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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노마드 Dec 01. 2024

세 번째 회귀 17- 연적이 된 두 남자

‘NKN’에 관한 악의적인 루머가 또 신문지상을 도배하기 시작했다.

발단은 이랬다.

‘올댓보이즈’ 멤버 중 리드 보컬인 임필이 조폭과 연관이 있다는 소문이 관계자들 사이에 소리 소문 없이 돌기 시작했다.

당연히 ‘NKN’에선 근거 없는 악의적인 소문이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소문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임필이 한밤중 몰래 조우한 사람은 000으로 밝혀지다!>

<임필 학창 시절 클래스 메이트가 밝힌 임필의 과거!>

<신이 내려 준 목소리의 원천은 XX?>     


신문가판대를 가득 채운 ‘올댓보이즈’에 관한 기사로 연예계가 뒤숭숭해졌다.

때마침 지우가 라디오 생방송에 출연하던 차 진행자가 지우에게 질문을 던졌다. 

    

“지금 같은 소속사 올댓보이즈에 관한 기사가 도배되고 있는 상황 아시죠?”     


올댓보이즈라는 말에 지우가 당황하는 표정이 되자 그의 매니저가 고개 젓는 포즈를 그에게 취해 보였다.

진행자가 다시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

“의견을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는데요.”

“... 전... 모릅니다.”

“뭘 모르신다는 얘기신지... 기사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신다는 건지 아니면”     


그때 갑자기 지우의 노래가 흐르기 시작했다.

다들 어리둥절해 있는데 담당 피디 옆에 정남이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마이크를 끈 채로 진행자가 물었다.     


“저 사람 누구야?”     


정남은 ‘올댓보이즈’에 관한 소문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게 있었다.

자칫하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지우 아빠, 즉 박재국에 관한 이야기가 새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가뜩이나 어리숙한 지우에게 알쏭달쏭한 질문이 던져지면 그가 위기에 빠질 게 불 보듯 뻔했다.

해서 뒤숭숭한 상황에서 지우 생방송이 있다는 걸 확인한 정남은 라디오방송국으로 날아왔고, 위급한 상황에 피디에게 음악을 틀도록 한 거였다.

그 대가는 다음 지우 신곡이 나올 때 가장 먼저 이 프로를 찾아와 신곡을 선보이겠다는 약속이었다.

다행히 그게 먹혀 피디와 딜이 성사됐다.     

회사로 돌아온 정남이 라디오 생방에서 있었던 일을 기남에게 보고했다.

정남의 재치로 위기를 넘긴 걸 알게 된 기남이 정남을 칭찬했다.     


“내 생각에 이제부터 네가 지우 매니저 역할을 하면 어떨까 싶은데.”

“내가 매니저를?”

“그래. 매니저 하면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보다 더 실무를 빨리 익힐 수 있지. 너 성향과도 더 맞는 거 같고!”

“그럼 그럴까, 형! 아니 대표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해서 정남은 사돈인 지우의 매니저가 됐다.

그즈음 지우는 자기 노래도 꾸준히 발표했지만, 다른 가수의 작곡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주로 서정적인 음률에 강점이 있기에 연습생 중 여자들이 특히 지우의 곡에 욕심을 보였다.     


“나 지우 오빠 곡 하나 받음 소원이 없겠다!”

“나도! 정말 가슴 녹이지 않니, 지우 오빠 거?”

“내 말이! 어떻게 하든 받아내고 말꼬야!”     


자기들끼리 이렇게 설왕설래하고 있었지만 사실 지우는 열심히 곡만 만들 뿐 누구에게 줘야겠단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우는 연습실에서 노래 연습에 몰두하고 있는 한 여자를 보게 됐다.

사실 그녀의 모습을 보기 전 그녀의 목소리가 지우를 노래 연습실로 이끌었다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노래를 부르는 열정적인 모습 외 자그마한 체구에서 뿜어 나오는 파워도 그렇고, 음색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지우는 태어나 처음으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     


어느 날 지우가 작곡한 노래를 들고 연습실을 찾았다.

노래 연습을 하던 채유라가 노래하던 걸 멈추고 지우를 바라봤다.     


“??”

“이거 한번 불러볼래요?”    

 

지우가 많이 부끄러워하며 입을 열었다.

지우의 손에 들려 있던 악보를 받아 든 채유라가 한참 악보를 바라보다 외쳤다.     


“이거 오빠가 작곡한 거예요? 역시 소문대로네요!”

“소문?”     


지우가 당황함을 드러냈다.     


“네! 소문에 의하면 오빠 곡은 사람의 가슴을 후벼 판다죠?”

“???”

“내가 부르면 너무 잘 부를 수 있을 거 같은데, 한번 들어보실래요?”     


곧 그녀가 노래하기 시작했다.

지우는 그 자리에서 고대로 얼어붙은 듯 꼼짝하지 않았다.

그의 온갖 감각이 다 살아났고, 지우는 마치 몸이 붕 뜨는 기분을 느꼈다.

우연히 그 광경을 보게 된 정남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대표실로 걸어 들어오는 정남의 표정을 보고 기남이 물었다.   

  

“무슨 일 있어? 얼굴이 왜 그래?”

“...”

“형! 아니, 대표님! 어쩌죠?”

“뭘 어째?”

“사랑이냐, 일이냐 이것이 문제로다! 인 상황이 됐습니다.”

“뭔 소리야? 좀 알아듣게 말해봐!”

“그게 말이죠.”     


그때 기남의 핸드폰이 울렸다.

기남이 화면을 보고 급하게 말했다.     


“이따 다시 말하자. 중요한 전화야!”     


정남이 힘없이 뚜벅뚜벅 대표실을 걸어 나갔다.

그런 정남의 뒷모습을 보며 기남은 통화하기 시작했다.

