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과업 1-3 설득

by 꿈꾸는 노마드

어느 날 기남이 운동을 마친 후 박흥식에게 제안했다.


“형, 운동하고 나니 배가 많이 고프네. 우리 국밥 먹으러 갈까? 아래 할머니 국밥집?”

“응? 국밥? 으음...”

“형! 내가 형한테 그동안 배운 게 너무 많은데, 오늘은 내가 한턱낼게. 가자!”

“그럴 순 없지. 형인 내가 먼저 사야지.”
“아니야! 형은 내 무술 스승인데 스승한테 제자가 당연히 사례해야지. 내가 살게.”

“아니 그래도”

“형 정말 이럴 거야? 내 마음 안 받아줄 거냐고?”

“그런 게 아니라”

“아이 그러지 말고 스승님! 앞으로 나서시지요!”


영화에서 본 것처럼 손짓까지 해가며 너스레를 떠는 기남을 쳐다보다 박흥식은 못 이기겠단 표정을 지으며 마지못해 앞장섰다.

그렇게 둘은 할머니 국밥집으로 향했다.


“아야. 이게 누구여? 흥식이랑 서울 애기 아니여?”

“할머니! 저 애기 아닌데요!”

“흐흐. 여선 그냥 그렇게 부르재.”

“아, 네... 할머니! 저희 국밥 두 개 말아, 아니 주세요.”
“그려. 잠시만 기둘려.”


자리에 앉은 박흥식과 기남은 잠시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형인 박흥식이 얻어먹는다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단 걸 둘 다 잘 알고 있어서였다.

그런 어색함을 깨기 위해 기남이 서둘러 입을 열었다.


“형! 형 동생 얘기 좀 해봐. 몇 살이라고 했지?”
“응. 나랑 겨우 두 살 차이야. 20살.”
“뭐 하는데?”

“그게... 사실 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 마치고 내가 열쇠 수리공으로 일할 때 걘 식모살이 시작했어. 여기 온 후론 그만두고 식당에서 일하고 있지. 우린 태어날 때부터 찢어지게 가난했거든. ”
“...”

“아버지, 아니 할아버지 때부터 대대로 가난했고, 가난 때문에 형은 치료도 못 받아보고 어려서 죽었고, 그러다 아버지까지 그렇게 되고 나선 내가 가장 노릇을 해야 했지.”

“...”

“그래서 사실 중학교에 붙었는데 돈이 없어 학교 포기하고 그때부터 일 시작한 거야.”

“그랬구나. 형에 비하면 난 그래도 아주 호강한 셈이네.”


기남은 흥식의 말에 고개까지 끄덕이며 공감했다.


“내가 경제적으로 고생스러웠다면 대신 넌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잖아. 호강은 아니지.”

“그래도 밥 먹는 게 먼저지. 밥을 3일만 못 먹으면 지성이고 뭐고 다 소용없어진다는 거 나도 잘 알아.”

“어? 경험도 없는 네가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어? 그게... 그럴 거라는 거지, 아니 책에서 본 거 같아.”

“흐. 녀석! 가끔 날 헷갈리게 한다니까. 어떨 때 말하는 거 보면 가끔 내 형 같기도 하고. 암튼 신기한 녀석이야, 너란 녀석!”

“흐. 내가 좀 그렇긴 해, 그치? 어려서부터 생각이 워낙 많아서 그런가 봐. 흐흐.”

말은 그렇게 했지만, 기남은 순간 뜨끔했다.

노력해도 가끔 터져 나오는 36살이라는 자신의 실체 때문에 자신조차 깜짝 놀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니 그리 보일 수 있을 듯싶었다.

말이 나온 김에 기남은 넌지시 박흥식에게 자기 속내를 건네보기로 했다.


“형! 지금 사는 곳 말이야. 무허가니까 언젠가는 철거되지 않을까?”

