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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a Jan 05. 2021

고인을 위한 마지막 배웅, 염습.

영화 ‘굿바이’

<염습>

시신을 목욕시키고 옷을 입히는 것.

염습을 지켜본 이가 얼마나 될까. 가족의 죽음이 아닌 이상 보기 힘든 장면이다. 따라서 이 영화는, 듣기만 해도 낯섦과 무의식적인 거부감이 들어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는 염습이라는 과정을 엄숙하고 진지하게, 따뜻하고 우아하게 표현한다는 측면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비록 지금의 과정이나 방식이 전통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하더라도, 각 나라마다 그 방식이나 분위기가 다르다 하더라도, 고인을 향한 마지막 배웅이라는 의미와 뜻은 결을 같이 한다.


나의 이야기를 잠시 하자면, 병원에서 일할 때도 시체를 자주 목격한 편은 아니었다. 종종 환자가 사망하지만, 사망 직후는 자는 것과 다름이 없고, 의료인들이 해야 할 정리가 끝나면 바로 영안실에 안치되기 때문이다. 질병으로 병원에서 사망하는 경우는 사고나 자살 등의 이유로 사망할 때보다 훨씬 깨끗하고 조금 더 인간적이라,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는 아니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치유와 간호를 행하지만, 죽은 사람에게는 애도를 표할 뿐, 이내 관심을 끊었었다.


시신을 직접 마주하고, 염습 과정을 지켜본 적은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다. 벌써 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당시 느꼈던 슬픔과 애도의 감정은 아직도 생생하다. 시신을 닦고, 손과 발을 고정하고, 삼베옷을 입히는 그 과정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배우자를 먼저 떠나보내고 혼자 살기 싫다며 눈물짓던 할아버지는 6년을 더 혼자 사셨다. 평소 나를 보고 웃어주시던 할아버지의 얼굴이 눈을 감고 편안해 보여 진정한 명복을 빌었다.

그러다, 할아버지의 시신이 관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방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일제히 울음과 곡을 터뜨렸고, 마음에 쿵- 돌덩이가 내려앉더니 쉴 새 없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슬프기는 하나 애통까지는 아닌 마음으로 조용히 보내드리려던 다짐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그 후 다행히도 가까운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는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아 염습을 더 겪지는 않았지만, 미래에 많은 주변인들을 하나둘씩 보낼 생각을 하다 보면 약간의 우울감이 찾아온다. 할아버지의 염습을 본 뒤,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앞으로 다시는 염습을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고인의 마지막 배웅을 경건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지켜볼 용기가 생겼다.

<의식>

엄숙하고 정숙한 염습 의식을 보고 있노라면,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생경한 마음이 깊숙한 곳에서 피어오른다. 고인의 살결이 드러나지 않도록 옷을 갈아입히는 섬세하고도 정확한 손놀림, 영정 사진을 참고하여 살아생전의 얼굴로 마지막 인사를 하게 해주는 화장, 의미 있는 물건을 염습에 사용하는 섬세한 배려까지. 염습 의식이 일어나고 있는 그 상황 속에 함께 하는 것만 같은 몰입감에 감정이 일렁인다. 어떤 장면에서는 슬픔에, 다른 장면에서는 감동에 복받쳐 눈물을 흘리고 엉엉 울었다.


영화는 트랜스젠더, 독거노인, 어린아이, 부인, 부모, 지인, 다양한 사연을 가진 죽은 이들과 그 가족들의 모습을 담으며 여러 경우의 염습 의식을 보여주는데, 이 점을 굉장히 높이 산다. 단순히 시신을 수습하는 것만이 아니라 고인과 그 가족들에게까지 위안을 주는 손길은 따스하기만 하다. 곳곳에 배치한 개그 포인트들이 거슬린다는 평들이 나올 수는 있으나, 일본 특유의 과장적인 모습을 고려해볼 때, 오히려 적정 선을 지키며 무겁지만은 않은 분위기를 자아내기에 칭찬할만하다.

<직업 귀천>

현대 사회에서 '직업에 귀천이 있다'라는 말을 입 밖으로 당당하게 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계급으로 나뉜 사람들의 시선이 그 귀천을 운운한다. 이 잘못된 시선으로부터 발생하는 상처는 생각보다 매우 크다. 모든 사람이 꼭 돈을 많이 버는, 명예나 권력을 쥘 수 있는, '-사'로 불리며 인정받는 전문적인, 흔히들 생각하는 좋은 직업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며, 그럴 수도 없다. 개인의 잣대로 다른 이를 도마에 올리고 평가하는 것은 오만하기 짝이 없는 만행이다.


직업이 그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듯, 어떤 일을 하는지는 중요하다. 그 업이라는 것이 타인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는 비상식적인 일이 아니라면, 모든 직업은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꿈이나 의지와는 다른 일을 업으로 삼고 있음을,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고 바라는 일, 꿈을 이룰 수 있는 일, 의무감보다는 즐거움과 기쁨 혹은 보람으로 가득 찬 일을 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한 축복이 어디 있을까. 비록 자신이 원하던 결과를 얻지는 못하더라도, 선택을 한 이상 그 업에서 보람과 가치를 찾는 것 또한 중요하고 생각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주인공 다이고를 사랑하고 신뢰하던 아내 미카마저 염습사(납관사)에 대한 거부감과 혐오감을 표현하는 장면은 유독 마음이 아팠다. 우아해 보이는 첼리스트라는 직업을 버리고, 더럽고 께름칙해 보이는 염습사를 택했지만, 그것 또한 다이고의 선택이고 결정임에, 그 누구보다 존중해 주어야 할 아내가 귀천의식을 내비친 사실이 안타까웠다. 현실적으로 닥친 일이라 생각하고 냉정하게 판단하면 이해 못 할 태도는 아니라는 사실에 입이 더 써지긴 했지만 말이다.


2020년 1월 재개봉을 반갑게 맞이하며, 영화 '굿바이'를 추천해 본다.



참고로,

그 외 장례지도사와 관련된 영화로는 '행복한 장의사(2000)', '내 사랑 내 곁에(2009)', '종이꽃(2020)' 등이 있으나, 세 편 모두 보지 못했다. 장례는 아니지만 죽음과 관련된 업을 다룬 책 '죽은 자의 집 청소'는 한 번쯤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세상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직업이 많고,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많음을 깨닫게 해 주며, 그 업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해주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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