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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 Perich Jun 12. 2023

첫째 딸, 만두는 힘든시간을 함께 버텨준 가족입니다


2017년 5월 31일, 미국행 편도 비행기에 올랐다.


떠나기 한 달 전부터 선편으로 엄청난 양의 짐을 미리 보냈지만 여전히 세네 개의 커다란 캐리어에, 짐짝만 한 가방을 짊어진 신랑과 나는 이민서류가 든 노란 봉투를 들고 미국땅을 밟았다. 당장 집을 살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고, 아파트 같은 곳을 얻어서 매달 월세를 내는 것도 부담이 컸기에 우리는 시어머니 댁에서 당분간 지내기로 했다.(참고로 나의 신랑은 미국인이고 대부분의 신랑 가족들은 이곳 duluth에 살고 있다.)


시어머니는 시아버지와 오래전에 이혼을 하시고 재혼을 하셨는데 시어머니와 새시아버지가 사는 집 1층에 독립적으로 지낼 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 했다. 도착한 집은 으리으리하게 컸고 꽤 넓은 땅엔 여러 마리의 말도 있었다. 출입구가 따로 있는 1층엔 방 하나, 욕실 하나, 그리고 커다란 거실과 주방, 사우나가 있었다. 두 사람이 지내기에 충분히 크고 좋은 곳이었기에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미국에서 직장을 구하고 자리를 잡을 때까지 그곳에서 살기로 했다.


처음 한 달은 시차적응과 신랑 가족들을 만나느라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버렸고 또 그다음 한 달은 내가 살게 될 지역을 돌아보고 마트에서 산 재료들로 한국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지 등을 알아보느라 쏜살같이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그리고 8월쯤, 신랑은 직장을 구했고 나는 영어공부(아이엘츠 IELTS)를 시작했다.


힘들었다. 정말로.


외동에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혼자서 살아온 나는 누군가와 북적거리며 함께 사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고 새로운 집과 새로운 환경, 걸어서는 카페도 갈 수 없는 곳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했다.


넓은 집에 성격 좋은 시어머니였지만 그래도 시댁은 시댁이었다. 아무도 눈치 주는 사람도 없는데도 내 집이 주는 편안함이 없어 괜히 눈치가 보였고 아이엘츠를 독학하는 스트레스도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 또 10월 말이면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미네소타의 극한의 날씨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집이 도심 한복판에 있었다면 혼자서 카페도 가고 브런치도 하고... 조금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카페 한번 가는 것도 차를 끌고 가야 했고 미친 듯이 쏟아지는 눈길을 운전해서 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 데다 길도 몰랐기에 쉽지 않았다.


그렇게 점점 이성을 잃어갈 때쯤 신랑이 강아지를 입양하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것도 웰시코기로. 내가 얼마나 웰시코기를 갖고 싶어 하는지 연애하는 내내 들어온 신랑은 웰시코기를 분양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았다며 웹사이트를 보여주었다. 뛸 듯이 기뻤다. 그날 바로 브리더(Breeder)에게 연락을 해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만두는 11월에 태어났다. 어미개와 7주가량을 함께 보낸 뒤 12월 26일, 크리스마스 바로 다음날 입양을 했다.

<<웰시코기는 꼬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과거 소몰이, 양몰이 개였던 웰시코기는 긴 꼬리가 소 발굽에 밟혀 사고를 당하는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꼬리를 잘랐었는데 요즘은 꼬리 없이 태어나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씰룩거리는 엉덩이를 사람들이 좋아하기에 태어나자마자 꼬리에 고무밴드를 감아 피가 안 통하게 잘라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신랑과 나는 그런 고통을 갓 태어난 어린 강아지에게 주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강아지는 감정 표현을 대부분 꼬리를 통해 하지 않는가...>>


올해 만두는 5살이 되었고 신랑과 나의 미국에서의 다사다난했던 역사를 오롯이 함께 했다. 시어머니 댁에서 1년 6개월, 아이오와 주에서 6주 (아이오와 대학병원에 합격했으나 간호사 면허증 이전문제로 입사를 하지 못하고 다시 미네소타로 돌아왔다. 6주 만에 말이다.) 미네소타로 돌아올 때쯤 시어머니가 집을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기에 우리는 시아버지 댁으로 들어갔고, 집을 살 수 있을 정도로 돈을 모을 때까지 그곳에서 또 1년 6개월을 지냈다. 그리고 마침내 삼 년 전에 우리는 집을 샀다.


그 모든 역경과 힘든 시간을 함께 해온 우리 딸, 만두. 그래서 그런지 만두는 나의 감정변화를 귀신같이 알아챈다. 내가 기쁘면 만두도 기뻐하고, 내가 슬프거나 화를 내면 만두는 나를 어르고 달래주기라도 하는 듯  짧은 다리로 폴짝거리며 내 품에 뛰어들어 내 얼굴을 마구 핥는다.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운 만두는 오랫동안 우리와 살아오며 무엇이 옳고 그른지, 우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거의 다 알아듣는다. 하지만 고집불통에 영악한 구석도 있어 가끔은 다 알아들으면서 이해 못 하는 척 무시하기도 한다. 어떨 때는 자신이 집에서 서열 1위이자 집안의 여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웰시코기의 왕성한 운동량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만두는 정말 지치 지를 않는다. 하루에 두 번, 눈보라가 몰아치고 폭우가 쏟아져도 우리는 운동을 나간다. 이웃주민들 중엔 폭우가 쏟아지는 날 우비를 입고 산책을 나서는 우리를 보곤 정말 대단하다고 존경의 말을 종종 건네기도 한다. 그렇게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을 매일 만두와 둘째 딸, 하나와 산책을 하거나 공놀이를 하는데도 집에 들어오면 장난감으로 터그 놀이를 하자고 조르기도 해 그녀의 에너지에 가끔 혀를 내두를 때도 있다.


그리고 웰시코기는 정말로 많이 짖는다. 바람만 불어도 짓고 심지어 우리가 숨만 크게 쉬어도 짖는다. 거짓말 아니고 과장도 아니다. 정말로 많이 짓는다. 나는 늘 '사람은 말을 하고, 개는 짖는다. 특히나 웰시코기는 많이 짓는다.'라는 생각으로 이해하려 하지만 가끔은 정도를 벗어나 혼을 낼 때도 있다. 뭐, 혼을 낸다고 멈추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또 하나, 웰시코기들은 털이 2중으로 나기에 진짜 털이 많이 빠진다. 요즘 같은 털갈이 때는 특히나 더 심하다. 만두를 입양한 뒤 되도록이면 검은색 옷은 사지 않고 입지도 않는다. 워낙에 집에 만두 털이 날리다 보니 검은색 옷은 금세 티가 나기 때문이다. (이중모의 특성상 미용을 해주는 것이 좋지 않다고 들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만두의 털을 자주 빗어주려 노력한다.)




만두는 우리에겐 미국으로 이민 와서 힘든 시간을 함께 버텨준 전우이자, 향수병에 소리를 지르며 울던 나를 위로하겠다고 짧은 다리를 들어 올려 나를 껴안아 주던 고마운 동지이기에 강아지가 아닌 딸이나 마찬가지다.


오늘 아침에도 한 시간의 산책을 끝내고 돌아와 간식으로 당근을 먹고 난 뒤 터그 놀이를 하자며 장난감을 물고 다가오는 만두의 체력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도 좋다. 우리를 오랫동안 귀찮게 하며 함께 운동하고 뛰어놀 수 있기를, 그렇게 오랫동안 건강하게 우리와 함께 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로컬 뉴스에 나온 만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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