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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 Perich Jun 26. 2023

미국 아이들이 낯선 강아지를 대하는 방법

강아지 쓰다듬어 봐도 돼요? Can I pet your dogs?


일요일 아침, 신랑과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강아지 두 마리와 함께 오전 산책을 나갔다.

신장 고혈압으로 혈압약을 먹고 있는 만두 때문에 뒷마당에서 매일같이 공놀이를 할 수 없기에 일주일에 5일 정도는 하루 두 번 산책을 하고 2일 정도는 공놀이와 산책을 번갈아 가며 한다. 공놀이를 너무도 좋아하는 만두에겐 미안하지만 급격한 혈압 상승으로 신장에 무리가 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신랑과 내가 만든 규칙이다.


우리 동네를 벗어나 옆동네로 들어서는데 집 앞에서 놀고 있던 여자 아이 두 명이 도로가로 가까이 다가오며 물었다.

"Excuse me! Can I pet your dogs?"

강아지들이 귀엽다고 무작정 뛰어나와서 손부터 내밀고 보는 것이 아니라 먼저 정중하게 물어보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첫째 딸 만두와 둘째 딸 하나는 모르는 사람들이나 모르는 강아지들한테 상냥한 편이 아니기에 우리는 안된다고 거절을 했다.

"They're not freindly. Sorry!"

여자 아이 두 명은 아쉬운 듯 작은 탄식을 내뱉었지만 금세 표정을 바꾸곤 더 이상 다가오지 않았다. 그리곤 손을 흔들며 말했다.

"Ok, your dogs are so cute!!"

귀엽고 예의 바른 아이들의 행동에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도 손을 흔들며 고맙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미국 가정집에선 기본적으로 한두 마리의 개를 키우기 때문에 미국 아이들은 낯선 강아지에게 접근하는 방법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부모나 가족으로부터 강아지 다루는 방법이라든지, 강아지들이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을 자연스럽게 배우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정말 드물게 있다. 일 년 전쯤, 산책을 하는데 아주 어린 여자아이가 도로로 무작정 뛰어나와 만두를 만지려고 해 만두가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던 경우가 딱 한번 있었다. 다행히 아무런 사고도 나지 않았지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길가로 갑자기 뛰어나온 아이 때문에 우리뿐만 아니라 아이 엄마도 꽤 놀랐던 게 기억난다.)


하나는 정말 사진 찍기가 힘들다...


간혹, 동네에서 자주 본 이웃주민들이 만두나 하나에게 다가오는 경우가 있는데, 그 사람들은 우리 강아지들도 편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만지도록 내버려 두는 편이다.

강아지의 습성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손등을 만두와 하나의 코에 대어주고 냄새를 먼저 맡게 해, 자신이 나쁜 의도로 접근하는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 그 후에 아랫 목덜미나 가슴 부위를 천천히 쓰다듬어 주고 어느 정도 강아지가 익숙해졌다고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목덜미에서 머리 쪽으로 손을 옮겨 부드럽게 쓰다듬어 준다. 대부분의 강아지들이 머리 위로 갑자기 손을 올리는 것을 위협적으로 느껴 싫어하거나 거부감을 가진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깐깐하고 도도한 성격의 만두는 새끼 강아지였을 때부터 낯선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낯선 사람에 대한 공격적인 거부감이 생긴 것은 3년 전이었다.


3년 전, 시아버지와 시동생 부부, 그리고 신랑과 만두가 타고 있던 차가 크게 사고가 난 적이 있었다. 음주운전 차량이 뒤에서 세게 박으면서 반대편 차선으로 시아버지의 차를 밀어버렸고, 마침 반대편 차선에서 과속으로 달려오는 트럭에 또 부딪히며 큰 사고가 난 것이다. 신랑을 포함해 차 안에 타고 있던 네 명의 가족들이 정말 크게 다쳤었다. 목숨이 경각에 놓일 정도로 심하게 다쳐서 오랫동안 병원 생활을 했으니 말이다. 아직도 그 사건이 마무리되지 않았기에 자세히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아무튼 그때 만두도 그 차에 타고 있었다. 신랑과 뒷자리에 앉아 있던 만두는 다행히 바닥으로 굴러 떨어지면서 신랑의 다리 사이에 안착해 아무 데도 다친 곳은 없었다.

