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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노마드 Jan 31. 2024

오래전 베를린 여행 7

베를린 교외 '쌍쑤시성'(Sans Souci)

다음 날은 드디어 일요일이었다.  동시에 내 생일날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아침부터 남편이 내게 더 각별히 잘해주는 게 느껴졌다.   

내가 화장을 하고 준비하는 동안 카데베 백화점에 가서 조그만 선물(이미 받고 싶은 선물은 몬트리올에서 먼저 쇼핑했었고.)과 카드를 사 와선 짜잔~ 하고 앞에 내놓았다.  

결혼 후 처음으로 오붓하게 둘이서만 맞게 되는 생일인지라 더욱 감회가 새로웠다.


아침을 호텔에서 먹고 드디어 베를린 시내가 아닌 교외 쪽으로 나가본다고 생각하니 기대가 많이 되었는데, 남편은 예의 그 조바심으로 지도를 몇 번이나 들여다보면서(당시는 GPS가 없었던 지라!) 잘 찾아야 할 텐데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렇게 찾기 어렵지도 않은 곳에 남편의 걱정과 함께 도착해 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성을 구경하고 있나 보았다.  주차장이 꽉 차 있어 겨우 한 바퀴 돌고 나서야 주차할 곳을 찾았는데 나중에 보니 입구도 여러 곳이라 주차장이 가까이에도 있었는데 처음 가는 우리 같은 사람은 그걸 알 도리가 절대 없었던 것!



그 지역은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문화유산으로 정해진 ‘포츠담’이라는 곳인데 그중 로코코 스타일의 쌍쑤시 파크(쌍쑤시 성을 비롯 여러 성과 정원을 포함한)가 가장 넓게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은 독일의 베르사유로 일컬어지고 있다고 했다.

드넓은 정원과 성, 거기에 때가 때인지라 멋진 단풍까지, 정말 환상적인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고, 특히 정원은 프랑스-이태리 스타일의 조경을 보여주고 있어 더욱 멋져 보였다.

널찍한 정원을 구경하고 길 양쪽으로 쭉 늘어서 있는 늘씬한 나무들을 보고 있노라니 세상의 모든 시름이 사라지는 듯한 착각에까지 빠지게 되었는데, 그 성의 이름인 '쌍쑤시'라는 뜻이 우리말로 하자면 '걱정 없는'이라고 하니 이름 하나 기가 막히게 붙였다는 생각이 짙어졌다.


이 궁전은 프리드리히 2세가 자두와 피그, 와인을 경작하기 위해 1744년 테라스 정원으로 계획한 이래, 2년에 걸쳐 완성되었단다.

후에 신궁전, 중국 찻집, Friedenskirche(평화의 교회란 뜻), 오랑제리, 노르웨이 정원, 시실리안 정원 등이 보강되면서 볼 게 무궁무진해졌다고.  

워낙 넓고 볼거리가 많아 천천히 여유롭게 구경을 하려면 하루 꼬박 걸릴 정도란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전 날 또 다른 성을 구경했고, 성 안도 구경을 많이 했기에 이번엔 그냥 겉만 감상하기로 결정했다.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멋진 교회나 성을 처음엔 신기해서 한참 구경하게 되는데 좀 시간이 흐르다 보면 다 비슷비슷하게 보이는 게 사실인지라 그러기로 했다.



성과 정원을 구경하는 것도 좋았지만 더욱 좋았던 건 바로 그림의 한 장면 같은 늦가을 낙엽이 무수히 쌓인 공원 안을 산책한 게 아닐까 싶다.  

공기도 맑고, 경치도 끝내주고, 정말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청량감이 몰려왔다.  

동시에 자연을 통해 신을 느끼고, 신께 감사하는, 그러면서 우리 자신의 미약함을 느끼면서 겸허한 마음이 되는 것, 그게 바로 여행의 목적이라는 느낌이 절로 다가왔다.  

청명한 하늘과 밝은 햇살 아래서 가슴에 말할 수 없는 포만감이 느껴지면서 그날만큼은 아무것 안 먹어도 배가 부르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정작 배고픔을 참지 못하는 우리는 곧 출출해진 배를 달래며 독일의 유명한 소시지 파는 곳으로 향했다.  쌀쌀한 날씨에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줄 커피 한 잔도 사서 대동하곤.  

그곳에서 배를 좀 채운 다음 다시 구경을 재개했는데 역시 든든할 때 눈에 더 아름다움이 화사하게 다가오는 게 맞다는 걸 실감했다.^^



그렇게 대충 구경을 한 다음 본격적으로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 문제는 독일이 다 그런 건진 모르겠지만 베를린은 좀 괜찮다는 레스토랑은 일요일에 다 문을 닫고, 게다가 우리의 카데베 백화점까지 그날은 쉬는 날이었다.  

이리저리 좀 괜찮은 레스토랑을 찾는답시고 돌아다니다 결국엔 할 수 없이 호텔 가까이 있는 유로파센터(여기도 관광책에 소개될 만큼 유명한 곳이긴 한 듯) 안에 있는 중국집으로 가서 이것저것 중국요리를 시켜 먹었다. 중국요리라고 할 것도 없이 뭐 동양음식이 짬뽕된 일종의 퓨전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역시나! 결과는 정말 맛 별로였다.  



그렇게 바빴던 하루도 저물어가고 이제 베를린을 뜰 시간이 가까워 온다고 생각하니 한 편으론 보고 싶은 가족들(아이들, 동생, 조카들)을 볼 수 있어 좋지만, 또 한 편으론 내가 떠나면 혼자 뭔 맛으로 식사를 할꼬! 걱정하는 남편이 안되어 보이기도 하고 기분이 좀 묘해졌다.  

다음 날 하루 마지막으로 구경할 시간은 있지만 그다음 날엔 몬트리올을 향한 비행기를 타야 했으니.

그래도 '현재를 즐겨라!'는 말대로 지금 현재에 가장 충실하기로 맘먹곤 다시 힘내서 밤거리를 좀 더 구경하다 우린 호텔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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