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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노마드 Dec 12. 2024

세 번째 회귀 23- 회개

정남이 말했다.     


“미안하다고 말해. 열심히 작곡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지우가 갈등하다 내뱉었다.     


“아니... 못하겠어!”     


마음이 약한 지우는 끝내 채유라에게 전화하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가서도 속만 태우다 잠에 빠져들었다.     

한편 채유라는 궁금했다.

지우 캐릭터상 밀당을 할 거 같진 않았다.

채유라가 생각하기에 지우가 약속을 지키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남대리, 즉 정남이 가운데서 방해를 한 것이었다. 

    

‘왜지? 지는 먹기 싫고 남 주긴 아깝다는 건가?’     


채유라는 점점 남정남이란 인간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     


박흥식이 기남에게 전화했다.   

  

<기남아! 네가 지난번 알아보라던 전과자 중한 명이 교도소 수감 중이던데?

김성환이고, 강간치상!>

<그래?>     


그의 이름을 듣자 기남에게 떠오르는 게 있었다.

기남이 기억하기론 그가 바로 두목 격이었다.

기남은 그들 작전상 중요한 시점인 지금 왜 그가 죄를 짓고 잡혀 들어왔는지 의아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들 어렵게 자랐고, 교육도 못 받았는데 그나마 그중 두목 격인 김성환이 실제적인 브레인이었지. 분명 이유가 있을 텐데...’     


기남은 박흥식에게 물었다.     


<아지트는? 어딘지 알아냈어?>

<아직.>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 같으니까 좀 더 속도를 내야 할 거 같은데.>

<알았어! 우리 족집게 도사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니까!>     


박흥식은 대수롭지 않게 농담을 건넸다.     


<형! 이거 절대 만만하게 보면 안 되는 사건이야! 명심해!>

<알았대두! 또 연락할게.>     


기남은 전화를 끊고 생각에 집중했다.     


‘분명 뭔가 있는데... 그게 뭘까?’     


당시 그런 사건이 있었다는 건 뉴스나 TV를 통해 알았었지만, 자세한 내막은 기남도 몰랐다.

그 시절 기남은 엄마 없는 자식 둘을 기르며 살기 바빴다.

기남이 좀 더 당시 기억을 떠올리려 하자 갑자기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잠시 후 기남의 머릿속에 어떤 이미지가 나타났다.     


‘뭐지? 지하실이 보이고, 감방 같은 게 보이는데?

그런데 어울리지 않게 웬 핑크색이지?’     


기남은 머리를 식힐 겸 천천히 머리를 돌리다 갑자기 멈췄다.

뭔가 선명한 게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래! 페이크야! 알리바이를 위한 완벽한 페이크!’   

  

기남은 그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장 핸드폰으로 박흥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흥식이 말해 준 그가 있다는 교도소로 향하며 기남은 생각을 정리했다. 

    

‘교도소 안에서 조직원들에게 범행을 지시한다? 조직원들은 그로부터 지시받고 행동에 옮긴다!’     


기남은 면회를 신청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그가 나타났다.

두목이라고 보기엔 너무도 작은 한 남자가 면회실 안으로 들어왔다.

기남을 보자 그가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누구 쇼?”

“...”

“첨 보는 얼굴인데.”

“내 이름이나 하는 일 뭐 그런 건 필요 없을 테고, 이거 하나만 물읍시다!”

“...”

“아지트 위치!”     


그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기남이 다시 말을 이었다.     


“당신 말 따르던 동생들 다 죽일 셈이요?”

“...”

“아지트 순순히 불면 당신도 정상참작 될 거요.”

“...”

“당신이 분노하는 대상은 억울하게 죽음을 당할 그런 사람들이 아니잖아! 내게 아지트를 말해줘, 어서!”

“당신 누군데”

“그건 중요하지 않소!”     


그가 생각하는 모양새를 취하며 고개를 떨궜다.

그리고 잠시 후 고개를 들며 말했다.     


“아니! 그럴 생각 없어! 난 부조리한 세상에 한풀이할 거거든!”

“응징하려면 제대로 상대를 골라서 해야지! 당신 밑에 있는 조직원들이 그럴 깜냥이 된다고 정말 생각하는 거요?”

“...”

“우린 준비됐어! 내가 지시만 내리면 그들은 즉각 실행에 옮길 거야.”

“생각이란 걸 좀 해 봐. 나한테 이런 걸 말하는 걸 보면 당신 속엔 분노가 가득한 거야. 

그 분노를 꼭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에게 풀어야겠냐고?”

“나보고 어쩌라고?”     


그는 흔들리고 있었다.

기남은 기회를 잃지 않기 위해 그를 달랬다.     


“아지트 말해주면 당신이 저질렀던 살인죄도 어느 정도는 정상참작 될 수 있을 거요.”     


기남의 말에 그가 잠시 멈칫하더니 비웃는 듯 크게 웃어제꼈다.   

  

“하하하! 당신 사람 잘 못 골랐어! 난 더 이상 안 속아! 누구에게도!”     


기남이 그의 속을 읽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어찌 된 일인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기남이 이번엔 그를 변화시키기 위해 애써봤다.

하지만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보였다.

기남은 당황스러웠다.     


‘왜지? 왜 그의 속도 안 읽히고 그를 변화시킬 수도 없는 거지?’     