하지만 사고 이후, 만두의 행동이 급격하게 사나워졌다. 늘 봐오던 가족을 향해 금방이라도 물어뜯을 듯 으르렁 거리며 짓어대고, 작은 소리에도 온 신경을 곤두세워 온몸을 벌벌 떨기도 했다. 동물병원에서 피검사와 X-ray, 초음파 촬영을 했고 내장출혈이나 골절등의 심각한 부상을 입지는 않았지만 피검사 결과로 보건대 심한 타박상을 입은 것 같다고 했다. 그로 인한 극심한 통증과 PTSD로 만두의 행동이 급격하게 변한 것이라고. 그것 때문에 한동안 만두는 항불안제와 진통제를 먹어야만 했다.

개 전문 훈련사인 신랑의 여동생에게 당시에 정말 많은 조언을 구했었다. 여동생의 말에 따르면 사고가 날 때 차가 부딪히고 찌그러지는 시끄러운 소리와 피로 범벅이 된 신랑과 가족들의 모습, 그런 충격적인 상황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앰뷸런스와 경찰차,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낯선 구급대원들과 경찰들.


만두는 자연스럽게 낯선 사람들을 충격적이고 무서운 일과 연결시켜 버린 것이다. 늘 봐오던 가족들에게까지 공격적인 행동을 하는 이유는, 아무리 아는 사람이라 해도 자신의 영역, 즉 우리 집이라는 자신의 영역 안으로 들어오는 시댁 식구들을 '이방인'으로 간주해, 그 '이방인'들을 경계하고 싸워야 할 상대로 인식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약을 먹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안정을 찾아가기는 했지만 3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낯선 사람과 자신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낯선 강아지들에 대한 거부감이 존재한다. 산책을 하며 낯선 사람이나 강아지들을 만나게 되면 만두에게 간식을 주며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인식시켜 주려 노력하고 있지만 어릴 때 받은 충격이나 상처가 평생 갈 수도 있다는 건 우리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이건 둘째 딸 하나도 마찬가지다. 떠돌이 개였던 하나의 엄마는 더러운 하수도에서 하나를 낳고 길렀다. 3개월 동안 하수도와 길거리에서 생활을 했던 하나였으니 모르는 사람과 다른 떠돌이 개들에 대한 경계심이 얼마나 컸겠는가. 만두보다 하나가 더 낯선 사람들을 무서워하고 다른 강아지들을 보면 자신과 경쟁을 해야 하는 상대로 생각해 날을 세운다.

그래서 신랑과 나는 절대 목줄 없이 산책을 나가는 법이 없다. 숲 속이나 사람의 인적이 드문 곳, 깊은 산속의 공원 같은 곳에서 목줄을 풀어주고 마음껏 뛰어놀게 하는 경우는 있지만 동네를 산책할 때는 절대 목줄 없이 산책하지 않는다. 깊은 숲 속에서 목줄 없이 산책을 하더라도 만두와 하나는 훈련이 잘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Come!"이라고 말하면 즉각적으로 반응해 우리 곁으로 돌아온다.



지난겨울, 집 근처에 있는 공원. 한 겨울이라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아예 없었다. (Come here라는 말에 얼마나 빨리 반응하는지 볼 수 있다)



이웃 동네 이곳저곳을 산책하다 보면 자신들의 집 앞마당에서 놀고 있던 개들이 도로가로 뛰어나와 만두와 하나에게 다가오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그럴 때면 나는 그 개를 향해 "No!!! Go Home!!"이라고 엄하게 외친다. 대부분은 주인들이 뛰어나와 자신들의 개를 붙잡고는 미안하다고 하지만 정말 드물게 "Oh! My dog is very friendly." "Don't worry. My dog is very nice and sweet."이라고 말하는 견주들을 만날 때가 있다.

단전에서 올라오는 욕을 목 안으로 억누르고, 그 주인의 울대를 주먹으로 치고 싶은 걸 꾹 눌러 참으며 "Well, My dogs don't like strangers and strange dogs!"라고 되받아치며 도로가로 뛰어나온 개를 밀어낸다. (지난 6년 동안 딱 한번 있었다. 갑자기 튀어나온 큰 개가 만두에게 다가와서 서둘러 만두를 품에 안고, 그 개의 옆구리를 제법 강하게 무릎으로 쳐서 밀어내며 엄하게 "No!!!"라고 외친 적이. 사정없이 발로 차 벌릴까도 생각했지만 그렇게까지는 하지 못했다.)

