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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노마드 Oct 31. 2024

두 번째 회귀 23- 사탄의 무리 2

기남은 먼저 연주를 안전하게 집으로 데려올 결심을 굳혔다.

지난번 만났을 때 연주는 지우를 걱정해 거기서 그대로 지내기를 원했었다.

기남은 연주를 설득하기 위해 이번엔 지우를 데리고 은산으로 향했다.

지우는 기남과 함께 처음으로 여행 가는 줄로 알고 따라나섰다.

기분 좋아 보이는 지우를 향해 기남이 입을 열었다.     


“지우야! 누나 많이 보고 싶지?”

“어! 누나! 맞다! 연주 누나 보고 싶어요!”     


지우가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기남은 부드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우리 지금 여행 가는 건데, 연주 누나도 볼 거야.”

“정말요? 와! 좋아요!”

“그런데 누나 만나면 지우가 해줘야 할 일이 있어.”

“뭔데요?”

“연주 누나 좋아하잖아, 지우가. 그렇지?”

“네! 좋아요. 연주 누나!”
 “그러니까 연주 누나랑 같이 살면 정말 좋겠지?”
 “네! 연주 누나랑 같이 살고 싶어요!”

“그래! 그 얘길 연주 누나한테 하는 거야. 할 수 있지?”
 “지우는 연주 누나랑 살고 싶다! 이렇게 말하면 되죠?”

“응. 그렇지. 그렇게 말하면 연주 누나가 집으로 돌아올 거야.”
 “네! 그렇게 말할래요. 연주 누나 집에 와야 하니까!”     


기남은 한시름 놓았다.

지우에 취약한 연주가 지우를 보게 되면 마음이 바뀌길 기대하면서 기남은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은산에 도착한 기남과 지우는 수련원 입구에 서 있었다.

지난번과 다르게 이번엔 기남을 들여보내주지 않아 기남은 할 수 없이 지우만이라도 연주를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사정했다.

안에 연락을 취하더니 관계자 중 한 명이 말했다.     


“오늘은 그냥 돌아가시랍니다.”     


기남이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난 됐고 남동생만이라도 얼굴 잠깐 보자는데 왜 안 된다는 겁니까?”

“저희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겁니다.”     


더 말해봤자 소용없다는 걸 알기에 기남은 지우랑 그냥 돌아섰다.

분위기가 이상하자 지우가 울먹이며 입을 뗐다.     


“혀엉! 왜 연주 누나 못 봐요?”

“그게... 지금 누나가 여기 없나 봐.”

“연주 누나 어디 있는데요?”

“내가 찾아야지. 반드시 내가 찾아서 집으로 데려올게 지우야! 그러니 오늘은 그냥 가자.”     


기남은 다음날 혼자 은산을 다시 찾았다.

이번엔 정문이 아닌 다른 통로를 통해 수련원 안으로 잠입했다.

생각만큼 경비가 삼엄한 편은 아닌 듯 보였다.

기남은 예전에 연주를 만났던 동굴 같은 지하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때 정명식과 그를 호위하는 인물들이 차량을 향해 움직이는 게 보였다.

기남은 잠시 그들을 주시했다.

곧 그들 무리가 수련원을 벗어났다.

기남은 서둘러 지하 방으로 향했다.

방 앞에 선 기남은 방문 손잡이를 돌려봤다.

안에서 잠겨 있는 건지 문은 열리지 않았다.

기남은 목소리를 낮춰 연주를 불렀다.     


“연주야!”     


안에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문을 비틀어봤지만 계속 열리지 않자, 기남은 세게 힘을 줬다.

드디어 손잡이가 부러지며 문이 열렸다.     

기남 눈앞에 의자 하나가 쓰러져 있는 게 제일 먼저 보였다.

조금 더 눈을 들자 축 쳐진 몸이 흔들리는 게 보였다.     


***     


인희와 지우와 함께 기남은 집안으로 들어섰다.     


“이제 좀 쉬세요. 지우 너도.”     


여전히 깊은 슬픔에 잠긴 채 인희와 지우는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기남은 거실 소파에 앉았다.

연주의 장례식을 마친 지금 기남에게 남은 선택은 단 하나였다.

정명식을 응징하고 세 번째 다시 과거로 돌아가 연주를 구해야 한다는 그것.

마침 정명식은 교회 신도 중 한 명으로부터 사기와 성폭행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그 사건을 박흥식이 맡게 됐으니, 기남이 정명식을 직접 마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셈이다.

기남은 그 기회를 이용해 정명식을 처절하게 응징할 계획을 세웠다.     

며칠 후 기소된 정명식이 있는 취조실로 기남은 들어섰다.

그전에 박흥식은 기남에게 그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면서 당부했다.     


“나도 소장 읽어봤지만, 저거 완전 쓰레기긴 하더라.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법이 해결하게 놔둬. 저런 쓰레기 때문에 네 인생이 망가져선 안 되는 거잖아, 기남아!”

“걱정하지 마, 형.”     


기남은 차분하게 대답했다.

박흥식은 불안했지만 일단 기남에게 기회를 주기로 맘먹은 이상 더는 말을 아꼈다.

기남의 등을 토닥거리곤 곧 그는 자리를 떴다.

홀로 남은 기남은 길게 숨을 쉰 다음 취조실 문을 열었다.     


“너였어? 날 함정에 몰아넣은 게?”     


기남을 알아본 정명식이 분한 듯 외쳤다.     


“함정이라...”

“그년이 나한테 뭐라고 한 줄 알아? 내 나이에 그렇게나 센 사람 첨 봤다면서 좋아 죽더니 뭐? 성폭행?”

