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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 Perich Oct 19. 2023

10월 17일, 첫서리가 내렸다

잘 가, 깻잎. 내년에 다시 만나자


첫서리가 내렸다.

9월 말이 되면 기온이 뚝 떨어지는 미네소타는 대부분 10월 중순에 첫서리가 내리고, 10월 말이 되면 첫눈이 온다. 그래도 올해는 첫눈이 늦게 올 거라는 일기예보가 있어서 서리도 좀 늦게 오겠거니 방심하고 있었는데, 기대를 저버리고 10월 17일 새벽에 서리가 내린 것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잘 자란 잎을 미리 따놓기는 했지만, 밤새 얼어버린 작은 이파리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프다. 올봄, 유난히 날씨가 좋지 않아 어렵게 싹을 틔운 깻잎은, 기특하게도 여름 내내 물과 햇빛만으로도 너무 잘 자라주었다. 그렇게 잘 자라 싱그러운 향을 내던 깻잎들이 서리를 맞고 시들시들한  보니 과장을 조금 보태 눈물이 날 것만 다.

이제 정말 겨울이 오는구나 싶어 우울하기도 하고, 내년 여름까진 싱싱한 깻잎은 구경도 못하겠구나 싶어 슬프기도 하다.

미국에 살면서 포기해야 하는 것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입맛은 도저히 내 마음대로 안된다. 김치 없이 먹는 라면은 아무런 맛이 없고, 깻잎 없이 먹는 삼겹살은 무언가 빠진 듯 허전하다. 한인마트가 없는 미국의 소도시에서 살다 보니, 이런 작은 식재료가 더없이 감사하고, 그만큼 아쉬움도 큰 것이다.


현재 영상 10도(밤에는 영상 2도~5도) 정도를 유지하고 있는 Duluth는 머지않아 첫눈이 올 것이다. 짧은 가을이 지나면 6개월의 길고 긴 겨울이 오리라.

잘 가, 나의 깻잎. 내년에 다시 만나자.


서리가 앉은 차고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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