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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 Perich Apr 16. 2023

이별에 아파하는 너를, 너 스스로 용서하기를




예전에 쓰던 노트북 충전기 콘센트를 찾느라 온 집안을 뒤지다가 우연히 2006년에 썼던 다이어리를 찾았다. 노란색 커버에 귀여운 여자 아이가 그려진 다이어리는 내가 24살이 되던 해 썼던 것이었다. 첫 장엔 새해를 시작하는 나의 다짐들과 귀여운 스티커, 앙증맞게 그려진 그림들로 가득했다.

아 그랬지, 나 저 때 제일 이루고 싶었던 게 이거였지...
마음이 뭉클해졌다.

2004년에 처음 간호사로 일을 시작하고 2년 넘게 병원에서 일을 하면서도 계속 작가의 꿈을 버리지 못했던 나는, 2006년 4월에 직장을 그만두고 재수 학원에 들어갔다. 당시만 해도 인터넷으로 글을 써서 올린다거나 웹소설 등으로 작가가 되는 건 상상도 못 했던 때라 당연히 문예 창작과 국어 국문과를 가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새해의 포부가 유난히도 원대했고 희망찼다. 군대를 갔었던 남자친구도 제대를 했고, 모아놓은 돈도 조금 있었던 때라 1월 한 달의 매일매일이 긍정과 꿈을 향한 도전, 나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했다. 20대 초반의 패기와 희망에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2월 월간 계획표로 넘어가자 '악몽의 2월'이란 커다란 글자 아래  다이어리 전체에 크게 엑스자가 그려져 있었다. 남자친구의 생일과 나의 음력 생일이 있었던 2월, 남자친구와 천일이 되던 2월... 그 2월에 남자친구에게 이별통보를 받았던 것이다. 그는 마음이 떠났으니 이제 그만 헤어지자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가 말하기 훨씬 전부터 알고 있었다. 여자가 생겼다는 것도, 그 여자와 사귀기 시작한 지 꽤 됐다는 것도... 그저 사실을 직면하기 싫어서, 이별의 상처를 견뎌낼 자신이 없어서 나 자신을 비참한 상황에 머물도록 내버려 둔 것이었다.

많이 힘들었다. 아닌걸 다 알면서도 울고 불고 매달리고, 안 그래야지 하면서도 전화를 하고 문자를 보내고... 그러다 어느 한날, 그가 나에게 전화해서 자신이 새로 만난 여자와 얼마나 행복한지를 말해주었다. 그때 알았다. 사람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그렇게 두 달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병원을 나온 나는 재수 학원에서 약 6개월 정도 수능 공부를 했다. 물론, 완벽하게 실패를 했지만 말이다.

그 후, 약 8년 동안, 지금의 신랑을 만난 2014년이 될 때까지 스쳐 지나가는 남자들이 여럿 있었다.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사람도 있었고, 변태 같은 놈도 있었고, 나와 사귀면서 아이가 있는 유부녀와 바람을 핀 놈도 있었다. 물론 내가 못되게 굴면서 먼저 떠나오기도 했고, 귀찮아서 잠수를 탄 적도 있었다.

어떤 이유가 되었든 이별은 언제나 힘들었다.

내가 모자라서 그런가, 내가 뭘 잘못해서 그런가, 그리고 종국에는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란 결론에 다다르며 말도 안 되는 자책과 자기 비하로 힘들어했다.

그때는 아무리 누군가 옆에서 이야기를 해줘도, 수많은 책에 적힌 위로 글을 읽어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모든 잘못을 나에게 돌리며 신파극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고, 과장된 피해자 역할에 심취해 일부러 슬픈 상황을 만들어 울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랬을까 싶다. 나 싫다고 떠난 그 별것 없던 사람들 때문에 내가 왜 그렇게 힘들어했을까. 왜 그렇게도 나를 비난하며 스스로를 힘들게 했을까.

지나고 나니 알겠고, 지나고 나니 보이는 것들이 정말로 있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 헤어졌든, 이별은 힘들다. 네 잘못일 수도 있고, 상대방의 잘못일 수도 있다. 아니면 그냥 별다른 이유 없이 둘 사이에 이별이 찾아왔을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든 간에 너무 오랜 시간 과거에 머물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 너를 괴롭히는 것은 떠나간 그 사람이 아니다. 바로 너의 생각이다.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나 억울한 생각이 든다 한들, 네가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나. 그 억울함에 억장이 무너지는 것은 너지, 그 사람이 아니다. 그 사람은 잘 먹고 잘 산다. 이미 다른 사랑을 찾아 행복할지도 모르는데 너만 그렇게 힘들어한다면 그게 정말 억울한 일 아닌가.

그러니, 지나간 사람은 지나간 과거로 마음속 깊이 묻어두자. 이런 말 정말 듣기 싫다는 거 잘 안다. 나도 이 말 정말로 싫어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진짜로 잊히더라. 시간이 지나니 그 사람이 내 과거에 존재했었다는 것조차 잘 기억이 안나는 날이 정말로 오더라.

다이어리를 찾지 않았다면 생각하지도 못했을 그 사람은 그래도 나의 첫사랑이었는데, 내가 죽으면 그 사람이 힘들어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못난 생각까지 할 정도로 그와의 이별을 힘들어했었는데, 지금은 얼굴도 기억이 안 나고, 그때를 생각해도 아무런 느낌도 없다.

그리고, 어쩌면 너도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진작에 떠났어야 하는 그곳에서,
진작에 끝냈어야 했던 그 관계에서,
네가 너무 오래 머물렀음을.

떠나야 한다는 걸, 끝내야 한다는 걸,
이미 다 알고 있었으면서

어떻게든 마지막을 미뤄보고자
온 마음을 다해 매달렸던 너를,

그런 너를,
너 스스로 용서하길 바란다.
지독히 외로웠던 그 관계를 마침내 끝낸
너를, 너 스스로 위로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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