나는 내 강아지들을 지켜야 하니 어쩔 수 없다. 당신의 개가 어떻든 나는 상관없다. 만두와 하나가 왜 낯선 사람과 낯선 강아지들을 싫어하는지, 왜 무서워하는지 주절주절 당신에게 설명할 필요가 나에겐 없다. 당신의 개가 나의 개를 물 수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우리의 영역에 들어온 당신의 개를 쫓아내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어머~ 우리 개는 안 물어요." 하며 목줄 없이 산책을 하거나 공공장소에서 아무렇게나 놀게 하는 견주들이 있다고 들었다. 그러다가 다른 강아지나 사람들에게 거침없이 달려가서 짖어대거나 공격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말이다.

정말 경우 없고 무식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미국에선 목줄 없이 돌아다니다가 자신의 개가 다른 강아지나 사람을 공격하게 되면 정말 상상도 하기 싫은 끔찍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상대방이 소송을 걸어 의료비를 물어줘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당신은 당신의 모든 재산을 탕진해야 할 수도 있다. 미국의 의료비가 얼마나 비싼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더 나아가 사람을 물거나 상대방이 입은 피해가 크다면 당신은 당신의 강아지를 안락사시켜야 할 수도 있다. '우리 개는 괜찮다'라는 안일 생각 때문에 당신도 이런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자. 한국도 반려견에 대한 인식이 급속도로 변하고 있으니 얼마든지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그뿐만 아니라 강아지를 무서워하는 사람들도 은근히 많고, 강아지 털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도 다. 그런 사람들에게 갑자기 당신의 강아지가 달려든다면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리고 다른 강아지들 중엔 우리 만두와 하나처럼 낯선 강아지를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경우도 많다는 걸 걸 잊지 말자.


산책을 너무도 좋아라 하는 만두와 하나


반대로, 견주들이 조심을 하는데도 강아지가 귀엽다고 뜬금없이 다가와 만지는, 그런 경우 없는 행동을 사람들도 간혹 있다. 지나가는 낯선 사람이나 낯선 아이가 예쁘거나 귀엽다고 갑자기 다가가 그 사람들의 얼굴을 쓰다듬거나 만지지 않는 것처럼, 강아지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자아이고 하나의 생명이지, 그렇게 당신이 마음대로 다가가서 만져도 되는 물건이 아니라는 말이다. 만져봐도 되냐고 물어보지도 않고 급작스레 다가가면 대부분의 강아지들은 경계를 하게 된다. 그러다가 물리면 당신의 잘못이다. 견주와 강아지는 아무런 잘못이 없고 보상을 할 이유도 없다.

강아지가 너무 귀여워서 만져보고 싶을 땐 정중하게 강아지의 주인에게 먼저 물어보고 만져야 한다. 주인이 만져도 된다고 한다면 먼저 당신의 손등을 강아지 코 앞으로 가져가 당신의 냄새를 강아지가 맡도록 해주자. 냄새를 맡은 강아지가 거부하지 않는다면 강아지의 아랫 목덜미부터 천천히 쓰다듬어 주면 된다.

그리고 혹시 당신이 당신의 강아지와 길을 가고 있다가 다른 강아지를 만났는데, 상대편 강아지가 사납게 짖고 으르렁거린다고 해도 너무 비판적으로 보지 않았으면 한다. 상대방 견주가 열심히 자신의 개를 통제하려 노력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한다면 당신은 빨리 그 자리를 피해 주면 되는 것이다. 그 강아지에게 만두와 같은 트라우마가 있었을 수도 있는 일이고, 그 강아지가 하나와 같은 유기견이었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니 상대편의 강아지에겐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낯선 사람인 당신과 낯선 강아지인 당신의 강아지를 빨리 그 상황에서 없애 주는 것으로 열심히 애쓰고 있는 상대 견주를 존중해 줄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강아지가 자식만큼 소중하다.
그 소중한 생명을 당신도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해야 하고, 내 강아지가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강아지도 소중하다는 걸 잊지 말자.

(모든 유기견들이 하나와 같다는 것은 아니니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가족들이 입양한 대부분의 유기견들은 하나처럼 낯선 사람을 무서워하거나, 낯선 사람들 앞에서 주눅 들어하지 않는다. 혹시 유기견 입양을 고민하는 중에 내 글을 읽고 포기하는 일이 생길까 봐 아주 조심스럽다.)




오늘 오전 산책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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