“누구 말하는 거지?”

“누구긴 누구야? 날 고소한 염병할 년이지! 노희영!”     


기남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니까 넌 지금 네가 한 짓이 한두 건이 아니라 왜 이 자리에 있는지도 모른다는 얘기군.”

“니가 노희영 그년 이용해 날 엿 먹이려고 한 게 아니야? 연준지 그년 일로 앙갚음하려고.”

“연주한테는 어떻게 한 건지 네 입으로 먼저 말해봐.”

“맞잖아. 연주 그년”     


말이 끊어지더니 갑자기 그가 말을 다르게 하기 시작했다.     


“얼굴 번지르르하고 몸매도 좋은데 처음에 관계할 때 쉽지 않았지. 어찌나 빼던지 말이야. 근데 또 그게 맛이긴 하거든. 허벌레 하는 년들보다 확실히”     


그때 계속 더러운 입을 놀리는 것에 인내심이 바닥난 기남이 자신의 능력을 써 그의 입을 막았다.

입은 놀리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자, 정명식은 놀란 눈으로 기남을 바라봤다.     


“잘 들어! 먼저 넌 그 입으로 헛되게 신을 불렀지. 그에 대한 죄로 이제부터 넌 말을 할 수 없게 됐어.”     


정명식의 두 눈이 두려움으로 믿을 수 없을 만큼 커졌다.

기남은 차갑게 말을 이었다.     


“네가 한 악행으로 한 여자가 목숨을 버렸지. 그에 대한 죄로 넌 살아도 산 게 아닌 삶을 이어가게 될 거야. 네가 즐기는 그 짓거리를 더는 할 수가 없고 넌 평생을 앉은뱅이로 살 게 될 거야. 내가 곧 네 척추를 두 동강 내버릴 거거든.”     


이번엔 정명식이 두려움으로 바지 가운데 부분을 적시며 오줌을 지렸다.

그는 무릎을 꿇고 두 손을 싹싹 빌며 기남에게 매달렸다.

여전히 소리는 내지 못한 채로.     


“소용없어! 넌 내게 소중한 사람을 망친 걸로도 모자라 고인이 된 사람을 또 욕보였어. 너란 인간은, 아니 인간 아닌 짐승은 반성이란 걸 절대 할 수 없지. 그러니 처절한 응징만이 답이야!”     


기남은 그에게 다가갔다.

그가 겁을 먹으며 뒤로 물러섰다.

그때 박흥식이 정명식 변호사를 대동하고 취조실로 들어섰다.

정명식은 한숨 놓는 표정을 지어 보였고, 말을 할 수 없으니 손짓으로 펜과 종이를 찾았다.     


<이놈이 날 이렇게 만들었어! 말이 안 나와!>     


박흥식과 변호사 둘 다 무슨 소린가 하는 표정으로 정명식을 쳐다봤다.     


<이놈이 날 이렇게 만들었다니까!>     


기남은 조용히 방을 나섰다.

뒤따라 나온 박흥식이 기남을 향해 말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난들 알 턱이 있나? 갑자기 말을 못 하더라고. 워낙 죄가 많아 하느님이 벌을 내리셨나?”

“야! 농담하지 말고.”

“농담 아닌데 나!”     


박흥식이 얼빠진 표정을 지어 보였다.     

며칠 뒤 정명식을 고소한 여자가 고소를 취하해 풀려난 정명식은 다시 은산으로 향했다.

어쩐 일인지 이번엔 비서도 없이 그가 직접 운전을 하고 있었다.

그가 탄 차가 톨게이트를 지나 고속도로에 접어들었고, 잠시 후 그가 탄 차를 향해 거대한 트레일러가 돌진했다.

굉음과 함께 순간 아수라장이 된 현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기남이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     


기남은 커피숍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곧 박흥식이 모습을 드러내며 기남 곁으로 다가왔다.     


“무슨 책이야?”

“신곡. 단테가 쓴.”

“오랜만에 본다. 단테의 신곡.”

“많은 걸 가르쳐주는 책이지.”

“그렇지. 고전 중 고전이니까. 그나저나 정명식 소식 들었니?”

“...”

“자기 아지트로 가는 중에 교통사고가 났대. 허리가 두 동강이 났다나 봐. 선글라스가 깨지면서 눈 안으로 유리가 들어가 눈도 멀었고. 참 그렇다! 못된 짓 많이 하던 인간이긴 하지만 그 지경이 되다니.”

“이 책에 보면 선과 악에 무관심한 자들, 하느님도 싫어하고 하느님의 적도 싫어하는 무리도 지옥에 간다던데 하느님의 이름을 팔아 온갖 패악질을 일삼은 이에게 적합한 형벌이 아닐까 싶은데, 나는.”

“그런데 생각해 볼수록 이상하긴 해. 박재국이나 정명식이나 어째 하나같이 다 요상하게 돼 버렸으니. 그 둘이 다 너랑 연관 돼 있는 것도 요상하고.”

“...”

“설마 네가 어떻게 한 건 아니지? 그게 말이 안 되긴 한데, 하도 요상해서 말이야.”

“이 책 형한테 주려고 산 거야. 난 이미 읽었고 형 시간 되면 한번 읽어 보라고.”

“응? 나한테 준다고? 무슨 의미지?”

“의미는! 많은 걸 가르쳐주는 책이니까 좋은 거 함께 보자는 거지.”     


박흥식은 여전히 의심스럽다는 표정을 풀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곧 화통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 이참에 네 덕분에 한 번 제대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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