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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노마드 Feb 14. 2024

베를린 여행을 통해 느낀 독일의 두 면모

과거를 반성하는 독일, 과거의 영화를 기억하는 독일

남편 출장 덕에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이미 1997년, 같은 10월에 친구가 살고 있는 마인츠를 비롯 독일의 몇 도시를 여행한 적이 있었긴 했지만 그때 가 보지 못했던 그곳을 얼마 전에 가보게 된 것이었다.  

10년 만에 방문한 독일은 예전에 내가 기억하고 있던 그대로의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었다. 

 비록 베를린은 처음이었지만 깨끗한 거리, 너무 친근하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적당히 외국인들을 대하는 그들의 사려 깊어 보이는 모습까지 10년의 세월이 무색할 만큼 익숙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타 유럽국에 비해 영어로 의사소통 하는 것이 쉬웠던 걸 기억해 내어 더욱 친근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첫날부터 전혀 어색함이나 낯섦 없이 지낼 수 있었는데 그건 아마 남편이 먼저 도착해 있어서 나에게 배당되는 번거로운 절차가 생략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베를린 하면 우리와는 인연이 깊은 도시라는 감회가 있는데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올림픽 메달리스트인 손기정 옹께서 바로 이 베를린에서 목에 금메달을 걸었었지만 그 당시 일본의 식민지였던 우리는 기쁨 속에 울분까지 함께 삼켜야 했던 쓰라린 과거를 잊을 수가 없기에 그럴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독일과 대한민국이 세계에 존재했던 단 둘의 분단국이었지만 1989년 독일은 이 베를린이라는 도시의 장벽이 허물어지면서 한 나라로 통합되었기에, 이제 우리가 유일한 분단국으로 남았다는 것 역시도 베를린을 우리가 기억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 여겨진다.


베를린은 독일이 합쳐지기 전부터 동독의 수도였고, 통독된 지금도 여전히 독일의 수도로 남아있는 만큼 타 독일 도시에 비해 여러 가지 볼거리가 더 많은 게 사실인 것 같았다.  

베를린을 떠나기 전 베를린에 대한 공부를 전혀 하지도 않았었고, 그곳에 도착해서 남편이 미리 사놓은 책자를 봤던 게 베를린에 대한 지식을 얻은 전부였기는 하지만 내 눈으로 직접 돌아본 베를린 만으로도 이 도시의 매력과 문화적, 역사적 아우라를 느끼기에 충분했다고 생각되었다.


이번 베를린 여행을 통해서 내게 각인된 독일의 이미지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과거를 반성하는 독일과 과거의 영화를 기억하는 독일로 말이다.


유태인박물관
Topography of Terror


신기한 것이 본격적인 베를린 관광 첫날 갔던 곳이 ‘유태인 뮤지엄’이었다면, 방문 마지막 날 가 보게 된 곳이 바로 ‘Topography of Terror’이었는데 이것 또한 우연의 일치라고만 볼 수 없는 분명한 의미가 있다고 느껴졌다.  ‘잘못된 과거의 행적에 대해서 용서는 하되, 절대로 잊지는 말라’는 교훈을 새기라는 의미로 말이다.


흔히 우리 민족성은 빨리 끓고, 빨리 식어버리는 냄비에 비유되면서 ‘절대 용서 못한다.  그러나, 잊었다.’로 대변되기에, 이런 악습을 반성하고 재인식하라는 의미에서 운명의 여신이 날 거기로 이끌었던 건 아니었을까? 나 역시 다혈질적이고 빨리 잊어버리는, 전형적인 한국인 기질이 다분하기에 더욱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TOT’는 동, 서를 가르는 베를린 장벽이 쳐져있던 곳과 연결되어 있는, 옛 나치 정권의 대표기관인 게스타포와 SS 본부 건물이 있던 자리에 위치한 야외 뮤지엄이라고 볼 수 있다.  

1987년 베를린 750년 기념행사로 첫 전시가 시작된 이래 열린 공간으로 유지해오고 있는데, 1992년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재단이 발족되었고 새로운 건축가를 앞세워 영구적인 뮤지엄의 모습을 재건하려고 했지만, 기금 문제 등으로 인해 아직 완성되지는 않은 채 여전히 설계와 건축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 

이곳을 통해 느끼게 된 독일은 우선 예전의 과오에 대해서 분명히 인정, 인식하고, 그걸 숨기기보다는 차라리 후손들에게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냄으로 그와 같은 비극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기를 진실로 원하는 듯 보였다.  

더불어 그들은 자신들이 저질렀던 만행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그곳을 방문하는 모든 이에게 그 사실을 주지 시키므로 자신들을 단죄하려는 이들에게 떳떳해 보임과 동시에 그들 스스로 충분히 대처해 나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역시 이성적이고, 자긍심 많은 민족다운 처세라 여겨졌다.  

