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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 Perich Jul 06. 2023

머리카락을 기부했습니다

어린이들을 위한 가발. Wigs For Kids


미국으로 이민 오고 난 뒤 불편한 것들이 셀 수도 없이 많다. 문화차이와 언어장벽 같은 건 미리 예상을 했기에 매번 현타가 오기는 해도 어느 정도 견딜만한데 내가 먹고 싶은 걸 못 먹고, 내가 하고 싶은 걸 못할 때는 정말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다.


음식은 그래도 한인마트나 온라인 쇼핑, 백종원 선생님의 레시피로 어느 정도 극복한 상태이지만 6년이 지난 지금도 적응이 안 되는 것들 중 하나가 바로 미용실과 네일샵이다. 적응이 안 된다기보다는 여전히 불만이 많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한국에 있을 땐 기분전환을 하고 싶거나, 나 자신에게 선물을 하고 싶을 때 종종 네일샵에 가곤 했었다. 간호사라 화려한 건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네일을 받고 나면 우울했던 기분도 좋아지고 괜히 나도 관리받는 여자라는 도취감에 빠져들곤 했기 때문이었다.

그랬던 나이기에 미국에 이민 온 첫해, 당연히 이곳에 있는 네일샵을 찾았었다. 한국에서 하고 온 네일이 거의 다 떨어져 지저분하기도 했고, 영어공부의 압박감에 기분전환도 하고 싶어서였다.

수십 개의 안마 의자가 놓인 네일샵 안으로 들어가 안내해 주는 자리에 앉았다. 어떤 스타일을 하고 싶냐고 묻는 직원에게 스크린 샷으로 찍어온 사진을 보여주었다. 직원은 내가 보여준 네일 같은 건 이곳에서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 어떤 게 가능하냐고 물어보니 단색의 젤컬러에 간단한 꽃 모양 같은 건 그려줄 수 있다고 했다. 그냥 집에 갈까도 생각했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그냥 단색 컬러나 바르고 가자는 마음에 무난한 색을 하나 골라 그냥 그걸로 해달라고 했다.

삼십여분의 시간이 흐르고 완성된 네일은 정말,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었다. 내가 발로 해도 이것보단 잘하겠다 싶을 정도로 정말로.... 엉망이었다.


80달러에 팁까지 합쳐서 90달러가 넘는 돈을 지불했다. 기분 전환을 위해 갔다가 되려 기분만 안 좋아져서 집으로 돌아왔다. 거기다가 이런 말도 안 되는 네일을 받고 한국 돈으로 10만 원이 넘는 돈을 썼다는 사실에 솔직히 화도 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네일샵에서 받았던 네일을 모두 없애버리고 집에 있던 젤네일과 UV 기계로 내가 직접 다시 해버렸다. 샵에서 받은 것보다 내가 직접 한 게 훨씬 나았다.

이후론 미국에선 네일샵을 가지 않는다. 물론 대도시에는 자격증이 있는 네일 아티스트분들이 많이 있어서 이런 경우는 거의 없겠지만 내가 사는 곳은 그렇지가 않다.

그리고 두 번째는 미용실. 미국은 대부분의 미용사들이 커트와 염색은 기본적으로 다 하지만 모두가 펌을 하는 건 아니다. 펌을 하려면 따로 자격증을 따야 하는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처럼 미용사 한 명이 머리를 자르고 염색을 하고 펌까지 전부 다 하는 것이 아니라, 펌을 하고 싶으면 펌을 하는 미용사를 찾아가야 한다.

처음 미국에 와서 그런 개념 자체가 없었던 나는 머리를 단발로 자르고 펌을 하고 싶어서 미용실을 찾았는데 머리는 잘라줄 수 있지만 펌은 자신이 못한다는 말을 듣고 당황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미친 듯이 검색을 해서 펌을 할 수 있는 미용사를 찾아갔었다. 한국의 미용실에서 세팅펌을 한 사진을 스크린 샷으로 찍어서 가져갔었는데, 그 미용사는 이건 펌이 아니라 드라이나 고데기로 굵게 만 거라며 단칼에 그런 웨이브 펌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펌을 한 직후의 사진이라고 해도 미용사는 포토샵이거나 거짓으로 올린 사진이라며 안된다는 것이었다. 답답함으로 숨이 턱턱 막혔던 기분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이런저런 실랑이 끝에 자신이 최대한 굵게 펌을 해보겠다고 했고 나도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그렇게 해달라고 했다.


생각보다 얇은 펌 롯드에 불안하기는 했지만 내가 사진까지 보여주며 최대한 굵게 해달라고 했으니 괜찮겠지 하는 순진한 기대로 머리를 맡겼다. 하지만 완성된 펌은 대망이었다. 예전에 할머니를 따라갔던 시골 장터의 미용실에서나 볼법한 라면땅같이 꼬불거리는 머리카락은 드라이로 바짝 말려도 심각할 정도로 꼬불거렸다.


