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회귀 8- 고심하는 빌런 5

by 꿈꾸는 노마드

진희는 기남이 집 안으로 들어오기 전 이미 먼저 들어온 정남이와 입을 맞췄다.

기남을 내쫓기 전날 이미 둘은 작당해 기남에게 죄를 덮어 씌었었지만, 십여 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그걸 고수하기로 했다.


“니가 허스 죽인 게 나라고 했다며? 그런 거짓말한다고 니 죄가 없어진다고 생각해 정말?”


정남이 생각 없이 이렇게 지껄였다.


“거짓말이라!”


지그시 정남을 바라보던 기남이 잠시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자 잠시 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정남이 아버지 남두철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아빠! 허스 죽인 거 사실 나야! 개한테 초콜릿 주면 죽을 수도 있다고 하길래 정말인가 보려고 그랬어. 아빠가 집에 오면 나보다 허스 더 예뻐하는 거 같아서 죽이고 싶기도 했고!”


정남은 쉬지 않고 털어놨다.


“근데 내가 기남이가 그랬다고 했지! 이런 게 바로 일석이조 아니겠어? 꼴 보기 싫은 허스랑 기남이 둘을 동시에 잡는! 크크크.”


기남을 제외한 세 사람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중에서도 말을 마친 정남은 똥 씹은 표정이 되어 씩씩댔다.


“왜 이래? 이게 뭐야? 내가 도대체 왜 이런 소릴 지껄”


보다 못한 남두철이 못을 박듯 잘라 말했다.


“됐다! 이제 그 얘긴 그만하도록 해!”


진희 또한 정남에게 당황한 얼굴로 입을 뗐다.


“정남아! 너 어디 아픈 건 아니지? 괜찮아?”


정남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기남은 모른 척하고 계속 먹기만 했다.

진희가 그런 기남을 째려보더니 역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정남 곁으로 갔다.


“정남아! 니 방으로 가자!”


둘이 식당을 나가고 남두철이 기남에게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허허! 참 살다, 살다 별일이 다 있구나! 자기 잘못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 녀석인데.”

“가끔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진실을 말하는 순간이 오기도 하거든요.”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기남을 보면서 남두철이 말을 이었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니 잘못 아닌 게 명명백백하게 밝혀져서 다행이다! 이제 정남 에미도 더는 할 말 없겠지!”

“네. 그러길 바래야죠!”



집으로 돌아온 기남이 인희를 향해 입을 열었다.


“오늘 성북동집에서 재미난 일이 있었어요.”

“재미난 일? 어떤 일이 있었는데?”
“그게 그러니까... 갑자기 제 이복동생 정남이가 고백했어요. 아주 오래전 자기 잘못을. 그 일로 제가 집에서 쫓겨나게 된 거거든요.”

“그래? 웬일로? 그러기 쉽지 않았을 텐데.”

“그죠. 쉽지 않죠. 흐흐.”

“왜 그랬대?”

“그 문제로 자기 엄마가 계속 절 물고 늘어지니까 세월도 흘렀겠다, 그만 끝내고 싶었나?”


기남이 이렇게 눙쳤고, 인희가 대뜸 물었다.


“걔 성격이 어떻다고 했지?”

“전형적인 마마보이죠! 근데 어쩜 걔 그렇게 된 건 걔 탓이 아닐 수도 있단 생각이 들기도 해요.”

“어째서?”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어떤 이의 영향력 아래 오래 놓이다 보면 판단력이 흐려질 거 같거든요. 한 마디로 똥인지 된장인지 구별하기 어려워진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자식은 과잉보호보단 차라리 방임이 나은 거 같아요. 가만 냅 두면 스스로 알아서 크기도 하는 법이니까.”


어른스럽게 말을 잇는 기남을 보며 인희가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난 니가 하는 말 알 듯 모를듯하네! 그저 자식은 품어야 하는 게 맞긴 하는데, 또 니 말대로 너무 품다 보면 역효과가 나기도 할 거 같고.”

“그러니까요. 농사 중 자식 농사가 가장 어렵다죠?”

“니가 그렇게 말하니 갑자기 걱정해야 할 자식 둔 사람 같다 얘! 호호호.”


기남은 사정을 모르는 인희 앞에서 태연한 척했지만 역시 아이들 생각을 하고 있었다.


‘민식이, 윤식이 잘 지내고 있나? 부디 아빠 다시 만날 때까지 아무 일 없이 건강히 잘 지내야 할 텐데!’


아이들 생각을 하고 보니 이번 생에서 해야 할 일이 또 떠올랐다.


‘우선 최소한 한 명의 생명을 더 구해야 하고, 아이들 만날 때 떳떳하기 위해 밑거름이 될만한 뭔가를 이뤄야 하는데, 그게 뭘까?

세상은 공평하지도, 공정하지도 않은 듯 보이고 법으로 할 수 있는 일 또한 많아 보이지 않으니 사법고시 봐 봤자고.

열심히 경제 관련 책 읽고 가끔 도강도 하면서 경제나 더 열심히 파보자!’


그때 기남에게 언뜻 떠오르는 게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은주랑 대판 싸운 그날도 그랬지.