혹자는 그들의 그런 태도 역시 지나친 자만심에서 나온 순수하지 못한 동기로 치부하지만, 뻔한 사실을 여전히 손바닥 가지고 하늘 가리는 식으로 숨기려고만 드는 일본과 비교했을 때 그들의 용기에 일단 박수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비단 나만의 심정일까?


그들의 그러한 반성과 용기의 흔적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이 두 군데 있었는데, 바로 ‘유태인 뮤지엄’과 ‘Topography of Terror’(공포의 지형학?)이었다.  

나치 당수 히틀러가 멸살시키려고 했던 유태인들의 역사와 문화를 비롯, 그들의 비극을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역설적으로 이름 붙여진 ‘기억 지우기’ 공간까지 갖추고 있는 ‘유태인 뮤지엄’은 그곳을 돌며 관람하는 내내 숙연한 분위기가 유지되었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청소년들에게 뮤지엄 소개를 하고 있는 선생님을 보면서 독일 민족의 저력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그곳에는 나치당원들의 만행이 적나라하게 전시되어 있는 것은 물론, 무고한 유태인들을 살리려고 노력한 목회자, 일반인들의 사진을 비롯해 게슈타포 감옥, 정치범들을 가두웠던 독방, 악명 높았던 게슈타포 군인들과 SS 요원들 모습, 1945년 게슈타포, SS 본부가 폭격당했던 당시의 사진 등 다양한 사진과 문서가 전시되어 있다.  

너무도 처절한 역사의 현장을 둘러보며 처음에는 섬뜩함과 아울러 가슴이 싸해졌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가 왜 역사를 보존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얻었다는 감동과 깨달음이 가슴속에 밀려왔다.  

역시 역사란 지나간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우리에게 미래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길잡이가 된다는 걸 배운 귀중한 시간이었다.



이렇게 과거를 반성하고 있는 독일의 모습을 본 게 한 면이라면, 또 다른 면모의 독일을 느낄 수 있었던 계기는 바로 독일의 옛 영화에 대한 그들의 대단한 자부심을 보여주는 프로이센 시대의 두 성을 방문했을 때였다.  

이름하여  'Schloss Charlottenburg’(샤를로텐부르크 성)과 ‘Schloss Sanssouci’(쌍수시성). 

한 곳은 베를린 시내에 있고, 또 한 곳은 베를린에서 조금 떨어진 교외 이자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 문화유산 도시인 포츠담에 있었는데 두 곳 다 멋지고도 널찍한 정원과 조경이 인상적인 곳이었다.  

건물의 양식은 바로크와 로코코라고 하는데, 두 곳 모두 성 내부를 사진 찍을 수 없어 그게 좀 안타깝긴 했지만 선조들의 문화유산을 잘 보존하려는 그들의 강한 의지로 받아들였다.   



먼저 ‘샤를로텐부르크 성’은 베를린에서 가장 큰 성으로 원래는 프리드리히 왕이 그의 아내 소피 샬롯을 위해 여름별장용으로 지은 것이라 한다.  

2차 세계대전 때 많이 손상되어 그 후 다시 복원되었고, 특히 처음에 바로크식으로 설계되었던 정원은 19세기에 다시 영국식으로 재설계되었는 데 이는 독일에서도 손꼽아주는 가장 인상적인 정원 중 하나라고 한다. 길게 펼쳐져 있는 정원의 오른쪽 끝에는 ‘벨베데르’라는 도자기를 전시한 곳이 있었고, 그곳에서 대각선으로 왼쪽에는 프리드리히왕과 왕비의 묘가 있는 ‘마우솔레움’이라는 납골당이 있었다.  

내가 방문했던 날, 마침 비가 조금씩 뿌려 더욱 운치를 자아내었는데 가을도 좋지만 여름에 방문하게 되면 화사한 꽃들을 구경하면서 산책을 즐기기에 아주 안성맞춤일 듯싶었다.


성의 내부에는 그들의 영화스럽고 찬란했던 과거를 짐작할 수 있는 각가지 화려함의 극치가 전시되어 있었는데 특히나 중국도자기들이 2,700 여개 넘게 전시된 ‘도자기방’과 프로이센 로코코 스타일의 화사한 천장과 프랑스 그림들이 인상적이었던 ‘골든 갤러리’가 멋졌고, 그 밖에도 성 내부에 마련된 교회, 신고전주의식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와 그의 아내 퀸 루이즈 방까지 한 때 유럽 최강의 군사대국이었던 프로이센의 위용이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그리고 베를린을 조금 벗어난 곳에 위치한 ‘쌍수시 성’은 일단 그 광활한 성의 규모에서부터 나를 압도했는데 독일의 베르사유라는 명성대로 드넓은 대정원, 궁전과 중국찻집, 지역 이름을 붙인 여러 정원들이 독특하면서도 단정하게 자리 잡고 있었고, 무엇보다 멋졌던 것은 넓은 공원에 그림처럼 흩뿌려져 있던 늦가을의 낙엽과 상큼한 공기가 아니었나 싶다.  