미용사는 원래 처음엔 이렇게 꼬불거리지만 시간이 지나면 펌이 약해질 거라며 한두 달 지켜보라고 했다. 내가 펌을 처음 해보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평소에도 표정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나였기에 나의 모든 감정이 표정으로 표출되었지만 말은 최대한 정중하게 하고 미용실을 나왔다. 한화로 거의 20만 원 가까이 썼다. 또 화가 났다. 그 꼬불거리는 머리는 단발머리가 거의 허리까지 자랄 때까지 없어지지 않았다. 그 이후론 미국에선 절대 미용실도 가지 않았다.

그래서 작년 5월, 5년 만에 한국에 들어갔을 때, 서울에 도착한 바로 다음날 미용실을 찾았었다. 원하는 머리스타일을 보여주고 원하는 염색 컬러를 보여주자 미용사는 척하면 척이라는 듯 믿고 맡기라고 했다. 결과는 대만족. 아... 자랑스러운 내 나라, 대한민국! 역시 다르구나!!

미국으로 돌아오고 난 뒤 두 달쯤 지나니 머리카락이 자라면서 염색을 한 머리와 새로 자란 머리의 색깔 차이가 너무 심하게 났다. 뿌리염색을 하고 싶었지만 괜히 또 희한한 색으로 염색을 해서 머리를 망쳐버리는 건 아닐까 싶어 망설이고 있었는데 동년배의 간호사 친구가 미용실 한 곳을 추천해 주었다.


깔끔하고 모던한 건물의 작은 미용실엔 원장과 미용사 한 명,  두 명이 일을 하고 있었고 모두 예약제로 운영한다고 했다. 인스타그램과 구글 리뷰를 꼼꼼히 살핀 뒤 예약을 하고 원장 미용사에게 뿌리 염색을 했는데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만족스러웠다.


물론 그 미용실도 펌은 불가능했고 커트와 염색, 붙임머리 같은 것만 가능했다. 어차피 미국에서 펌을 할 생각은 앞으로도 없기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 이후로 그 미용실을 한 두 번 더 찾아가 뿌리 염색을 했고 상한 머리끝도 다듬었다.


원장 미용사가 나와 연배도 비슷한 데다 관심사도 비슷해 머리를 하는 내내 수다 떠는 것도 재미있고 염색과 커트도 모두 만족스러워 그 미용실은 이제 나의 단골 미용실이 되었다.


워낙에 머리카락이 빨리 자라는 데다 숱도 많은 편이라 허리까지 머리가 자라자 점점 감당하기 힘들어져 얼마 전 다시 미용실을 찾았었다. 뿌리 염색도 한동한 하지 않았던 상태라 보기도 흉해서 짧게 머리를 자르고 조금 어두운 색으로 염색을 해버리자는 생각에서였다.

머리 스타일을 보여주고 꼼꼼하게 상담을 했다. 머리가 너무 길어 짧게 자르고 난 뒤 머리카락을 기부하고 싶은데 염색을 한 머리라 괜찮겠냐고 물으니 염색을 한 머리라도 관리가 잘되고 건강한 모발이니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곤 기부하는 곳에서 요구하는 데로 머리카락을 여러 군데로 땋아 내린 후 깔끔하게 잘라 지퍼락에 담아주었다.


미용사는 Wigs for Kids라는 곳을 추천해 주며 그곳에 내 머리카락을 보내라고 했다. 내 머리카락이 여러 가지 질병으로 머리카락이 빠져 버린 어린아이들의 가발을 만드는데 쓰일 수 있다는 것에 괜히 마음이 뭉클해졌다.

짧게 머리를 자르고 안쪽과 겉으로 보이는 머리의 색이 다른 투톤 염색을 했는데 매우 만족한 상태이다. 그리고 잘린 18 인치(약 45 cm)의 머리카락은 Wigs for Kids라는 웹사이트에 기부등록을 한 뒤 일주일 전쯤 우편으로 보냈다. 우편을 보내고 난 뒤 약 2-3달 정도 있으면 내 머리카락을 어떤 곳에 어떻게 쓸 건지 업데이트 메일을 보내 준다고 했다. 염색을 한 머리라 조금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가능하다면 좋은 곳에 쓰이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한국에서 돌아온 뒤 두 번 뿌리 염색을 했는데도 일 년여 만에 머리가 저만큼이나 자랐다.
45cm (18inch) 머리카락.
숏 단발이 되었다.
지퍼락에 머리카락과 기부 넘버를 프린트해서 같이 보냈다. 좋은 곳에 쓰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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