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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a Jan 14. 2021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김시선 - <오늘의 시선; 하드보일드 무비랜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인스타그램이라는 SNS 매개체를 통해서 여러 사람들을 알게 되고 친분을 쌓았으며, 거기서 더 발전하고 싶어 최근 영화 소모임을 만들었다. 영화에 대한 감상과 평, 관련 정보나 지식들을 나누며 평소 가지고 있던 영화 수다의 갈증을 해소한다(물론 영화 외 이야기들도 나눈다.). 영화는 이미 내 인생 깊숙한 곳까지 뿌리내려 있다.



그 좁은 공간 안에서 느껴지는 묘한 동질감이 있다. 소수의 사람만이 찾는 영화를 보러 왔다는 어떤 자부심과 설렘. (109쪽)


영화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할수록 더 강해진다. (112쪽)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에 지식이 많은 사람들이 쓴 책을 유독 좋아하는 이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를 보는 눈이 넓어지고, 글이지만 글쓴이와 소통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영화 평론, 영화와 관련된 본인 이야기, 영화감독 자서전 등 영화를 주제로 풀어나간 글들을 많이 읽으려 노력 중이다. 이런 책들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을 써 내려갔기 때문에 유독 반가운 마음이 든다.


그중에서도 이 책은 그동안 읽어본 많지 않은 영화 관련 책들 중에 가장 쉽게 읽히는 글이기도 하다.





영화를 두 번 봐야 하는 이유. (중략) 영화도 똑같다. 한 번 봐서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결말을 모르는 상태로 영화를 따라가기 때문이다. 영화가 이끄는 대로 결말에 집중하다 보면, 과정의 디테일한 부분들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깊이 알기 위해선 결말을 알고 다시 봐야 한다. 영화의 끝을 알고 보면, 결말에 끌려가지 않고 과정에 집중하며 영화를 볼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이전에는 놓친 부분이 반드시 보인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이, 내가 도착하고픈 영화의 목적지로 안내하는 열쇠가 된다.

(26-27쪽)



일반인들에게는 결말을 이미 아는데 영화를 왜 또 봐야 하는지, 결말을 알고 보면 재미도 의미도 없지 않느냐는 의문이 들 수 있는 문장이다. 그러나 일명 N차 관람을 일상으로 생각하는 영화인들에게는 너무나도 공감 가는 이야기이며, 이에 공감하지 못하는 일반인들에게 영화를 여러 번 보는 행위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이유다.

책을 읽으며, 나는 영화를 전적으로 '사랑'하는 것은 아님을 깨달았다. 영화를 취미 그 이상으로 여기며 인생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생각하고 있다지만, 업으로 삼을 수 없는 이유 또한 같다. 모든 영화를 포용하고 사랑할 수 없다는 점 때문이었다.


별점을 매기며 주관 가득한 평을 하는 것은 그 영화를 기억하는 나름의 방식이다. 기록해둔 별점을 보면 한눈에 그 영화에 대한 주관적인 평과 느낌을 알 수 있고, 시간이 많이 흘러 다시 찾아보더라도 당시 그 영화가 개인적인 취향에 얼마만큼 적합했는지 추측할 수 있다. 물론 영화를 볼 때마다 평과 별점은 달라질 수 있다.


나 자신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하는 사람인 것을 알기에, 영화마다 별  반 개부터 별 다섯 개까지의 평을 매기면서, 그리고 다른 이들의 별점 평을 보면서 부끄러움이나 불만을 느껴 본 적은 없다.


그러나 그 영화에 몸을 담은 많은 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은 든 적이 없지는 않다. 분명 영화를 업으로 삼고 있는 그들은 이 영화에 시간과 노력과 열정을 쏟았을 것이다. 공들인 작품이 혹평과 낮은 별점을 받는다면 당연히 속상할 테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영화에 좋은 평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상훈이 형은 영화에서 '흠'이 아니라 '빛'을 찾는다. 이게 쉬운 것 같아도, 사실 정말 어렵다. 영화를 자주 보는 관객이라면 날이 갈수록 만족스러운 영화를 찾기가 어려워진다는 걸 느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많이 봐서 그렇다. 평론가들의 별점이 이해가 안 될 정도로 낮은 이유는 비교 대상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99쪽)



이것이 바로 영화에 대한 나의 한계점이다. '흠'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아니지만, 단점이 눈에 보이는 영화는 평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물론 그런 영화들 안에도 '빛'은 분명 있다. 그 '빛'들이 너무 많은 '흠'에 가려져 그 빛을 제대로 발하지 못할 뿐이다. 그런 흠들 사이에 비친 빛 하나만으로 그 영화 자체를 낮게 평가하지 않는 것은 어렵겠다. 고로 나는 영화 애호가 혹은 영화 마니아 (일명 영화 덕후)까지는 될 수 있겠으나, 시네필이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148쪽부터 156쪽까지 별점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작가가 왜 별점을 매기지 않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유 말이다. 영화 고유의 매력들을 오래도록 간직하려면 별점을 없애는 것이 맞다. 모든 영화에 대한 생각을 글로 남겨 두는 것이 그 영화를 제대로 기억하는 일인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은 글이나 영화를 업으로 삼는 혹은 글을 쓰고 기록할 시간이 충분한 사람들에게나 가능한 일이 아닐까. 쓰고 싶은, 기록하고 싶은 내용들만 기록해두기에도 버거운 삶이다.





영훈이형은(소피아는) 「라라랜드」를 본 후로 그 영화에 미쳐버렸다. (159쪽)



「라라랜드」는 나에게 가장 중요한 영화다. 인생 영화를 고르라고 하면 무조건 빠지지 않는 영화 중 하나다. 이 영화를 보고 다른 사람들보다 내가 영화를 더 많이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영화 관련 계정의 프로필 사진은 무조건 「라라랜드」며, 지금까지 몇 수 십 번을 본 지 모르겠다(20번을 넘어간 후부터 세지 않았다.).


남들보다 영화를 더 자주 보러 다닌 것은 맞지만, 마니아까지는 아니었던 2016년. 평소와 다름없이 개봉한 영화들 중 끌리는 영화를 예매해서 보러 갔다. 그리고, 오프닝 시퀀스가 끝나자마자 느낄 수 있었다. '아, 이 영화는 미쳤다. 대단하다. 뭔가 다르다.’.


「라라랜드」라는 영화에 홀딱 반해 여기저기 홍보를 하고, 이 영화를 본 친구들과 이야기도 나누어 보았지만, 나처럼 열광하는 이를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문득, 내가 다른 이들보다 영화를 더욱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영화를 취미 그 이상으로 생각하며, 거의 매일 영화를 감상하고, 리뷰를 쓰고, 굿즈를 모으며 살고 있다. 이제는 누군가 취미가 뭐냐고 물으면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영화,라고.



덧, 영화 관련 서적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언급된 영화들을 모조리 챙겨보고 싶다. (봐야 할 영화는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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