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있을 할아버지의 칠순 잔치로 할머니와 동네 할머니들이 새벽 첫차를 타고 오일장에 갔다. 돌아오는 버스 시간에 맞춰 할아버지와 리어카를 가지고 내려가니 할머니가 엄청난 양의 짐을 정류장에 쌓아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고기와 생선, 전을 부칠 재료들, 떡과 약과, 과자, 과일과 마른안주... 할머니와 동네 할머니들은 장 보는 것이 고단했던지 정류장에 있던 커다란 나무 아래 잠시만 앉아 있다가 오겠다고 했고 할아버지와 나는 리어카를 끌고 밀며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고기와 생선은 냉장고에, 나머지 과일과 마른안주, 떡은 건넛방의 서늘한 곳으로 옮겨 두었다.
그날 저녁, 할머니는 두툼한 돼지 목살을 듬뿍 넣어 김치찌개를 끓였다. 고기를 하도 많이 사서 정육점에서 서비스로 준 것이라며 내 국그릇에 넘칠 정도로 고기를 떠주며 말했다.
"우리 ㅇㅇ이가 육고기 좋아한다 아이가. 마이 무라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 할아버지가 소주를 곁들이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이 무라. 많이 묵고 얼른 커서 훌륭한 사람 돼야제!"
나는 그러겠다고 대답하고 김치찌개에 밥을 말아 두 그릇을 먹었다.
빠르게 주말이 다가오고 외지에 살고 있던 네 명의 고모들과 고모부, 삼촌과 숙모, 사촌들이 시골집을 찾았다. 잠잘 공간이 부족해 몇 해전 아빠와 예쁜 언니가 잠시 살았던 옆집을 사용하기로 했다. 작은 시골집은 명절 때처럼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붐볐고 늦은 저녁까지 마당에 둘러앉은 가족들은 삼겹살을 구워 먹고 술을 마시며 그동안 미뤄두었던 이야기꽃을 피웠다.
칠순 잔치 전날, 할아버지는 삼촌과 사촌동생과 함께 농협에 소주와 맥주, 음료수를 사기 위해 경운기를 몰고 집을 나섰다. 대구 고모부와 울산 고모부가 차가 있었지만 워낙 사야 하는 술의 양이 많아 무게 때문에 차를 이용하지 못한다고 했다.
할머니와 고모, 숙모는 하루 종일 전을 부치고 고기를 삶고 나물을 무쳤다. 그런 북적거림이 좋았던 나는 그 틈에 끼어 앉아 구워내는 전을 야금야금 주워 먹고 사촌들과 함께 온 동네를 뛰어다니며 놀았다.
햇살이 무거운 노란빛으로 물들어가는 늦은 오후, 안방에 있던 전화가 울렸다. 농협에서 술과 음료수를 사서 집으로 돌아오던 경운기가 사고가 났다고 했다. 대구와 울산 고모부가 서둘러 차를 끌고 사고가 났다는 곳으로 갔다.
많은 양의 술과 음료수를 싣고 코너를 돌던 경운기가 한쪽으로 기울어지며 언덕 아래로 굴러떨어졌고, 순간적으로 사고를 감지한 할아버지가 사촌동생을 경사면으로 집어던져 사촌동생은 가벼운 찰과상만 입었지만 삼촌은 경운기 아래 깔려버렸다고 했다. 다행히 근처에 있던 동네 주민들이 와서 도와주었지만 무거운 경운기에 허리가 깔린 삼촌은 제대로 걷지도 못할 정도로 힘들어했다. 당장 내일이 할아버지 칠순 잔치인 데다 큰 병원까지 가려면 한 시간을 차를 타고 가야 했고 주말이라 어차피 병원을 가도 응급실에서 하릴없이 진통제나 맞을 것이기에 삼촌은 병원행을 접고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좋은 날을 앞두고 집안 분위기가 무거워지자 삼촌은 애써 웃으며 괜찮다고 가족들을 위로했고 겨우 6살이던 사촌동생도 의젓하게 울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사랑채에 묵직하고 푹신한 이불을 깔아 삼촌이 편히 잘 수 있도록 자리를 봐주곤 자신은 빈집으로 건너가 잠을 청했다.
다음 날, 할아버지의 칠순잔치로 온 마을이 떠들썩했다. 대부분이 일가친척이던 동네 사람들과 그 가족들까지 모여들어 하루 종일 먹고 마셨고, 삼촌은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노래를 부르고 고모부들은 번갈아가며 할아버지를 등에 업고 마당을 돌아다녔다. 나도 Y와 K, 사촌들과 함께 배 터지게 고기와 전, 과일을 먹으며 온종일 지루할 틈 없이 놀았다.
잔치는 날이 저물어서야 끝이 났고 모두들 밤늦게까지 뒷정리를 했다.
장남이었던 아빠는 끝내 할아버지 칠순 잔치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루 종일 요란스럽던 동네가 마침내 깊은 잠에 빠져들고 정적에 휩싸인 새벽, 옆집에서 자고 있던 할아버지가 삼촌의 이름을 불렀다.
"ㅇㅇ아! ㅇㅇ아! 이리 좀 와 봐라!"
잠에서 깬 삼촌과 할머니, 고모부 몇몇이 옆집으로 건너갔다.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바닥을 향해 라이터의 불을 비추고 있던 할아버지가 말했다.
"와서 이거 좀 봐라."
잠을 자다가 속이 울렁거려 밖으로 나온 할아버지는 화장실까지 가지 못하고 마당에 토를 했다고 했다.
일렁이는 라이터의 불빛이 가늘게 떨렸다.
할아버지 발아래 흥건하게 고여있던 것은 검붉은 피였다.
이후의 이야기, [나는 엇나가는 아이였다]와 [나는 비겁한 어른 아이였다]는 종이책 또는 전자책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책을 읽고 난 뒤 작가에게 직접 남기고 싶은 후기가 있다면 버림받은 아이 매거진 [에필로그]에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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