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phi Perich Apr 11. 2023

너는 할 수 있다고 믿었고, 결국엔 해낼 것이다




스물아홉, 여름.

서울로 이사를 했다.


그때 나는,

년 가까이 간호사로 일을 했는데도

모아둔 돈도 없었고

잠시 기대어 쉴 수 있는

결혼을 약속한 사람은커녕 남자친구도 없었다.


부산에 광안대교가 보이는 병원에서 일했던 나는

어느 한날, 이브닝 근무 중 환자에게서 상상도 하지 못할 협박과 욕설을 들었다. 후배 간호사가 깔아 둔 침대 시트가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차지 간호사였던 나에게 분풀이를 한 것이다.


한 시간 가까이 나를 향해 욕을 했지만

나를 보호해 줄 어떠한 시스템도

갖춰져 있지 않았다.


너를 낳고 네 부모라는 작자들은 분명

후회를 했을 거다. 이 ××××.

그 환자가 그렇게 말했다.


너무 바빠 밥도 못 먹고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일한 나는, 밤 12시가 넘어서 집에 돌아왔다.

너무 배가 고파 그 시간에 라면을 끓였다.


그런 험한 말을 듣고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저 덤덤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꾸역꾸역 일을 했던 나 자신이

불쌍하다기보다는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간호 부장이 찾아왔다.


환자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랬겠냐,

네가 뭔가 잘못했으니까 그랬겠지.

간호 부장이 그렇게 말했다.


그날, 사직서를 썼다.


뒤늦게 환자를 만나고 돌아온 간호 부장이

자신이 오해를 했다며, 뭘 그렇게 성급하게

사직서를 쓰고 그러냐며 타박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바로 뒤돌아 나왔다.


그때 나는 적금도 청약도 없었고 

세 계약금 오백만 원에

통장에 모아둔 돈은 백만 원도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직서를 썼다.


부산에서 서울로 이사한 나는 대형 병원에 계약직으로 입사했다. 일주일에 40시간에서 44시간씩 일을 하며 온라인으로 1년간 죽어라 미국 간호사 시험을 준비해서 합격하고, 또 4-5년을 죽어라 영어 공부를 했다.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이곳에서 나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면

내 가치를 알아주는 곳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어 공부를 하며 만난 지금의 신랑과

2017년에 미국으로 와서

독학으로 9개월간 아이엘츠를 공부하고

2018년에 병원에 입사했다.


지금까지 햇수로 6년째 미국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힘든 점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다 같은 사람 사는 세상.

같이 일하기 힘든 직장 동료도 있고

무능력한 매니저도 있다.


언어의 장벽과 문화의 차이,

너무도 다른 병원 체계와 간호의 범위,

다른 약품명과 질병명...


처음 일 년은 거의 매일 울었다.


하지만 미국의 간호사에 대한 대우와

사람들의 인식을 경험하고 나니

절대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때 직장을 그만두지 않았더라,

서울로 올라가 미국간호사 시험 준비를

하지 않았더라면,

죽어라 영어 공부를 하지 않았더라면,

신랑을 만나지도 못했을 것이고

이렇게 미국에 정착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가끔, 그때 나에게 욕을 했던 그 환자와

리더로서의 자질이 없던 간호부장에게

고맙다는 생각까지 들기도 한다.


한국의 모든 간호사들이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일을 한다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모든 직장인들이 이런 몹쓸 대접을 받으며 일을 한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만약에 그런 상황에 놓인 누군가가 있다면,

손발이 떨릴 정도로 억울하고

부당한 일을 직장에서 당했다면,

어느 순간 상처되는 말에 익숙해져 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면,

숨이 막힐 정도로 힘들고

삶이 무너져 리는 느낌이 든다면,


네가 있을 자리가 어디 거기뿐이랴.


직장은 직장일 뿐이다.

타인이 내린 너에 대한 판단은 그들의 생각일 뿐

본래의 네 모습이 아니다.


세상은 생각보다 넓으며

일자리는 널렸고

의외로 좋은 사람들도 많다.


삶을 살아가며 스스로를 위해 용기를 내야 할 순간,

그 순간을 놓치지 않길 바란다.


지금, 말도 안 되는 상황 속에서도

너 답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너를 

미래의 네가 자랑스러워하는 순간이 반드시 올 테니.






도서 구입: 종이책 & 전자책 종이책은 빠른 배송이라 웹사이트에 보이는 것보다 빨리 받으실 수 있습니다. (당일배송 또는 1 ~ 3일 이내로 바로 발송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