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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 Perich Jun 12. 2023

둘째 딸, 하나는 텍사스의 하수도에서 태어났습니다


2020년 12월 8일 우리 부부는 둘째 딸 하나를 입양했다. 그해 초, 병원에서 조금 더 수월한 부서로 이동한 데다 집도 사서 어느 정도 안정이 되기도 했고, 만두가 3살이 되어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웰시코기 한 마리를 더 입양할까도 생각했었는데 신랑의 형이 만두의 친여동생인 웰시코기를 우리와 함께 입양했었는데, 둘 사이가 좋지 않아 크게 고생을 한 적이 있었기에 다른 종의 강아지를 입양하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미국에 오기 전까지는 내가 유기견을 입양하고 유기견 단체에 기부를 하는 사람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만두를 분양받으며 자연스럽게 강아지들의 입양 절차에 대해 알게 되었고 학대와 방임, 유기 등의 일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신랑의 가족들은 모두 집집마다 강아지 한 두 마리는 기본적으로 키우고 있는데 절반 이상이 유기견이다. 특히나 시어머니는 총 여덟 마리의 대형견을 키우시는데 세 마리는 스페인에서 창살에 갇혀 살며 경주용으로 이용되는 갤고(Galgo)라고 불리는 스페니쉬 그레이 하운드(Spanish Greyhound)이고, 두 마리는 저먼 셰퍼드(German Shepherd), 한 마리는 그레이트 피러니스(Great Pyrenees), 그리고 나머지 두 마리는 견종을 분류하기 힘든 믹스견이다. 그 여덟 마리 모두 유기견이었고, 특히나 스페인에서 데려온 세 마리는 입양되기 전까지 태어나자마자 작은 철창에 갇혀 평생을 경주용으로 이용되던 아이들이었다.(인스타그램에서 누군가 엄청 빠른 개들이라며 동영상을 올렸는데 모두 스페인의 갤고들이었다. 엄청 빠르다, 잘 뛴다, 뭐 어쩐다는 댓글을 보며 저게 다 장시간 좁은데 갇혀서 물도 못 먹고 있다가 오랜만에 밖에 나와서 저렇게 빨리 뛰는 건데... 사람들은 그것도 모르고 하트를 누르고 잘한다고 좋아라 하는구나 싶어 마음이 불편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 아이들을 계속 보다 보니 신랑과 나도 자연스럽게 두 번째 강아지는 유기견을 입양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유기견 센터 여러 곳과 접촉을 했고 드디어 2020년 겨울, 시어머니가 기부하고 있던 유기견 보호센터를 통해 하나를 입양하게 되었다.

2020년 9월, 텍사스의 살인적인 더위 속에 하수도에서 태어나 석 달을 그곳에서 살았다는 하나는 처음 구조했을 때는 피부병 때문에 몸에 털이 하나도 없었고, 벌레와 진드기, 구더기 따위로 엉망이었다고 했다. 우리가 처음 하나를 만났을 땐 그래도 피부병이 나아가는 단계였기에 어느 정도 털이 나 있었지만 몸에서는 여전히 냄새가 심하게 났었다. 그리고 극심한 영양실조로 석 달 된 강아지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작은 체구에 도드라진 갈비뼈와 배는 복수가 차서 빵빵했었다.

유기견 보호센터에서 인터넷에 올린 하나의 사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향해 꼬리를 흔들며 얼굴을 핥는 하나를 보곤 첫눈에 이 아이구나 싶었다. 일사천리로 입양 절차를 거치고 일주일 뒤 중성화 수술까지 마친 후 집으로 데려왔다.

하나를 보러 간 첫날. 우리를 보고 꼬리를 흔드는 하나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우유부단하고 순한 하나는 고집스럽고 깐깐한 만두를 친언니처럼 잘 따랐고 금세 새로운 보금자리에 적응했다. 믹스견이라 어느 정도까지 클지 알지 못했었는데 다 크고 보니 만두랑 놀기에는 조금 크다, 아니 조금 높다 싶기는 했지만 아무렴 어떠랴. 둘이 함께 산책하고, 함께 공놀이를 하고, 함께 물놀이도 하고,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잠을 자고, 함께 지나가는 사슴을 보고 있는 힘을 다해 짖어대고... 그렇게 서로 편하고, 서로 좋아하면 그만이지.


우리 집에 온 지 둘째 날. 중성화 수술 후 첫날은 거의 잠만 자다가 다음 날 일어나 모든 것이 어리둥절했던 하나


한국에서는 어두운 색의 강아지나 크기가 큰 강아지는 입양이 잘 안 된다고 들었다. 그렇게 치면 하나는 인기 없는 요소는 모두 가지고 있다. 짙은 갈색에 크기도 중견에서 대형견에 속하며 눈썹 모양 때문에 늘 걱정하는 듯한 주눅 든 표정을 하고 있어 첫눈에 예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를 무척이나 사랑한다. 나와 신랑이 어떤 모습이든, 어떤 옷을 입고 있든 하나가 우리를 사랑해 주듯 우리도 하나의 생김새로 그녀를 판단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는 아직도 하수도에서 살 때의 트라우마가 남아있는지 겁이 많고 모르는 사람을 두려워하며 생소한 개들을 보면 자신과 싸워야 하는 상대로 생각해 으르렁거리기도 한다. 신랑과 나는 차근차근 하나에게 가르쳐 주려 하지만 '이게 하나의 성격이니까 어쩔 수 없어'라고 생각하는 부분도 아주 많다.

매일 운동을 하지만 만두와 하나의 사교성을 기르기 위해 우리는 자주 시어머니 댁에 놀러 간다. 시어머니 댁에서 여덟 마리의 개들과 놀다가 돌아오면 만두와 하나는 하루종일 늘어져 잠을 자는데 단잠을 자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괜히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이 충만해지는 느낌이 든다.

너희가 좋다면 우리도 좋다.
건강하게, 오랫동안 우리 옆에만 있어다오.
사랑한다, 우리 만두, 우리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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