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phi Perich Jun 20. 2023

당신은 손예진처럼 특출난 미모를 가지고 있지 않다

'보임'에 대한 집착과 '다름'에 대한 편견




7년 전, 미국에 처음 왔을 때 신랑을 따라 운동을 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일하는 트레이너가 신랑의 좋은 친구였기도 했고 길치에다가 모르는 장소에 가면 겁부터 먹는 나는, 신랑이 가는 곳은 어디든 따라다니던 때라 몇 달 동안 신랑과 함께 그곳에서 운동을 했었다.


병원에서 일을 시작하고 한동안 가지 못하다가 몇 달이 지나고 난 뒤 다시 헬스장을 찾았을 때, 살이 쏙 빠진 그녀가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나도 덩달아 반가운 마음에 "어머, 너 못 본 사이 살이 많이 빠졌네!" 라며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당황한듯한 그녀는 그렇냐며 어색하게 웃어넘겼다.  


운동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신랑이 말해주었다. 미국에서 그렇게 직설적으로 외모나 외향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무척이나 무례한 행동이라고.


나는 반가운 마음에 칭찬이라고 한 말이, 상대방에겐 무례함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당황한 나는, 다음 날 다시 헬스장을 찾아 그녀에게 사과를 했다. 한국에선 살 빠졌네라는 말이 칭찬처럼 여겨지기에 여기도 당연히 그러려니 했던 것이다.


미국에서도 친한 친구사이에 서로의 외모에 대해 이야기도 하고 체중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나도 연배가 비슷한 간호사들과 모여서 어디에 살을 빼고 싶다, 보톡스나 필러 같은 것도 어디 맞고 싶다, 여기 주름이 늘어서 걱정이다 같은 외모에 관한 것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친해졌을 때, 그리고 상대방이 나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불편해하지 않을 때의 이야기다.


그래서 미국에선 상대방의 직접적인 외모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는 객관적인 사물에 대한 칭찬을 많이 한다. 예를 들어, 립스틱 색깔이 예쁘다든지, 머리카락 컬이 예쁘게 됐다든지, 머리띠나 머리핀이 예쁘다든지, 드레스가 예쁘다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조금 더 괜찮은 칭찬을 하고 싶다면 '너 오늘 입은 드레스가 너한테 너무 잘 어울려.' ' 너 오늘 메이크업이 네 머리 스타일이랑 잘 어울려서 너무 귀여워 보여.' 같은 칭찬이 좋은 칭찬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처럼 '너 얼굴 되게 작다', '팔등신', '피부가 엄청 하얗다', '엄청 말랐다, 날씬하다' 하는 것은 외국인 입장에선 굉장히 이상한 말로 들릴 수 있다. 그리고 피부가 엄청 하얗다 하는 것을 무례하고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알아 뒀으면 좋겠다. 너무 하얀 피부를 미국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아서 일부러 태닝을 하고, 피부에 어두운 색 로션을 바르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의 간호사들 중 80퍼센트 이상은 몸에 문신이 있다. 양쪽 팔에 본래의 피부가 아예 보이지 않을 정도의 타투를 한 간호사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처음엔 '저렇게 문신이 많은데... 가리지도 않고 그냥 저렇게 일을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었는데, 그것도 전부 한국에서 가지고 온 선입견이었다.


간호사로서 지식이 풍부하고 경험이 많으며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지, 간호사의 외향적인 모습이 정말로 중요한가? 머리색이나 머리 모양도 개인 취향에 따라 자유롭게 할 수 있고, 화장을 하든 안 하든 그건 본인의 선택일 뿐이다. 지식과 실력, 경력으로 간호사를 판단하지 얼마나 단정하고 예쁜가로 간호사를 판단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한국에선 병원에 입사를 하면 오리엔테이션 내용에 복장과 머리 같은 항목이 들어있다. 긴 머리는 망을 해서 묶어야 하고, 머리띠를 못하게 하는 병원도 있으며, 화장은 어떻게 하고, 네일은 이런저런 것만 되고... 무슨 미인 선발 대회도 아니고... 미국에서 이런 걸로 간섭을 하는 병원이 있다면 정말 난리가 날 것이다.


문화차이라고 치부하기엔 한국 사회는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보임'에  집착한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그래도 많이 좋아진 것으로 알고 있지만, 여전히 상대의 외모를 폄하하고 조금만 과체중인 사람들을 보면 선입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다.


어쩌다가 한국이 그렇게 외모 지상주의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보이는 단편적인 정보로 상대방을 판단하는 것은 요즘 세상에서 무척이나 위험할 수 있다.


미국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나의 선입견과 편견도 많이 깨어졌다. 남자, 여자라는 단 두 가지의 성별로 나누어지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도 있고, 소위 말하는 성 소수자도 정말 많다. 수많은 인종과 수많은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니 점점 조심하는 부분이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직장에서 인종차별을 당해본 적이 있어서 그게 얼마나 기분 나쁜 느낌인지 잘 알기에, 나는 절대로 상대방에게 그런 무례한 짓은 하지 않겠다는 다짐도 있었고, 흔히들 말하는 '오만한 미국인들'과 같은 사람이 되기 싫어서 노력하는 부분도 있다.


내가 부당한 대접을 받기 싫은 만큼, 나도 상대방을 그렇게 대하기 싫은 것이다. 혹시나 당신도 누군가가 당신의 외모나 피부, 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듣기 싫다면, 당신도 다른 사람들의 외향적인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더 조심해야 하고, 더 예민해져야 한다.


내가 상관할 바 없는 일에 지나친 참견을 하기보단 내 인생부터 잘 살고 볼 일이다. 내가 예쁨과 못생김, 날씬함과 뚱뚱함의 기준을 나누어 사람들을 판단할 만큼 '특별한' 사람인가?


단언컨대, 우리는 손예진이나 한지민처럼 특출난 미모를 가지고 있지 않다.

매 거기서 거기다.


그러니 입 다물고, 내 인생이나 잘 살고 볼일이다.



도서 구입: 종이책 & 전자책 종이책은 빠른 배송이라 웹사이트에 보이는 것보다 빨리 받으실 수 있습니다. (당일배송 또는 1 ~ 3일 이내로 바로 발송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남을 사람은 남고, 떠날 사람은 떠나더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