또 이 성을 방문했던 날은 전형적인 가을 하늘의 청명함이 맘껏 드러나는,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이었기에 더욱 자연 앞에서 미약해지는 나 자신을 느끼며 동시에 겸허한 마음이 될 수 있었다.  

이곳을 거닐면서 난 문득, 프리드리히 2세 역시 나와 같은 감상에 젖은 적이 있을까 궁금해졌다.

‘쌍수시’가 의미하는 대로 아무런 ‘걱정 없이’ 이 공원을 맘껏 거닐다 보니 또 문득 이런 의문이 뇌리를 스쳤다. 과연 대 프로이센 제국의 왕이나 왕비쯤 되면 아무런 걱정이 없었을까, 아니면 일반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걱정으로 이렇게 따로 마련된 궁에서 머리를 식혀야만 했을까란 거였는데 역시 지위가 높이 올라가면 갈수록 챙겨야 할 것도 많고, 봐야 할 것도 많으니 당연히 골치가 더 아팠을 거라고, 그렇지 않은 나는 오히려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란 내 나름대로의 결론 이 내려졌다.  

물론 이런 내 결론이 내 멋대로 식 해석이라고 누가 비난한다 해도 반박할 순 없겠지만 말이다. 



이 밖에도 독일의 영광스러웠던 과거의 흔적을 엿볼 수 있던 곳은 여러 곳이었지만 이야기가 너무 길어질 듯하여 이쯤에서 멈춰야겠다. 

대신 지금의 독일, 통독 후 18년이 지난 베를린의 현재 모습에서 느껴지는 독일이라는 나라는 여전히 세계적으로 인정되는 그들의 견고함이 두드러져 보였다는 것이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왠지 독일의 제품들은 무조건 믿을 수 있다는 높은 신뢰성이 느껴지면서 뭐든 좋아 보였다고 말하다면 충분할까?  아님 지나친 표현일까?  

그들과 함께 일을 하면서 다소 까다로워 보이는 그들의 완벽주의적 사고방식이 결국은 서로에게 이익이란 걸 깨닫게 되었다는 남편의 말에서도 그들의 합리성, 실용성을 발견할 수 있었지만, 나는 하다못해 내가 먹어보았던 음식에서부터 사용해 본 생활용품들까지 내가 경험한 독일의 모든 것에 다 대만족이었다.  

무엇이든 기본에 충실한 그들의 태도와 성실성이 오늘의 강인하고도 견실한 독일 이미지를 만든 게 분명하다는 것을 재삼 느꼈고, 또 확인한 셈이었다.



그리고 이번 베를린 방문에서 또 하나 느낀 점은 베를린의 건축 조형미가 빼여 나다는 것이었는데 뭐 하나 똑같아 보이는 건물을 발견하기가 어려웠던 게 사실이었고, 인간의 아이디어란 참으로 무궁무진이란 걸 새삼 깨달았다.  실용적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심오한 심미안과 철학이 엿보이는 건축미학에 탄성과 경의를 보내게 되었다.  

후에 마인츠에 있는 친구와 통화를 하면서 나의 이런 감상을 이야기했더니 그러지 않아도 베를린이 건축학으로 유명한 도시라서 많은 이들이 이곳에 건축과 설계를 공부하러 유학 온다는 얘길 들려줬다.  아~ 역시 그랬구나~ 하면서 다시 한번 눈여겨 그들의 건축물들을 관찰하게 되었고, 이후 더욱 부러움과 애정 어린 눈길을 보내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나의 짧고 아쉬웠던 8일간의 베를린 여행이 끝마쳐졌다.  그러나 훗날을 기약하며 기대와 설렘 속에 다른 곳에서, 또 다른 느낌으로 미지의 세계를 다시 만날 것을 고대하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왜냐면 이번 방문에서는 열차노조파업으로 인해 마인츠에 있는 친구를 만나보지 못해 많이 섭섭했는데 남편의 일로 마인츠와 가까운 프랭크프루트를 내년 초쯤 재방문할 기회가 있을 듯해서 말이다.  

더불어 그동안 그리웠던 아이들과 동생네 가족을 빨리 만나 흥미로왔던 여행 이야기를 비롯 이곳에서의 생활을 들려줘야지~ 결심하면서, 잠시의 외유를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마음의 준비를 다지면서 베를린에서의 그간 즐거웠던 추억들을 뒤로 한채 마침내 비행기와 함께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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