“글쎄... 지금까지 살았는데 설마 하루아침에 내쫓진 않겠지.”

“그야 그렇지만, 혹시 그런 일 생기면 졸지에 타격이 클 텐데”

“녀석! 또 어른스럽게 말한다! 키는 커도 아직 넌 꼬맹인데 너무 생각이 깊은 거 아니냐? 형 같은 소리 또 하려는 거야?”


뜨끔해진 기남이 선수를 쳤다.


“어? 어떻게 알았어? 아무리 생각해 봐도 형네 집 위험스러워 보여서 말이야.”
“나도 불안하긴 한데, 그래도 어쩔 수 없어. 돈 좀 더 모아야지 단칸방이라도 얻을 수 있을 거 같거든.”
“이러는 건 어떨까?”


그때 국밥이 나왔고, 둘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할머니가 말했다.


“둘이 그러고 앉았응께 형제 같구먼.”

“네. 그래서 우리 둘 의형제 맺을 거예요, 할머니!”


배고팠던 기남이 국밥을 떠먹으려다 이렇게 대답하자 처음 듣는 소리라는 듯 박흥식이 기남을 쳐다보다 먼저 국밥 먹기에 몰두했다.


“그려! 서로 외로운 사람끼리 좋은 일이재!”


할머니가 부엌으로 돌아가고 기남이 국밥을 몇 술 뜨곤 하던 말을 이었다.

“형! 여기 있지 말고 차라리 서울로 가면 어떨까? 요즘 한창 개발되고 있는 곳이 있는데 서울 도심 분산정책으로 그곳에 학교랑 공공건물이 이주 중이거든.”

“거기가 어딘데?”

“영동이라고 여전히 농사도 짓고, 아직은 시골 같은 분위기지만 급변하고 있는 곳이야.”


기남이 말하고 있는 건 당시 중학생이었던 그가 알고 있는 정보가 아니라 당연히 성인이 되고 나서 알게 된 정보였다.

다시 말해 시간이 흐른 후 허허벌판이 금싸라기땅으로 변모한 강남지역을 말함이었다.


“거기도 여기처럼 무허가 주택들이 꽤 돼. 그런데 차이점이라면 거긴 서울 시내랑 그리 멀지 않고 새로운 학교랑 건물도 많이 지어지고 있으니까 할 일도 많다는 거지.”

“난 일이 아니라 공부를 해 사법고시 보려고 하는데”


기남이 끼어들며 말을 이었다.


“형은 공부하고, 형 동생은 거기서 일거리 찾을 수 있다니까. 형 어머니도 일하실 수 있고,”

“글쎄. 새로운 곳에 가서 또 적응하려면”


마음이 급해진 기남이 침을 꿀꺽 삼키곤 박흥식에게 말했다.


“형! 내가 아는 사람이 있는데 여긴 곧 철거 들어간대. 여기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돼서.”


박흥식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외쳤다.


“그래? 난 그런 소문 못 들었는데.”

“나랑 사는 분, 아니! 엄마랑 친한 분인데 남편이 도시개발 쪽 일을 해서”

“이상하네? 서울 도시개발 쪽 일하는 분이 여기 일을 어떻게 아시지?”

“다 통하나 봐! 암튼 철거 들어가면 아무 보상 없이 기간 내 나가라고”

“아이, 그럴 리가! 이미 살고 있는 사람들을 그냥 막 내쫓고 그러진 않을 거야.”

“아, 형! 그게 아니라니까!”


기남은 답답했다.

뉴스에서 본 바에 의하면 박흥식은 자기 움막집을 철거하러 온 소속 건설 반장과 철거반원들과 옥신각신하다 결국 그들을 쇠망치로 살해하고 부상을 입히고 만다.

처음부터 살해할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니라 그들이 먼저 그의 집에 불을 지르며 무자비하게 굴었고, 욕설과 폭언으로 그와 가족을 무시하자 사제 총을 꺼내 그들을 위협했던 게 시작이었다.