대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하기 시작하면서 그 직격탄 맞은 중소기업 사장 최진현씨한테 빌려준 돈 회수하지 못해서였지. 그 돈으로 포장마차라도 하려고 했었는데 말이지.

아무튼 아이들과 잘 살려면 경제적 기반이 탄탄해야 해!

나 죽기 전 나라가 국가부도 사태로 난리가 난 것만 봐도 그렇고.

아버지 돈 욕심 내지 말고 그분이 번 돈은 좋은 일에 쓰시라 하고 난 내 경제력을 키워야지!

참, 도강 대신 차라리 전과를 해볼까?’


다음날 학교에 간 기남은 전과 과정이 꽤 복잡하단 걸 알게 됐다.

해서 그는 하던 대로 적은 법학과에 두고 경제학과 수업을 더 듣기로 맘먹었다.

열심히 공부를 마친 기남이 집에 도착하니 인희가 그에게 뭔가를 보여줬다.


“오늘 구청에서 사람이 나왔는데 이거 너한테 보여줘야 할 거 같아서.”


거기엔 곧 이 지역이 재개발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제 곧 여기가 재개발된다네요!”

“그래? 그럼, 지난번 니가 말한 대로 나도 이 근처에 투자 좀 했는데 거기도 재개발되나?”

“글쎄요. 가까우면 그렇겠죠.”

“재개발되면 우린 어디로 가는 거야?”

“여기에 만약 아파트가 들어서게 되면 우린 아파트 입주권을 받게 되죠. 환지 증명서라고 하는데 보통은 그냥 편하게 딱지라고 불러요.”

“그래? 그럼, 우리도 이제 아파트에 살게 되는 거야? 그런데 너하고 나하고 두 개가 되면”

“그럼, 하나는 처분하면 되죠.”

“처분? 되판다는 거야?”

“네. 그거 사려는 사람들 꽤 있거든요.”

“그래? 그럼, 이윤 남기는 거겠네! 잘 됐다!”


인희가 흥분한 듯 기뻐하는 표정을 짓자, 기남이 다정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그렇게 좋으세요? 제가 돈 많이 벌어 엄마 편하게 모실게요.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그래! 기다릴게. 대학 졸업하고 좋은 직장 구해서 착한 여자 만나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하는 거 다 볼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릴게.”


기남은 그런 인희 꿈을 꼭 이뤄져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날 밤 기남은 잠자리에 누워 또 이런저런 생각에 젖었다.


‘난 이곳에서 이제 겨우 20대 초반인데, 실제 두 번이나 회귀해서 흐른 시간을 계산해 보면 어느덧 40대 중반이겠군!

아닌가? 두 번이나 과거를 오가다 보니 시간이 어찌 흐르는 건지도 잘 모르겠군!

아무튼 우리 애들도 분명 컸겠지. 아주 많이!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과거로 돌아가는 시점을 선택할 수 있다는 거긴 한데...

애들 다 크기 전에 좋은 환경 만들어 애들 엄마랑 행복하게 보내야 할 텐데...’


그는 갖은 상념으로 잠을 설치다 겨우 눈을 붙일 수 있었다.


***


한편 기남은 박흥식이 말한 것과 지우에게서 들은 것을 토대로 생각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지우 아버지자 연주 계부인 박재국은 조폭 출신으로 배우였던 연주 엄마를 납치해 억지로 와이프를 삼았었다고 했지.

그리고 이제 겨우 6살이었던 연주는 엄마 따라 박재국 집으로 들어갔고.

그렇게 가족이 된 세 사람. 배우 생활도 어쩔 수 없이 그만두고 집에 갇혀 지냈다는 연주 엄마가 곧 지우를 낳았고.

연주 엄마는 자기 불행을 딸에게 언어폭력 하는 걸로 푼 거 같고.

그 와중에도 연주는 야무지게 공부해서 좋은 대학까지 들어갔는데, 그러다 맘 붙인 데가 데모하는 친구들.

자기 존재감을 찾고 싶어 그럴 수도 있고, 엄마에게 반항하는 심리도 있었을 거 같고.

그런데 박재국과 연주의 연결점은 뭘까?

그가 운동권 대부 행세를 하는 것과 연주가 운동권이 된 건 우연일까?

아니면 그가 연주를 조종한 건가?

얼마 전엔 또 싸워 결국 연주가 집을 나갔다고 했지.

도대체 그들 사이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그리고 데모하던 연주가 교회 생활에 빠지게 된 이유는 또 뭘까?‘


기남은 다시 한번 연주를 찾아가 그녀 입으로 하는 얘길 들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기남을 본 연주는 지난번보다 더 냉정한 반응을 보였다.

이전과 달라진 연주의 태도를 기남은 이해할 수 없었다.


“나 원래 이런 캐릭터 아닌데 정말 신경 쓰여서 안 되겠어! 너 때문이 아니라 지우 때문에.”

“...”

“그렇게 입 꼭 다물고 있지만 말고 말 좀 해 봐! 도대체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야?”

“참견하지 말라고. 내 인생이니까!”

“내 인생에 먼저 끼어든 건 너 아니었나?”

“그러니까 내가 이제, 그만 사라져 준다니까!”


순간 기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화, 목,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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