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크 발람'(Ek Balam)
여행 다섯째 날인 월요일, 남편과 나는 올인클루시브 여행 중 생전 처음으로 현지 관광을 선택했다.
멕시코 중에서도 마야 문명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곳, 리비에라 마야에 왔으니 적어도 마야 유적지는 방문해야 할 것 같았고 코스로 함께 짜여 있는 쎄노테(Cenote), 즉 천연 우물 역시 들르는 여정을 택한 것이다.
실은 일요일인 전날 우리는 현지 여행을 계획했었는데, 그날은 할 수가 없다고 해서 다음 날인 월요일로 계획을 변경했다.
이런 여행은 신청자를 받아 현지 관광 가이드가 한 팀으로 함께 묶어 계획하는 것이라 어느 정도 사람이 모여야 한다. 해서 월요일 아침 일찍 우리는 이른 아침식사를 마치고 호텔 로비에 모였다 현지 가이드를 따라 작은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몇 군데 호텔에 들러 함께 관광할 사람들을 만나 인사를 나눈 후 ‘이크 발람’(Ek Balam)이라는 마야 유적지로 향했다.
리비에라 마야에서 가장 관광객이 많고 유명한 곳은 사실 ‘치첸 이짜’(ChiChen Itza)라는 곳인데, 에어트란젯 가이드가 그곳은 너무 사람들이 넘치고 먼 곳이니 ‘이크 발람’이 낫다고 추천하길래 그의 말에 따라 이곳을 방문하기로 결정하게 된 것.
하지만 결론적으로 치첸 이짜나 이크발람이나 멀기는 마찬가지였다.
물론 이크 발람은 가이드 말대로 그다지 관광객이 많지 않아 여유롭게 유적지를 돌아볼 수 있긴 했었지만 말이다.
이크 발람에 도착하기 전 화장실도 들를 겸 우리는 한 곳에 잠시 정착했는데, 그곳은 멕시코 토속품을 파는 곳이었다.
그곳에 도착하니 각 언어 별로 가이드가 다른데, 남편은 할 수 없이 나와 함께 영어 가이드를 선택했다.
남편을 포함 우리와 함께 온 대부분의 관광객은 불어를 하는 사람들이었음에도 말이다. 그런데 우리를 안내하는 가이드는 사실 영어권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현지 멕시코인들과 조금 달라 보였는데, 알고 보니 스페인 본토에서 온 사람으로 대학에서 마케팅을 공부한 후 유명한 의류 업체인 ‘자라’에서 일하다 너무 피곤하고 스트레스가 쌓여 멕시코로 날아왔다고 했다.
그는 이곳에서 가이드를 하며 유유자적 살아가는 것에 꽤 만족하는 듯 보였다.
이렇듯 언어만 가능하면 세계 어느 곳에서든 살아갈 수 있는 그들의 언어적 환경이 잠깐 부럽기도 했다.
물론 우리의 말도 점점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긴 하지만, 아직 우리말로 밥을 벌어먹고 살 수 있는 건 극히 한정적이라는 생각을 해 보면서 그랬다.
그는 영어를 배워가며 영어 가이드를 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자신의 부족한 영어에 대해 이해를 구했지만, 발음만 조금 어색할 뿐 전혀 알아듣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마야인들은 왜소한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거대한 피라미드를 비롯해 다양한 문화유산을 남겼고, 그중 이곳은 가장 최근에 발견된 곳이라고 했다.
고고학자인 프랑스인 데지레 샤메이가 1800년대에 처음 발견했고, 그 후 1990년대에 가서야 발굴되었다고.
신전으로 올라가는 길은 꽤나 가팔랐는데 이곳에는 ‘엘 트로노’(왕좌라는 뜻)라 불리는 왕이 묻혀 있는 걸로 알려져 있고 입구에는 괴물의 입을 하고 있는 형상이 있는데, 아마도 재규어의 입을 본뜬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원래 이크 발람이라는 게 마야어로 ‘검은 재규어’라는 뜻이라고).
그곳에서 얼마간의 시간을 보낸 후 우린 다음 코스인 쎄노테(Cenote)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