거기까지 기억을 떠올리던 기남은 이참에 그를 좀 더 적극적으로 설득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해서 아까보다 강한 어조로 박흥식에게 내뱉었다.


“형! 그렇게 한가한 소리 할 때가 아니라니까! 그 사람들은 위에서 시킨 대로 하는 거라 사정 안 봐줘! 철거하다 불행한 일 벌어졌던 거 너무 많이 들었어, 난!”

“그래? 어떤 불행한 일? 예를 들면?”

“그러니까 그게... 철거반원들은 무식하게 집에 불도 지르고 주민들 협박하면서 인정사정 보지 않는대. 그러다 사람들 많이 다치고 죽고”
“설마? 사람 사는 세상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져?”

“아 이 형이 정말 한참 뭘 모르네. 형은 산에 묻혀 공부만 해서 모르나 본데 험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

“난 그래도 사람 사는 데엔 기본 질서와 체계가 있다고 믿고 있어.”

“그래, 좋지! 질서도 좋고, 체계도 좋고! 그런데 말이야. 그런 게 안 통할 때도 있는 거야.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해 인생을 망치는 경우도 너무 많고!”

“뭔 소리야?”

“아이, 그런 일도 생길 수 있단 얘기야! 철거반원들과 싸우다 혹시라도”


여기서 말을 멈춘 기남은 침착해야 한다고 스스로 달랬다.

점점 흥분하는 자신을 발견한 그는 자제력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긴 한숨을 내쉰 다음 기남이 다시 말을 이었다.


“형! 내 말 한 번만 믿어주면 안 될까? 그냥 내 말 믿고 내가 하라는 대로 한 번만 해 주면 안 될까? 난 형이랑 정말 오랫동안 함께 좋은 일 많이 하고 싶어.”

“나도 그러고 싶지. 너랑 함께 뜻 맞춰 좋은 일 하고 싶단 생각이 점점 들고 있거든.”

“그러니까 형! 제발 내 말 믿고 여길 떠나! 내가 말한 그곳으로 가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라구!”

“그래. 니가 하는 말이 아주 극적이긴 한데, 그게 또 이상하게 신뢰가 가기도 하네.

세상살이 내 맘대로 안 된다는 거 잘 알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혹시 알아?

저 위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우리 가족 살리려고 천사라도 보내 주셨을지? 크.

너란 천사 말이야!”


순간 기남의 눈이 놀란 토끼 마냥 커졌다.


‘이게 무슨 조화지? 왜 그가 이런 말을 하는 거지?

나의 존재를 알아챈 건가?’


그가 하는 말은 물론 농담일 것이다.

그런데도 갑자기 기남은 흠칫했다.

그런 기남을 보던 박흥식이 갑자기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너, 갑자기 왜 그래? 천사에서 졸지에 뱀 앞에 개구리로 전락한 듯한 표정인데?”

기남은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어쩌면...

이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은 나 혼자만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나 혼자만 회귀라는 특권을 누리는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막연한 감 같은 게 왔다.

그러다 곧 그는 그 감을 부정했다.


‘그럴 리가 없다. 만약 그렇다면 그가 이런 모습으로 날 만날 이유가 없지 않을까?’


그때 박흥식이 다시 또 말을 이었다.


“그래 동생! 나 맘 정했어! 동생 말대로 해 볼게. 어차피 여기 이제 곧 철거 들어간다고 하니까 니 말대로 거기로 갈게. 거기서 인생 새롭게 다시 시작해 보지 뭐!”


그의 확답에 기남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의 첫 과업이 바야흐로 완성되려 하고 있었다.

기남은 박흥식의 두 손을 꼭 잡으며 외쳤다.


“잘 생각했어, 형!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야! 나도 도울게. 형네 가족이 자립할 수 있도록 힘껏 도울게!”

기남의 두 눈이 반짝였다.

화, 목,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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