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꾸는 노마드 Feb 17. 2023

마음이 통한다는 것

다양한 친구에 관하여 

우리나라에선 보통 친구의 기준이 동년배로 한정돼 있다.

또한, 주로는 같은 학창 시절을 보내며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 사이를 정의하는 경향이 있다.

더불어 지난번 내가 언급한 친구의 개념도 그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엄밀히 친구라는 건 나이를 떠나 마음이 통하는 관계에 통용되어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외화를 보다 보면 할아버지 할머니뻘 되는 분과 어린아이가 아무런 스스럼이나 구애 없이 대화를 이어가고 마음이 통하는 걸 꽤 보게 됐고, 아마 그때부터 외국에 대한 나의 동경은 시작됐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고 말이다.


해서 오늘은 또 다른 의미(?)의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캐나다로 이민 간 후 타국에서의 외로움에서 비롯된, 혹은 한국말을 잊지 않겠다는 의지의 발로로 시작된 블러깅생활을 하게 되면서 내겐 이런 친구분들이 꽤 생기게 됐다.

그중 기억나는 몇 분이 있는데,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분도 있고 이제는 교류를 거의 하지 않는 그런 분도 있다.


먼저, 아직까지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분은 나보다 4살이나 많은 공무원 출신 여자분이다.

언니가 없어 집에서 살림을 도와주셨던 분 외에는 '언니'라는 말을 해 본 적이 없었던 나는 쉽사리 '언니'라는 말이 안 나오는 편인데, 그분에겐 언젠가부터 '언니'라는 호칭을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맛난 것을 사주시고, 선물도 주시고, 좋은 곳도 구경시켜 주시면서 속 깊은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그분은 정말 내게 언니같이 따뜻한 분이다.


또 한 분은 차이 많은 오라버니뻘쯤 되시는 남자분이신데, 아내 분까지 함께 만나 밥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는 그런 사이였다가 나중엔 며느님과 손자 아이까지 만나본 사이로 발전했었다. 늘 내게 호의적이셨고, 나의 심중을 헤아려주신 분이셨는데 지금도 간간히 인사는 드리지만 직접 못 뵌 지는 꽤 됐다.


또 다른 한 분은 내 어머니보다도 연배가 높으셨던 교사 출신 여자분이셨는데, 마치 잃어버렸던 딸을 대하듯 그렇게 살갑게 날 챙겨주셔서 황감할 지경이었다. 서로의 마음을 터놓고 나이도 잊은 채 대화를 이어나갔던 수많은 시간을 지나 언젠가부터 연락이 안 되더니 지금은 어찌 지내시는지 알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람을 만나 공감하고 소통했던 그 시간만큼 상실에 대한 선명한 기억이 남아 있지만, 이 또한 받아들여야 할 과정이라고 여기면서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최근에 대화를 통해, 글을 통해 잇게 된 인연도 있다.

우연히도 동년배에, 비슷한 감성을 소유했고 취미도 비슷해 보여 마음이 통하는 그런 친구다.


그러고 보면 원래 내가 생각했던 대로 친구라는 건 '선을 넘지 않되 편안한 관계' 그리고 거기에 마음이 통하는 그런 관계에 대한 통칭이 되어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바로 '소통'이기에 더욱 그렇게 여겨진다.




작가의 이전글 옛 친구가 좋은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