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린 홍시와 화이트 와인(Wine)

인내심

by Sophi Perich


나에겐 3명의 시누이가 있다. 엄연히 따지자면 시누이 한 명에, 동서 두 명인데 이곳에선 그런 촌수를 따지지 않으니 그냥 시누이로 총칭하겠다. 시누이 3명과 나는, 가끔 여자들만 모여서 레스토랑이나 카페를 가서 수다를 떠는 걸스 나잇을 가진다. 남자들 없이 우리끼리만 할 수 있는 이야기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이다.

오늘 오후, 둘루스에 새로 생긴 일식집에서 걸스 나잇을 가졌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시누이 한 명이 연예인들 가십거리 기사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또 시작이구나 싶어 한숨이 나왔다.

어떤 연예인이 누구랑 연애를 한다더라,
어떤 연예인이 어떤 사고를 쳤다더라,
어떤 미식축구 선수가 어떤 부상을 입었다더라,
테일러 스위프트가 콘서트로 얼마를 벌었다더라.

사람을 만나면 의례적으로 묻는 질문들이 있다. 어떻게 지내느냐, 일하는 건 요즘 어떠하냐, 가족들은 평안하냐 하는 것들 말이다. 그것이 기본적인 매너라고 생각하고, 그런 대화가 더 유익하고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나는, 그 시누이와 만날 때면 정말로 피곤하다. 정말 재미가 하나도 없다.

물론, 나도 좋아하는 드라마나 프로그램이 있고, 좋아하는 연예인도 있다. 가끔 그들의 가십거리 기사를 읽기도 하지만 그런 자극적인 기사를 읽고 있으면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무슨 시간 낭비를 하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어 채 일 분도 되지 않아 읽기를 포기하는 편이다.

연예인들 가십거리에서 시작된 그녀의 수다는 3시간 뒤, 연예인들 가십거리로 끝이 났다. 억지 미소에 얼굴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지루함에 계속 하품도 나왔다.

집으로 돌아와 새로 산 와인을 꺼냈다. 이럴 때는 혼술만큼 좋은 것이 없으니.


와알못인 나는 평소엔 슈퍼에서 파는 만원 안팎의 와인을 사 마시곤 하는데, 이번에 브런치에 혼술에 대해 글을 쓰기 위해 내 기준에선 나름 비싼 와인, 39달러나 하는(한화 약 5만 2천 원) 와인을 한 병 산 것이다. 윤여정 배우 덕분에 유명해진 클라우디 베이라는 화이트 와인이다.

오묘한 아이보리 빛의 와인이 꼴록꼴록 소리를 내며 잔에 담긴다. 상큼한 와인의 향에 일순 기분이 좋아진다. 입안을 감싸는 달달한 맛도 일품이고, 침샘을 자극하는 새콤한 맛 또한 훌륭하다. 뭐랄까. 잘 익은 청포도 맛이 나는 것도 같다.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이래서 비싼 와인을 마시는 건가? 와인 전문가분들이 들으면 비웃을지도 모르겠지만, 내 기준에선 5만 원짜리 와인은 정말 비싼 와인이다. 살짝 얼려둔 홍시를 안주 삼으니 최고급 와인바에 와있는 듯한 느낌까지 든다.

조금씩 생각도, 감정도 차분해진다.


알고 있다.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하는 우리는 가끔은 싫은 만남도 가져야 하고, 어색하고 재미없는 시간도 억지웃음을 지으며 견뎌내야 한다는 걸.

한국에 있을 때 이유 불문하고 반드시 참여해야 했던 병원 회식이 그랬고, 술이 취해 내 허벅지를 더듬던 병원 원장의 손길을 감수해야 했을 때도 그랬다. 지금은 연락도 하지 않고, 어떻게 사는지 알 수도 없지만 당시엔 친구라는 이름으로 묶여 그들의 이야기를 흥미로운 척 들어줘야 했을 때가 그랬다.

마흔, 그렇게 적지도 많지도 않은 나이. 점점 인내심이 없어지는 것만 같다. 그런 불필요한 대화와 불필요한 만남에 대한 인내심 말이다.

세 모금 마셨는데 벌써 취하는 것 같다. 제법 도수가 센 와인인가 보다. 그래도 비싼 거니까 잔에 따른 건 전부 다 마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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