 언니와 아빠가 사는 집도 재래식 화장실에 부엌도 밖에 있었고 군불을 지피던 아주 오래된 집이었다. 욕실도 없었고 그냥 수돗가에서 어설프게 몸을 가린 채 목욕을 해야 하는데도 그 젊은 언니는 불평하지 않았다. 빈 집에 무성하게 솟아 오른 잡초를 뽑아내고 창호지가 다 떨어진 문에 새하얀 창호지를 다시 발랐으며 먼지가 진득하게 눌어붙은 대청마루를 하루에 열두 번도 넘게 닦곤 했다. 달가워하지 않는 걸 잘 알면서도 매일 저녁 할머니를 찾아와 식사 준비를 돕기도 했다.


나는 그 언니가 너무도 좋았다. 몇 주 동안 정말 천국이 있다면 이런 곳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행복했었다.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매일 저녁 식사 준비를 돕던 언니가 오지 않은 밤, 낮은 담장 너머 아빠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물건 깨지는 소리와 퍽퍽 누군가를 때리는 소리, 그리고 언니의 비명 소리.


놀란 내가 마당에 내려서기도 전에 할아버지가 한달음에 옆집으로 달려갔다. 할아버지의 무서운 고함소리 뒤로 와장창 물건 깨지는 소리가 났다. 곧이어 아빠가 집을 나가는 듯했고 언니의 서러운 울음이 뒤를 이었다. 나에게 집에 있으라고 신신당부를 한 할머니가 옆 집으로 건너갔다. 두 분은 밤이 늦도록 그 언니와 함께 있었다.


다음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어김없이 일을 나가고 아빠도 일을 나가는 듯했다. 할머니가 며칠은 옆집에 가지 말라고 했지만 너무 걱정이 된 나는 조심스럽게 언니를 찾았다.


얼굴에 멍이 든 언니가 방 안의 이부자리를 깨끗이 정리하고 나와 진주 시내로 나가는 버스 시간을 물었다. 시골이라 하루에 버스가 네 대밖에 없어서 어린 나이에도 기억하고 있었던 나는 언니에게 친절 하게 말해주었다. 집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30분 정도 걸어가야 한다는 것까지.


나를 끌어안은 언니가 미안하다고, 아빠에게 말하지 말라고 했다. '아빠'에게 말하지 말라고 언니가 말했다. 이미 알고 있었다며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이다.


그날 언니는 그 초라한 집을 떠났고 나는 아빠에게 빰을 맞았다. 나의 뺨을 때린 아빠는 할아버지에게 뺨을 맞았고 집에서 당장 나가라는 엄명을 들었다. 며칠 뒤 아빠도 시골집을 떠나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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