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과업 1-2 박흥식과 친해지기

by 꿈꾸는 노마드

기남은 어떻게 다음 말을 이어야 할지 잠시 곤란함을 느꼈지만, 곧 이렇게 둘러댔다.


“그분이 여기 출신이라 하시더라고요. 박흥식씨랑 함께 운동을 했었다고...”

“그래? 그렇지 않아도 지금 운동하러 가는 중이었는데... 그런데 그쪽은 학생인 듯싶은데.”

“네. 전 키만 컸지 사실 중학생이에요. 2학년이고요.”

“중학생이 운동을 좋아한다? 공부하느라 바쁘지 않나?”

“공부도 물론 열심히 하죠, 흐. 근데 취미가 운동이라서요.”

“으음... 그럼 일단 위로 올라가서 보자고.”


말을 마친 박흥식은 마치 표범처럼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 나갔다.

기남은 그를 따라 거의 뛰다시피 그를 쫓았다.

동시에 기남은 평소 운동해 둔 게 얼마나 다행인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둘은 잠시 후 산 정상에 올랐다.

박흥식은 아무렇지 않은 듯 보였지만, 기남은 달랐다.

땀이 비 오듯 쏟아져 손으로 닦고 또 닦아도 계속 흘러내렸다.

가뜩이나 여름이라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날씨는 벌써 더워지고 있었다.

그런 기남을 보던 박흥식이 입을 열었다.


“음. 여기까지 이 정도 속도로 쫓아오는 걸 보니 평소 운동을 한 건 맞는 거 같군!”

“헉헉. 네. 제 또래에선 헉헉. 제법 운동하는 편이죠, 형님!”

“형님? 듣기 좋네! 여동생만 있어서 형님 소리 거의 못 들어봤는데.”

“그럼, 이제부터 제가 형님으로 모실게요.”

“그럴래? 그럼 그러지 뭐! 근데 말이야.”

“네. 말씀하세요.”

“여기에 온 진짜 이유가 뭐야?”


그는 끝까지 조심스러운 성격을 드러내고 있었다.


“운동하러 왔다니까요. 여긴 공기도 좋고. 또 형님 얼굴 꼭 보고 싶었어요.”

“왜?”

“그분 말씀이 형님은 운동도 잘하지만, 이소룡처럼 무예에도 능하고 또...”

“또?”

“힘든 여건에서도 공부도 열심히 해 검정고시도 패스하셨다고. 암튼 아까운 인재라고 하셨거든요.”

“...”

“바로 제가 존경하는 그런 분, 그러니까... 어려움 속에서도 자기 뜻을 펼치는 그런 분이거든요.”


그는 그제야 조금 안심하는 듯 보였지만 여전히 긴장의 끈을 완전히 놓진 않은 듯 보였다.


“그래? 듣기는 좋네!”

“사실 저도 사연이 많은 놈이에요. 듣고 싶으시면 천천히 제 얘기도 들려드릴게요.”

“그러지 뭐. 자, 그럼 우리 운동 좀 더 해 볼까?”


그는 심신을 단련하는 듯한 무예를 하기 시작했다.

날쌘 동작과 함께 작지만 다부진 그의 몸매에 최적화된 무술 같아 보였다.

기남은 그 옆에서 그를 흉내 내며 따라 해 봤다.

하지만 보기보단 동작 자체가 너무 힘들었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고 땀을 비 오듯 흘리며 따라 하는 그를 보던 박흥식이 무예를 멈추고 바위 턱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이제 좀 쉬자! 제법인데?”

“가능성이 보이나요? 제대로 가르쳐주세요.”

“응. 가능성이 농후해! 제대로 배우면 잘하겠는데? 나를 능가할 만큼?”

“아이. 그건 과찬이시고요. 형님의 절반만 따라가도 좋겠네요. 흐.”

“자. 저기 가서 물 좀 마시고 와서 계속하자고.”


말을 마친 그가 앞장서 계곡 쪽으로 갔다.

기남은 그를 따르다 그의 다부진 등을 보곤 표범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의 별명이 ‘유영산 타잔’이었다는 걸 기억해 냈다.

둘은 물을 실컷 마시고 다시 근처 바위 턱에 걸터앉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전 형님이 부러워요! 아버진 안 계시지만 그래도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사시잖아요. 전 엄마 얼굴도 몰라요. 아버진 절 내쫓았고요.”

“그럼 지금 누구랑 사는데?”

“아버지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란 단서를 달고 절 다른 사람에게 맡겼어요.

아이와 남편을 교통사고로 한날한시에 잃으신 분인데 제겐 엄마 같은 분이죠.

얼마 전부턴 아예 엄마라고 불러요.”

“그래도 좋은 분 만나 다행이네.”

“그렇죠. 물론 저보다 불행한 사람도 많겠지만 전”

“너무 그렇게 극존칭까지 쓸 필요 없어. 친형처럼 편하게 말 놔도 돼.”

“정말 그래도 돼요? 친형처럼 말 놔도 돼요?”

“응.”

“그럼 이제부터 편하게 말할게요. 정말 그래도 되는 거지, 형?”

“그러라니까.”

“알았어. 고마워 형! 형이란 소리도 생전 첨 해 본다!

나한테 이복 남동생이 하나 있긴 했는데...”

“힘든 얘기 있으면 나한테 다 해도 돼. 오늘 일요일이니까. 흐흐.”

“고마워 형! 좋아! 천천히 내 얘기 다 꺼내 놓을게.”


