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남은 엄마 안부가 궁금해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인희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한 기남은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 있는 걸 보게 됐다.
그는 인파를 헤치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눈앞에 맞아 쓰러져 있는 인희가 보였다.
동수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녀에게 달려간 기남은 그녀를 끌어안았다.
정신을 잃고 기남의 품에 축 처져있는 인희를 바라보면서 기남은 결심했다.
‘동수 이 새끼를 내 손으로 처단하고 말겠어! 반드시!’
기남은 이웃 여자에게 인희를 부탁하고 곧장 동수의 정육점으로 향했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장 씨가 기남을 반갑게 맞았다.
“아휴 오랜만이다, 기남아! 이제 완전 어른이 다”
장 씨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다급하게 기남이 물었다.
“아저씨! 그 사람 어디 있어요?”
“응? 변사장?”
“네.”
“아직 안 나왔는데. 그렇지 않아도 오늘 왜 이렇게 늦나 하고 있어.”
“네. 알겠습니다. 다음에 뵙죠!”
빠르게 말을 마친 기남은 밖으로 나와 동네를 둘러보면서 동수를 찾아다녔다.
아무리 돌아다녀도 그가 보이지 않자, 기남은 다시 인희 집으로 향했다.
그녀의 옷가지 몇 개를 챙긴 후 어느 정도 정신 차린 인희를 부축해 기남은 그녀와 함께 그곳을 떴다.
인희와 함께 하숙집으로 돌아온 기남은 그녀가 편히 쉴 수 있도록 자리를 폈다.
그런 기남을 바라보던 인희가 상처로 부풀어 오른 얼굴을 애써 가리며 입을 열었다.
“기남아! 이런 꼴 보여서 정말 미안하다.”
“아뇨. 이건 엄마 잘못이 절대 아니에요. 이제부턴 제가 엄마 편하게 모실 테니까 염려 마세요.”
“그렇다고 이렇게 무턱대고 나오면”
“시간을 두고 생각하기로 해요, 우리! 일단 엄마 안전한 곳으로 모셔 온 거니까 그만 쉬시고요.”
“그래도”
“엄마! 세상에서 내게 제일 중요한 분은 바로 엄마예요! 제가 그동안 돈 모아놓은 걸로 집 알아볼게요.”
“돈이야 나도 있지만”
“제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엄만 걱정 마세요!”
인희의 퉁퉁 부은 눈이 희망으로 순간 빛났다.
그런 인희를 바라보는 기남의 마음은 찢어질 거 같았지만 애써 그녀를 향해 웃음을 지어 보였다.
다음 날 기남은 잠들어 있는 인희가 먹을 죽을 남겨 놓고 일찍 집을 나서 다시 인희 집으로 향했다.
그러다 중간에 생각을 바꿔 동수의 정육점 근처로 갔다.
인적이 드문 시간이라 그런지 사위가 고요했다.
기남은 끈기를 가지고 동수가 출근하길 기다렸다.
추위에 손을 호호 불며 기다리던 그의 눈에 동수가 보였다.
기남은 그 앞으로 가 모습을 드러냈다.
기남을 본 동수의 눈에 순간 두려움이 스쳤다.
“엄마 이제부터 내 집에 계실 거야. 그전에”
“이놈 봐라! 니 엄마랑 살았음 그래도 내가 니 아비뻘인데 말하는 본새 하곤!”
“당신이 뭔가 착각하나 본데”
“이제 대놓고 재미 보시겠다! 두 년 놈이!”
“그런 개잡소린 집어치우고”
“그래! 난 무식해서 그렇다고 치자! 넌 유식해서 엄마뻘 여자와 아악!”
갑자기 동수가 소릴 내지르며 기남 앞으로 고꾸라졌다.
기남이 자신의 능력을 써버린 것이다.
손대지 않고도 자기 뜻대로 상대에게 고통을 부여하는 능력을.
고통스러워하는 그의 등에 대고 기남이 차갑게 내뱉었다.
“오늘은 이 정도만 하고 갈 테니까 앞으론 우리 엄마 찾지 마! 알았어?”
“으윽! 헉!”
그는 고통을 참기 어렵다는 듯 쓰러져 구르고 있었다.
기남은 그를 본척만척하곤 유유히 자리를 떴다.
***
인희와 기남은 자그마한 집으로 이사를 했다.
이제 인희는 기남을 의지하며 살기로 맘먹었고 다신 동수를 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다 인희가 동수와 마지막으로 만나기로 한 날이 다가왔다.
그녀는 이혼을 결심해 동수와 재산 분할에 관한 문제를 의논하기로 했다.
그날 기남은 시험이 있어 일찍 집을 나섰다.
그리고 인희는 외출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벨이 울렸고, 인희는 밖으로 나가 문을 열었다.
“누구세요? 어! 여긴 어떻게...”
동수가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다 그대로 인희를 향해 흉기를 휘둘렸다.
“왜 이래.... 아!”
짧은 단말마 비명을 내지르며 인희가 쓰러졌다.
인희의 눈빛이 처참히 무너지며 허공을 향해 부유했다.
뭔가 입을 떼려는 그녀 곁으로 동수가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의 입 앞으로 자기 귀를 갖다 댔다.
잠시 후 동수는 그녀가 숨진 걸 확인하고 황급히 자릴 떴다.
인적이 드문 그곳엔 적막감만 감돌고 있었다.
시험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기남은 집 앞에 경찰차와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는 걸 발견했다.
순간 온몸의 피가 역류하는 듯한 느낌과 함께 기남의 머리털이 쭈뼛 섰다.
그는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거기서 형사 한 명을 만났다.
자기를 유동명 형사라고 소개한 그는 기남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몇 시에 집을 나갔는지, 엄마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는지 등등.