대표실을 나온 정남이 다시 연습실로 향했다.

다행히 지우는 없었다.

채유라 혼자 노래 연습에 열중하고 있었다.

연습실 문을 열고 정남이 안으로 들어갔다.     


“??”
 “연습 잘 되고 있어요?”     


채유라가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정남을 바라봤다.     


“아까 보니까 지우 씨가 악보를 건네던데...”     


이제야 알겠다는 듯 명랑한 어조로 채유라가 입을 뗐다.     


“보셨어요? 제 노래도 들어보셨어요?”

“아, 뭐... 노래는 못 들어봤는데... 한번 불러볼래요?”

“네. 한번 들어보시고 의견 말씀해 주세요.”     


채유라가 노래 부르기 시작했다.

아깐 정신이 없어 노래엔 신경 쓰지 못했는데, 막상 노래를 들어보니 기가 막히게 좋았다.

딱 채유라 보이스와 분위기를 위해 만든 노래 같았다.     


“와! 정말 좋네요!”

“정말요? 지우 오빠가 제 노랠 들어보시더니 저한테 주시겠다고...”

“잘됐네요! 축하해요. 우리 지우 씨가 아무한테나 곡 주지 않는데 유라 씨 운 좋네요!”

“그죠? 저도 지우 오빠 소문 들었어요. 여러 가수가 그렇게 매달려도 꼼짝도 안 했다고.”

“노래 주면서 뭐래요? 지우 씨가?”     


정남이 슬쩍 물었다.     


“별말은 없었어요. 한번 불러볼래 하더니 부르고 나니까 너 가져! 그러던데요?”

“지우 씨가 표현력이 좀 서툴러서 그렇지 곡까지 준 거 보면 유라 씨 실력 완전 인정한단 뜻이네요.”

“참, 그리고 제 이름도 물어봤어요! 영광스럽게도요!”     


채유라는 많이 기뻐하는 모습과 더불어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아! 나 드디어 데뷔할 수 있을까요? 이 곡으로 꼭 데뷔하고 싶은데.”

“그렇게 될 거예요. 꼭!”     


정남은 일단 채유라를 응원하는 말을 건네긴 했지만 씁쓸한 심사를 누를 길 없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기남에게 지우가 달려왔다.    

 

“매형! 할 말 있어요.”

“응? 뭔데 들어오자마자 이렇게 격하게 반기시나? 흐.”

“내가 작곡한 곡이 있는데 딱 맞는 가수를 찾았어요.”

“그래? 누군데?”

“채유라!”

“채유라라... 아! 아마 연습생이지?”

“연습생이요? 가수 아니에요?”

“어! 가수 시작하려고 준비 중이라는 뜻이야. 노래 잘한다고 들었는데.”

“잘해요. 아주 많이 많이.”     


지우는 예전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표현에는 한계가 있었다.

노래와 작곡엔 천재적이지만 지능은 중학생 정도였고, 어린아이처럼 순수하지만 사회성은 여전히 많이 떨어졌다.

그런 지우를 잘 아는 기남은 그가 이렇게 관심을 갖게 된 인물이 있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런데 처남이 작곡한 걸 채유라한테 주려고?”

“네!”     


아니나 다를까 지우는 1초도 안 돼 즉각적으로 대답했다.     


“그렇게 많은 가수가 곡 달라고 해도 반응 없더니 채유라가 그렇게 맘에 들었어?”

“네! 노래도 잘하고 또... 아니에요! 노래 천재!”     


뜸을 들이다 결국 노래 천재라고 말했지만, 기남은 벌써 그의 의중을 알아차렸다.

슬그머니 미소를 지으며 기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가수라면 당연히 노래 천재여야겠지?”

“채유라 노래 들으면 여기가 아프면서 또 행복해요!”     


지우가 심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기남이 그 말에 반색하며 외쳤다.     


“우리 처남 노래도 그렇잖아! 사람들이 슬퍼지면서 행복해진다고 하잖아!”     


지우가 기분이 좋은지 싱글벙글했다.

그러더니 곧 얼굴이 굳어지며 말을 이었다.     


“다른 사람한테는 말하지 마세요, 매형! 내가 채유라한테 곡 준 거.”     


어차피 다 알려질 일이라는 걸 지우는 깨닫지 못했다.

자기 생각에만 빠진 전형적인 자폐적 증상이었다.

기남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야 말 안 하겠지만 어차피 다 알게 될걸?”

“어? 그런가? 아, 맞다! 작곡가가 나니까.”     


그제야 깨달은 듯 지우가 체념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그럼 다른 여자 가수들도 곡 달라고 또 난리겠다. 그죠, 매형?”     


***     


다음날 정남이 아직 출근 전이라는 걸 기남은 최준혁 부장을 통해 알게 됐다.     


“오늘 지우 씨 첫 TV 방송 출연이라 준비할 일 많은데 매니저가 아직”     


그때 정남이 대표실로 뛰어 들어오며 동시에 입을 뗐다.     


“죄송합니다! 허흐흑!”

“최 부장님은 나가 보세요. 제가 남대리랑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최준혁이 나가자, 정남이 땀을 흘리며 미안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형, 아니 대표님! 제가”

“어제 하려던 이야기나 해 봐. 사랑이냐, 일이냐, 그것이 문제라고 했던가?”

“그게... 아닙니다! 오늘 제가 지각한 건 정말 죄송합니다, 대표님!”

“아니라니? 문제가 사라지기라도 한 거야?”

“사라진 건 아니지만 제가 해결할 겁니다.”

“그래? 알았어. 그럼, 이만 나가 일 봐!”     


대표실을 빠져나가는 정남의 뒷모습을 보면서 기남은 뭔가를 깨달은 듯한 표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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