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운디네’
<배경 지식>
이 영화는 기본적인 배경지식이 꼭 필요한 영화임을 밝혀 둔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은 감독, 배우, 느낌, 그리고 주변 지인들의 평이 전부다. 줄거리나 러닝타임 같은 건 신경 쓰지도 않거니와 예고편은 스포일러를 담고 있어 일부러 보지 않으며, 장르도 공포·호러를 제외하면 딱히 가리는 편이 아니라, 최소한의 정보만 가지고 영화를 본다.
따라서 이 영화가 무엇에 대해 다루는지 몰랐고, '운디네'라는 제목에서 이미 물의 정령 운디네와 관련된 이야기임을 눈치챌 수는 있으나, 부족한 상식으로 인해 그 설화의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했다. 이 영화의 줄기인 베를린의 역사나 건축에 대한 지식 또한 전무하니, 첫 번째 관람은 사실상 실패와 다름이 없다고 보아야 무방하다.
실제로 첫 관람 직후 지배하는 감정은 '영화가 이상하고 어렵다'였다. 많이들 '테넷'을 보고 난 후 두통이 생긴다고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운디네'가 머릿속을 더 어지럽혔다. 등장인물의 행동이나 감정도, 서사나 이야기의 흐름도, 대사나 소품에 담겨 있을 의미나 마지막 결말까지 모든 것이 명확하지 않은 채로 영화가 끝나버렸다.
참으로 이상하게도 어렵고 명확하지 않게만 느껴지는 이 영화가 유독 여운이 길게 남는 데다, 다음날 또 그다음 날이 되어도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자꾸만 영화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저기 정보와 지식을 찾아 헤매고, 많은 사람들의 리뷰를 꼼꼼히 읽어 본 후 다시 영화관으로 향했다.
<재관람>
지식을 조금이나마 쌓고 다시 만난 '운디네'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첫 장면부터 달랐다. 그저 이별 장면이라고만 생각했던 그 장면에서, 운디네가 울고 있던 표정도, 사랑한다고 말해야 한다는 협박성 짙은 대사도, 무언가 난감하고 불안하며 초조한 운디네의 모습까지 모든 것이 한순간에 이해되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이가 생기면 뭍에서 살아갈 수 있지만, 상대방이 그녀를 배신하거나 더 이상 그녀를 사랑하지 않게 되면 물로 돌아가야 하는 운디네는 뭍에서 살고 싶은 딱 그만큼 사랑이 절실하다. 요하네스에게 매달려 보지만 냉정하게 뒤돌아서 버리는 그를 보며 절망감을 느낀다. 실낱같은 희망으로 요하네스를 찾아 헤매던 운디네에게 어항 속 물은 이제 그만 돌아오라는 듯 이름을 부른다.
그 순간, 강의가 인상 깊었다며 크리스토프가 말을 걸고, 불안감을 고조시키던 음악이 일순 조용해진다. 우연하게도 그의 직업은 어항 속에 있던 피규어와 같은 산업 잠수사였고, 어항을 깨뜨린다. 깨진 어항의 유리 파편으로 인해 상처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감았다 뜬 운디네의 눈에는 초조나 불안보다 희망과 기대가 가득하다. 새로운 사랑을 찾았으니 안심이라는 듯이.
오프닝 시퀀스만 보는데도 가슴이 설렌다. 미묘한 감정 변화와 그를 따라 동요하는 눈빛과 표정까지, 그 섬세함을 눈치채기 시작했다면 이제 '운디네'가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을 준비가 끝난 것이다.
<메시지>
영화는 모호한 듯 보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중반부에 등장하는 문장 'Form Follows Fuction.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이 이 영화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운디네가 설명하는 베를린궁은 시대를 거치며 파괴와 재생을 반복하는 그녀의 운명과 같다.
베를린궁은 세계대전 후 분단을 겪고 이후 통일을 겪으면서 그 기능과 형태가 여러 차례 변했다. 15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까지는 독일 제국 황제의 거처인 궁이었고, 1918년 독일 제국의 해체 후에는 박물관으로 사용되었다. 나치 독일 시기에는 철거의 위기가 있었고, 제2차 세계대전 시 폭격을 당했으며 1950년 동독 당국에 의해 철거되었다. 그 후 1990년 독일의 통일 이후 복원이 진행 중이다(출처 : 위키백과). 시대에 따라 당시의 결정자들이 베를린궁을 어떻게 쓸 것인지 그 기능을 정하면, 그에 따라 형태가 변화되어 왔다. 이제야 그 역사적 의의를 잃지 않고자 복원 중에 있으며, ‘훔볼트 포럼’이라는 이름으로 교육과 예술을 위한 박물관이 될 것이라 한다.
깊은 물속 'UNDINE'라는 글귀는 오래전 운디네가 뭍에 살며 누군가를 사랑했다는 증거다. 그녀는 아주 오랫동안 물과 뭍을 오가며 살았을 것이다. 적어도 글귀가 적힌 돌아치가 물속 깊은 곳에 잠기게 되는 시간 동안은 말이다. 하나의 사랑이 끝나면 물속으로 들어왔다가, 또 다른 사랑으로 뭍에 나갔다 다시 물로 돌아오는 일종의 파괴와 재생을 반복하며 살아왔다. 사랑(기능)에 따라 그 형태를 달리하면서 말이다.
크리스토프가 운디네에게 건네주었던 산업 잠수사 피규어는 다리가 부러짐으로써 형태가 바뀌고, 그에 따라 기능이 변한다. 부러진 다리를 다시 이어 붙인다고 해서 그 전과 똑같아질 수는 없다. 운디네가 부러진 다리를 다시 붙이듯 크리스토프의 의식도 다시 이어지지만, 크리스토프는 더 이상 운디네와 함께할 수 없다(기능).
<운명>
물은 자꾸만 운디네를 부른다. 운디네를 끌고 가던 메기 군터, 요하네스를 스쳐 지나가며 잠시 멈춘 심장, 크리스토프의 죽음을 통해 협박성 짙은 메시지를 남긴다. 결국 그녀는 크리스토프를 살리고, 요하네스를 죽이며 자신의 운명에 순응한다. 운디네가 운명에 순응함으로써 돌려받은 크리스토프의 생명은 모니카 뱃속의 생명으로 이어진다. 그제야 운디네는 크리스토프에게 산업 잠수사 피규어를 돌려주며 그를 완전하게 놓아준다.
크리스토프의 직업이 산업 잠수사인 것 또한 운명의 장난이다. 그이기에 물속 깊은 곳까지 운디네를 데려다줄 수 있었고, 운디네의 과거를 들춰볼 수 있었으며, 물의 공포를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었고, 마지막까지 운디네를 만나러 물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는 물과 가장 가까이에 있고 운디네의 심장을 두 번이나 다시 뛰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물속에서 그리고 그녀의 곁에서는 살지 못하는 운명인 것이다.
운디네는 언제 다시 뭍으로 나올 수 있을까?
덧, 노래 'Stayin’ Alive'를 자꾸만 흥얼거리게 된다.
(다른 부분은 모르고 stayin’ alive x2 만 계속 반복한다.)
덧2, ‘트랜짓’과 함께 보면 더할 나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