기남은 자신의 이야길 먼저 다 꺼내 풀어놓았다.

그렇게 하므로 박흥식이 마음을 열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기남의 기대대로 박흥식은 그의 이야길 다 듣고 한참 생각에 잠긴 후 입을 열었다.


“너도 나만큼 인생이 쉽지 않았구나. 그럴수록 우리 같은 사람은 더욱 열심히 공부해 우리 존재를 보여줘야 해. 개천에서도 용이 난다는 걸 말이야.”

“맞아요! 그래서 저도 용쓰고 있죠! 아참 내가 왜 또 존댓말을! 흐.”

“그래. 니 생각이 참 반듯한 거 같아 믿음이 간다! 우리 잘해 보자!”

“주말마다 여기 와서 형이랑 꼭 같이 운동하고 싶어. 그래도 되지?”

“나야 그럼 좋긴 한데. 같이 운동도 하고, 시간 되면 같이 공부도 하고. 근데 서울에서 너무 멀지 않나 매주 오긴?”

“형한테 배울 게 많을 텐데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흐. 해 보고 정 힘들면 2주에 한 번 오던지!”

“내가 이래 봬도 지금 사법시험 준비 중이거든. 시간이 많진 않지만 내 옆에서 공부하다 모르는 거 물어보면 가르쳐줄 순 있지.”

“와! 우린 정말 딱이네!”

“딱이네가 무슨 뜻이지? 그런 표현이 있었던가?”

“아, 흐. 그냥 내가 만든 거야! 딱풀처럼 완전 잘 붙듯, 잘 맞는다는 뜻.”


순간 기남은 이제부터 말을 좀 더 조심해서 사용해야겠단 생각을 했다.

이 시대엔 사용하지 않던 그런 표현을 유의해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그리고 가끔 현재 나이를 잊고 사용하는 어른스러운 말투도 조심해야겠다고 맘먹었다.


***


기남은 일단 그와 얼굴을 트고 마음을 튼 것에 의미를 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기 전 할머니 가게에 들러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할머니는 자기가 만든 거라고 기남에게 말린 고구마를 건넸다.

기남은 그걸 받아 버스 안에서 먹으면서 기분이 아주 좋았다.

집으로 돌아와 싱글벙글 기분 좋아 보이는 기남을 보고 인희가 밝게 웃으며 물었다.


“친구 집에서 하루 자고 오더니 기분 좋은 일 있었니?”


기남은 인희에게 상세히 말하지 않고 그저 친구 집에서 자고 오겠다며 집을 나섰었다.


“네. 아주 아주 좋은 일이 있었어요.”

“그래? 그런 얘긴 엄마인 나한테도 좀 들려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근데 그게 조금.... 음. 뭐랄까? 제가 오늘 아주 훌륭한 일을 막 시작했다고나 할까요?”

“그래? 훌륭한 일? 어떤 일인데?”

“그게 그러니까... 사람 목숨을 구하는 일인데요.”

“니가 사람 목숨을 구한다고? 아님 구했다고?”

“그게... 아마도 그렇게 될 거예요. 흐흐.”


인희가 정색하며 말을 이었다.


“너 이상해진 거 알아? 얼마 전부터?”

“흐흐. 엄마 저 믿으시죠? 그러니까”

“그렇긴 한데... 그래도 엉뚱한 소리도 하고 행동도 달라지고 하니까 걱정이”

“걱정하지 마세요! 저, 제가 하려는 일 잘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저 달라진 거 없어요. 흐.”

“우리 아들 너무 똑똑해서 탈일 지경인 건 잘 알지만 그래도 너무 머릴 써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아니에요. 저 지극히 정상이에요! 흐흐.”

“정말 그런 거지? 알았어. 저녁이나 먹자.”

“네! 제가 상 볼까요?”

“아니 됐어! 씻고 와!”

“네.”


기남은 밥을 먹으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드디어 자기의 첫 과업이 물꼬를 텄고, 성공을 향해 첫발을 내딛으려 하고 있었다.

자기랑 처지가 비슷한 불쌍한 한 인생을 자기 손으로 구해내고 생명까지 되살려낸다는 것처럼 짜릿한 경험은 없을 거였다.

그러다 기남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세월을 거슬러도 난 나구나! 성정은 어쩔 수 없어!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 내가 해야 할 일에만 몰두하고 있으니.’


그러면서도 기남은 그날 밤 다시금 결심했다.

당분간 아이들 생각은 접어두고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매진하기로.


그날 이후 기남은 주말마다 그를 찾아가서 그와 함께했다.

박흥식은 머리가 좋아 중학교에 수석 입학하고도 돈이 없어 진학하지 못했다는 걸 신문에서 읽었던 걸 기억해 낸 기남은 그게 과장이 아니라는 걸 그와 함께 하면서 알 수 있었다.

그는 공부할 때 특히 집중력이 뛰어났다.


“형은 정말 놀라워! 어떻게 한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4시간 넘게 앉아 있을 수 있는 거지?”

“흐흐. 벌써 시간이 그렇게나 지났나?”


말은 이렇게 했지만, 기남은 마치 자기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단 착각이 들 만큼 두 사람은 비슷했다.

공부할 때뿐만 아니라 운동할 때 역시 그는 뛰어난 자제력을 보여줬다.

기남은 그로부터 많은 걸 배웠고, 그와 함께 하는 시간을 즐겼다.

그렇게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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