기남이 나지막이 말했다.     


“내일 다시 오겠소. 그때까지 잘 생각해 보고 결정하시오.”     


일어서는 기남을 그가 물끄러미 쳐다봤다.     

다음날 기남은 다시 교도소로 향했다.

면회 신청을 하자 잠시 후 교도관이 기남에게 다가와 말했다.    

 

“면회 거부랍니다.”     


기남은 영치금을 넣어주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기남은 생각했다.     


‘어찌 된 영문인진 모르지만 내게 있었던 능력이 조금씩 사라지는 듯한데.

아지트를 알아내지 못하면 무고한 사람들이 살해될 텐데 어쩌지?’     


기남은 이 사건을 막아내지 못할까 걱정스러웠다.     

다음날도 역시 기남은 김성환이 있는 교도소를 향했다.

그는 면회를 또 거절했고, 그럼에도 기남은 영치금을 넣어주고 계속 그를 면회 갔다.

일주일 째 되는 날, 그가 처음으로 면회를 거부하지 않았다.

잠시 후 김성환이 면회실에 나타났다.

며칠 새 그는 조금 변한 듯 보였다.

앉자마자 그가 입을 뗐다.     


“만약 아지트를 말하면 어떻게 되는 거죠?”

“아지트를 말해서 일어날 사건을 막고”

“그럼 내 동생들 구속되는 건가요?”

“그렇긴 하지만 죄는 좀 더 가벼워지겠지.”

“그럼 이건 어떨까요?”

“...”

“제 동생들 다 자수시키겠습니다.”

“?”

“그리고 저도 제가 저질렀던 일 자수하겠습니다.”

“잘 생각했어요! 그렇게만 된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전에 제 얘기 하나만 들어주실래요?”     


그가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반장을 했어요. 공부도 제법 했고, 리더십도 있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미술 준비를 안 해왔다고 담임이 날 때렸습니다.

가정형편이 어렵다는 건 담임도 이미 알고 있었죠.

공부도 잘하고 반장인 내가 왜 준비를 못 해왔는지 뻔히 알 텐데 때리는 담임이 미웠습니다.

그 후로도 준비물을 못 챙겨 오면 어김없이 난 맞았어요.

그때부터인 거 같습니다. 세상이 미웠고, 세상에 한을 품게 된 게.”     


기남은 가슴이 아팠다.

어찌 보면 자신과도 무관하지 않은 사연이었다.

기남 자신도 억울한 일을 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보육원 출신이라는 이유로 손가락질받고, 의심받고, 외면당했던 적이.

기남이 차분하게 입을 뗐다.     


“이런 말이 있죠. 한 어린아이를 기르는 건 부모뿐 아니라 한 마을이라는.

어른들의 잘못된 행동으로 말미암아 잘못된 길로 들어서는 경우 꽤 있죠.

하지만 그럼에도 절대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은 있는 거죠.

어려운 환경이라고 누구나 다 비뚤어지진 않거든요.”

“네. 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는 참회하는 듯 보였다.

돌아오는 길에 기남은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억지로 그를 바꾼 게 아니라는 사실과 그가 자수를 결심한 사실 모두가.     

며칠 후 박흥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기남아! 네가 말했던 애들 다 자수했다!>

<그랬어?>     


기남은 모르는 척했다.     


<근데 두목 격이었던 김성환은 자살했어!>

<뭐? 왜? 어떻게?>     


기남은 안타까워 다급하게 외쳤다.     


<교도소 안에서 목을 맸대.>

<...>

<너한테 유서 남겼다더라. 내가 갖다 줄게.>     


전화 통화를 마친 기남은 절망했다.

비록 살인자에 강간치상죄를 범한 범죄자지만 그 또한 어찌 보면 부조리한 사회의 희생자라고 할 수 있을 터.

뒤늦게나마 더 큰 희생을 막고 자기를 믿었던 동생들을 살려낸 그가 안쓰러워 기남은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며칠 뒤 박흥식이 기남의 사무실에 들렀다.

그 또한 침통한 표정이었다.

기남에게 유서를 건네며 박흥식이 입을 뗐다.     


“유서는 안 봤지만, 담당 형사 얘기 들으니 참 사연이 많더라.

머리도 꽤 좋았고, 꽤 살려고 했던 거 같은데 안 됐어.

옛 생각도 나고 그랬다. 나처럼 검정고시 준비도 했었나 보더라고.”     


기남은 무심히 얘길 들으며 유서 봉투를 뜯었다.     


[가신 뒤에 많은 생각을 해봤습니다.

살면서 제게 이렇게 누군가가 끈질기게 설득하고 애써줬더라면 제 인생이 달라지지 않았었을까라는 그런 헛된 망상도 해 봤습니다.

사실 첨엔 속이려고 강간치상으로 들어왔었습니다.

이것도 반성합니다.

제 동생들 부탁합니다.

뒤늦게나마 정신 차리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음엔 돈 가지고 세상 더럽게 만드는 놈들 다 쓸어버리려고 지X파를 조직했었습니다.

하지만 말씀 듣고 회개했습니다.

제가 해친 분들께도 죄송하단 말씀 전합니다.

어머니께도 죄 갚고 새 인생을 걷는 거라 전해주기 바랍니다.]     


기남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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