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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 Perich Jun 18. 2023

한인마트가 없는 미국 소도시에서 아마존과 코스트코란..


내가 사는 Duluth에는 한인마트가 없다. 아시아 계열의 마트도 전무하고 레스토랑도 중국, 일본, 베트남 레스토랑만 있을 뿐인데 이 세 나라의 음식점도 거의 중국음식들이 대부분이고 메뉴도 거의 다 비슷하다.


간혹 일반 레스토랑에서 Korean bbq 나 비빔밥등을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퓨전 화해서 파는 경우도 있지만 내 입맛엔 너무 짜거나 달고, 한국의 맛이라고는 도저히 찾아볼 수가 없어 도대체 왜 Korea 란 단어를 사용했는지 이해가 안 될 때도 많다.

한인마트를 가려면 Duluth에서 편도로 2시간 반정도 걸리는 Minneapolis로 가야 하기에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뉴욕이나 시카고, LA 등의 대도시에 있는 H마트가 아니라 그냥 한국사람이 운영하는 마트이기에 미리 조리된 밑반찬이라든지 다양한 종류의 김밥, 초밥, 푸드코트 같은 건 없다. 그래도 웬만한 식재료는 다 팔기에 이민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왕복 5시간이 걸리는 한인마트를 세네 달에 한 번씩은 갔었던 것 같다.


요즘은 온라인으로 한국의 냉동식품이나 조미료등을 사는데, 종류도 정말 많은 데다 아이스박스에 꼼꼼하게 포장되어 2-3일 만에 배송이 되기에 굉장히 편리하다. 다만, 김치 같은 경우는 한국의 세배정도 되는 가격 때문에 사 먹기가 부담스럽고, 생고기 같은  아무리 냉동 포장을 잘해서 배송을 한다고 해도 괜히 불안해서 사지 않는 편이다.

이런 나에게 아마존과 코스트코는 둘도 없이 소중하고 든든한 친정집 같은 존재이다.

정말 없는 게 없는 아마존은 웬만한 한국 조미료와 각종 라면은 다 판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조 무말랭이를 살 수 있다. 무말랭이 무침을 워낙 좋아해서 자주 만들어 먹는데 한번 만들면 삼일을 넘기지 못하고 동이 난다.


운이 좋게도 신랑과 신랑 가족들이 한국음식을 좋아해서 김치에 대한 거부감도 없고, 내가 만들어 주는 건 뭐든 잘 먹는 편인데 무말랭이 무침은 식감 때문인지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좋아하는 편이다. 시누이는 나에게 레시피를 물어보곤 아마존에서 건조 무말랭이와 고춧가루를 서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기까지 하니 말이다.

그리고 나의 사랑, 코스트코. 작년 초에 Duluth 에도 드디어 코스트코가 오픈을 했는데, 오픈 첫날 달려가서 제일 먼저 산 것이 바로 삼겹살과 김치였다. 늘 한인마트에서 팔던 얇은 삼겹살만 먹다 코스트코의 두툼한 삼겹살이 얼마나 반갑던지... 김치도 Super one이나 Walmart 같은 데서 파는 식초에 절인 김치만 먹다가 코스트코에서 파는 풀무원 김치를 먹었을 때 얼마나 감격했는지 말로 설명하기 힘들다. 코로나 때문에 5년 동안 한국에 못 들어가고 있었을 때라 그 감동이 더 컸던 것 같다.

또 코스트코에는 양념이 된 불고기도 팔고, 불고기 용으로 쓸 수 있는 얇게 자른 소고기, 김, 비비고 만두도 있으며 한국에서 온 각종 잼과 생강차, 포장 조리된 해조류 같은 것도 판다. 주기적으로 상품이 바뀌는데 코스트코는 은근히 한국 상품을 많이 들이는 편이다. 이유는 모르지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글을 쓰다가 코스트코에서 산 음식들을 냉장고에서 꺼내보았다. 보기만 해도 흐뭇하다.


하지만 아마존에서도 코스트코에서도, 온라인 쇼핑에서도 구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그건 바로 깻잎.

한인마트에 팔기는 하지만 그걸 사자고 왕복 5시간을 들여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민 온 지 두 번째 해에 아마존에서 깻잎 씨를 주문해서 심었었는데 실패했고, 그다음 해엔 성공했다.


작년까지 매년 여름이면 내 허리 높이만큼 자란 세네 개의 커다란 깻잎 나무에서 원 없이 깻잎을 따 먹었다. 이곳의 여름이 짧아 꽃을 피우고 씨를 만들 때까지 자라지 못해 매해 씨앗을 심어 새싹 때부터 키워내야 하는데 어쩐 일인지 올해는 새싹이 돋아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수십 개의 씨를 심고, 씨가 오래됐나 싶어 새 씨앗을 사서 심었는데도 영 소식이 없다.


수십 개의 씨앗 중, 요 녀석 하나만 고개를 내밀었다. 기특해! 잘하고 있어!

여름이 되면 신랑과 나는 뒷마당에서 자주 삼겹살을 구워 먹는다. 코스트코에서 산 삼겹살과 김치를 불판에 굽고 내가 직접 기른 상추와 깻잎으로 쌈을 싸서 먹는 그 기쁨은 정말 말로 설명하기 힘들다.


한국에선 당연하고 흔한 것들이 이곳에 오고 난 뒤 특별하고 귀한 것으로 바뀐 게 많다. 더운 여름, 주말이면 늦잠을 자고 일어나 신랑과 손을 잡고 동네 삼겹살 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저녁엔 옛날 통닭집의 야외테이블에 앉아 치맥을 하기도 하는 그런 소소한 일상들이 이곳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이야기다.


혹시 이번 주말에 좋은 사람들과 삼겹살에 소주, 아니면 치킨에 맥주의 여유를 즐겼다면, 당신은 정말로 복 받은 사람이다. 정말로.


작년 7월 말, 뒷마당에서 삼겹살 구워먹는 사진. 작년엔 저렇게 큰 깻잎을 수확했었는데...올해도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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