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냥 읽게 해 주세요.

책 읽기 힘든 아이들

by 김지혜



KakaoTalk_20230821_223227064.jpg


독후감 쓰기, 하루에 세 권 읽기, 읽는 모습 영상으로 찍어 인스타 인증하기, 읽고 토론하기 등 독서와 관련된 활동들이다. 상담을 하면서 아이들이 말하는 푸념 중에 이런 독후활동에 대한 불만이 꽤 많았다. 특히 방학을 맞이하여 독서에 대한 부담을 토로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대화를 하다 보면 책을 읽는 것은 오히려 좋아했다. 학습만화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책들을 읽고 있고, 읽고 싶어 했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나서 하는 다양한 활동에 대한 부담이 있었고 결국 책을 읽기 싫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매일 규칙적으로 독서 습관을 자리 잡기 위해 책 읽는 시간, 책 읽는 자리, 읽을 책 목록이 정해 진 아이가 있었다. 독서습관을 중요하게 여기는 부모님은 학교나 도서관에서 알려주는 추천 도서 목록을 도서관에서 빌리고 서점에서 사서 하루에 3권씩 꼬박꼬박 읽게 하였다.



공부는 많이 안 시켜도
책은 많이 읽게 하고 싶어요.
살아보니 지식보다는 지혜가 있어야 살아가는데
힘이 되더라고요.



세상사는 힘을 책에서 찾게 해 주고 싶은 부모님의 동기는 좋았지만 과정이 아이의 성향과 맞지 않았다. 결국 아이는 몸을 베베꼬며 읽기 싫어했고 "부모님은 3권을 읽어느냐 안 읽었느냐", "책 읽는 시간에 왜 책을 읽지 않느냐", "이 책을 읽어야지 왜 다른 책을 읽느냐 " 로 실랑이가 벌어지는 일이 잦았다. 아이는 책을 읽기 싫은 것이 아니라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싶은 만큼 읽고 싶은 것이었다. 상담을 하며 부모님께 조심스럽게 "하루에 3권이면 일주일에 21권이네요. 아이에게 일주일에 21권을 알아서 읽게 해 주세요"라고 권했다. 그리고 21권 중 반은 부모님이 원하시는 책으로 나머지 반은 아이가 원하는 책으로 읽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물론 확인은 매일 저녁 하는 것이 아니라 일주일에 한 번 일요일 저녁으로 해달라고 하면서 "아이가 월 화 수에 21권을 다 읽고 목 금 토 일 안 읽어도 되냐고 물을 수도 있어요. 반을 만화로만 읽을 수도 있어요"라는 예상되는 점을 미리 고지해 드렸다. 결과는 부모님이 원하시는 책을 포함하여 30권 넘게 읽었고, 금토일은 책을 읽지 않았다. 부모님은 "매일매일 따박따박 규칙적으로 좋은 책"을 원하셨지만 아이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 일단 읽는 것에 대한 흥미를 갖기, 읽는 것에 대한 거부감 주지 않기가 먼저였다. 시간이 지나면 부모님께서 원하시는 삶의 지혜를 책에서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책을 읽고 아이와 토론을 하는 부모님도 만났었다. 책 내용에 대해 서로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도록 질문 시트지를 만들어 차 한잔 하면서 토론을 하였다. 부모님과 아이가 둘러앉아 책 이야기를 하는 이상적인 모습이 상상되었다. 하지만 현실은 긴장된 아이와 대답을 유도하는 부모님이었다. 아이가 자신감이 없어 시작한 활동이었다. 수업 시간에 발표하고, 모둠 활동에서 의견을 말하기 어려워해서 시작한 활동이었다. 아이가 책을 좋아하고 조잘조잘 책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해서 결정한 활동이기도 했다. 문제는 틀 없이 이야기할 때는 "이 책은~" 하면서 잘만 이야기하더니 시트지를 만드고 자리를 만드니 불편해했다. 그저 수다로 말하기를 권유했다. "책 이야기를 독서 토론이나 학습으로 유도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대화로 해 주세요. 시트지는 부담스럽고 정답을 말해야 할 거 같아 긴장하게 됩니다. 그냥 수다가 좋아요. 일단 책으로 말하는 자신감을 갖는 것부터 시작해요"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시트지를 만들어 올 수 도 있다.





물놀이와 수영강습은 다르다. 물놀이를 좋아한다고 수영강습을 시켰는데 수영장을 가기 싫어하는 아이들이 많다. 아이는 물에서 놀고 싶은데 수영강습은 훈련을 하고 테스트를 보기 때문이다. 물에서 충분히 놀면 서서히 수영을 잘하고 싶은 때가 올 것이다. 그때 강습을 해야 한다. 책을 좋아한다고 바로 책으로 하는 훈련을 하려는 부모님이 있다. 책을 좋아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면 서서히 다른 사람이 추천하는 책에 관심도 갖게 되고, 토론도 하고 싶어질 때가 올 것이다. 그때 독후 활동이 자발적으로 될 것이다.



지금은 그냥 재미있게 읽게 해 주세요.




PS - 책과 관련된 활동을 좋아하고 원하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이 글은 규칙적으로 책을 읽고, 이후의 활동들이 버거운 아이들을 위한 개인적인 의견임을 밝힙니다.

keyword
이전 16화어린이는 지금 당장 놀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