기남은 그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곤 안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곳엔 인희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엔 자기 방으로 갔다.
역시 거기서도 인희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던 기남은 형사를 향해 물었다.
“어찌 된 거죠?”
“윤인희 씨 사망하셨습니다.”
“네? 지금 뭐라고 하셨죠?”
“오전 10시 15분쯤 사망하셨다고. 목과 가슴, 복부에 큰 자상을 입어서. 관계가 어떻게 되죠?”
“...”
“주민등록 상엔 동거인으로 나와 있던데 맞나요?”
“제 어머니십니다.”
“근데 주민등록상으론”
“제 어머니시라고요. 제게 단 한 분뿐인 가족이었다고요!”
유 형사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기남은 다리에 힘이 빠져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런 기남을 유 형사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주시하고 있었다.
***
기남이 경찰서 취조실에 앉아 심문을 받고 있다.
그의 앞에 유 형사가 앉아 기남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러니까 지금 남기남 씨 말은 윤인희 씨 남편인 변동수 씨가 그랬다는 거죠?”
“네. 확실합니다.”
기남이 건조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윤인희 씨는 왜 남편인 변동수 씨 집에서 가출한 거죠?”
“가출이 아닙니다.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을 피해 아들 집으로 오신 거죠. 실은 제가 모시고 왔습니다. 제 집으로요.”
“아들 집이라! 우리가 확인한 바로는”
“네.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윤인희 씨와 동거인으로 살았던 거 확인해 보셨음 아셨겠죠.”
“으음... 계속해 봐요!”
“제 친어머니는 아니셨지만 그분은 제가 5학년일 때부터 절 걷어주신 분입니다. 그래서 제겐 어머니와 다름... 아니 어머니십니다.”
“으음...”
유 형사가 여전히 난감하단 표정을 이어갔다.
“전 어머니와 변동수와 동거인으로 살다 중학교 3학년 때 집을 나왔습니다. 그때도 변동수가 어머니를 괴롭혀 나라도 없어지면 어머닐 덜 괴롭히지 않을까 해서였죠.”
“변동수가 왜 어머니한테 그랬죠? 무슨 이유로?”
“그 인간은 폭력적인 데다 의처증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윤인희 씨와 학생 사이를 의심하기도 했나요?”
“그랬죠! 그때 전 겨우 중학생이었는데 말이죠.”
“으음... 혹시 더 할 말이 있나요?”
“아뇨. 없습니다.”
"우리가 좀 더 조사해 보고 필요하면 학생한테 다시 연락할 테니 어디 먼 곳으로 가진 말도록 해요.”
기남은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기려 했다.
하지만 맘같이 걸음을 떼기가 쉽지 않았다.
가슴이 먹먹하고 정신이 아득해 와 몸 하나 가누기가 힘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온 기남은 생각에 잠겼다.
경찰도 변동수를 찾을 테지만 자기가 먼저 그를 찾아내 응징해야 했다.
자기에게 유일한 가족이었던 그녀를 무참하게 살해한 살인범을 도저히 묵과할 수 없었다.
기남은 온몸을 부르르 떨며 손에 힘을 주었다.
***
기남은 일전에 그가 한 고향 이야기를 떠올렸다.
어린 시절 철없는 무용담부터 그때 어울렸던 친구가 한다는 당구장 이야기까지 자랑스럽게 떠벌리던 그의 말을 떠올리며 기남은 다시 한번 치를 떨었다.
기남은 곧장 그의 고향으로 향했다.
그의 고향은 워낙 시골에 좁은 동네라 그가 언급했던 곳곳의 흔적을 찾아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당구장을 발견한 기남은 안으로 들어갔다.
사장으로 보이는 대머리 남자를 향해 발을 옮기던 기남에게 한 여자가 달려들었다.
“어머! 어쩜! 이 오빠 신성X 뺨치게 미남이네! 이런 촌구석에선 절대 만날 수 없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돌린 대머리 남자가 기남을 주시했다.
기남은 여자의 말에 아무 대응 없이 그를 향해 걸어갔다.
“뭐 좀 물어보죠! 혹시 변동수라고”
“변동수? 잘 알지! 불X친군데 왜? 무슨 일?”
전혀 당황하거나 망설이는 기색 없이 준비된 듯 답하는 그를 보면서 기남은 알아챘다.
이미 이곳에 그 인간이 왔었고, 지금도 여기 있다는 것을.
그리고 누가 찾아오든 똑같은 답변을 준비해 놓았다는 것도.
기남은 단도직입적으로 그에게 물었다.
“지금 어디 있죠? 변동수?”
“보아하니 그렇게 이름을 부를 정도 연배론 안 보이는데. 무슨 일이냐니까?”
“볼일이 있거든요.”
“볼일? 나한테 구체적으로 아악!”
그가 갑자기 온 사지를 뒤틀며 땅바닥에 내리 꽂혔다.
그런 모습을 보던 다방 레지로 보이는 여자가 소릴 냅다 질러댔다.
“어머머! 사장님! 어머! 저 오빠, 얼굴만 잘난 게 아닌가 봐! 어머! 근데 어떻게 한 거야? 손가락 하나 대지 않고?”
그녀로선 이해가 안 가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눈 깜짝할 새 남자는 아무 짓도 안 했는데 갑자기 당구장 사장이 바닥으로 내리 꽂혀 버렸으니 말이다.
기남은 이번엔 당구채를 들고 사장 곁으로 다가갔다.
“나 화나기 전에 빨리 부는 게 좋을 거야. 그 새끼 어디 있어? 어디 있냐고?”
사장은 여전히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몸을 가누려다 다시 꼬꾸라지며 외쳤다.
“영광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