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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노마드 Dec 14. 2024

세 번째 회귀 24- 대참사 전

기남에겐 김성환이 남긴 여운을 길게 느낄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맞아! 유난히 94년엔 사건과 사고가 많았었지! 이제 곧 또 큰 사건이...!’     


기남은 달력을 봤다.

일주일 후 날짜가 눈에 들어왔다.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다리 붕괴 사고가 일어난 날이었다.

기남은 생각난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박흥식을 만난 기남은 그에게 일주일 후 날짜와 시간을 말해 주며 이렇게 부탁했다.     


“형! 이번에도 믿기 힘들겠지만, 이날 큰 사고가 날 거야.”

“뭔 소리야, 또?”

“무조건 내 말 믿고 형이 해줘야 할 일이 있어!”

“...”

“경찰이든 어디든 연락 가능한 곳 다 동원해서 그날 아침 성주대교 통행을 금지시켜 줬으면 정말 고맙겠는데! 만약 그게 불가능하다면...”
 “왜?”

“그날 그 다리에서 큰 사고가 날 거야. 그러니까”

“좀 알기 쉽게 말하면 안 되겠냐? 네가 큰 사고가 날 거라는 걸 어떻게 알게 됐다든지, 뭐 그런... 이번에도 예지력이냐?”

“말하기가 좀 어려워. 하지만”

“왜 어려운데?”     


박흥식이 몹시 궁금하며 이상하다는 듯 기남을 쳐다봤다.     


“믿기 힘들 거라는 거 알아. 하지만 꼭 내 말 믿고 형이 액션을 취해 줘야만 해. 

그래야 많은 희생자를 막을 수 있어.”

“희생자?”

“응.”

“그러니까 네 말은 성주대교에서 큰 사고가 나고 그 결과 많은 희생자가 생긴다는 거야?”

“응.”     


크게 한숨을 내쉰 후 박흥식이 기남에게 물어왔다.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다리 통행 통제가 불가능하면 적어도 다리 상태를 내일 당장이라도 점검하게 해 줬으면 해.”

“다리를 점검하라고?”

“분명 하자를 발견할 거야. 그러면 다음 조치를 취하겠지. 알아서들 말이야.”     


박흥식이 생각하는 모습을 취했다.

잠시 후 그가 입을 뗐다.     


“믿기 정말 힘들지만, 네 말이라 일단은 또 믿어볼게.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알아볼게.”

“고마워, 형! 꼭 그렇게 해줘!”     

성주대교 사고가 나기 삼일 전 기남은 박흥식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기남아! 아무래도 힘들 거 같다! 다리 통제, 점검하는 거 말이야.>

<...>

<너도 예상은 했겠지만, 근거 하나 없이 말하니까 도무지 먹히질 않네.>

<할 수 없지, 뭐! 아무튼 애써줘서 고마워, 형!>     


기남은 전화를 끊고 생각에 잠겼다.

그는 현실적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뭘까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는 정완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웬일? 너 요즘 무지 바쁘지 않아?>

<응. 그렇지 뭐. 저... 너한테 부탁할 게 있는데 말이야.>     


기남은 정완수 집안사람을 통해 성주대교를 건설한 건설회사 회장과 접촉하고자 했다.

그를 직접 만나 다리 점검을 부탁할 요량이었다.     

그날 저녁 기남은 건설회사 회장이 잘 다닌다는 클럽에 모습을 드러냈다.

저 멀리 그 회장이 소파에 앉아 있는 게 보였다.

기남은 그 앞으로 갔다.     


“안녕하세요? 전 NKN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남기남이라고 합니다.”

“아! 얘기 들었어요. 앉으세요.”     


그는 매너가 몸에 밴 사람처럼 행동했다.

행동뿐만 아니라 목소리며 중후한 분위기가 넘쳐흘렀다.     


“그런데 무슨 일로 나를 보자고 했죠? 

아! 나도 노래 참 좋아합니다.

거기서 배출하는 요즘 가수들 노랜 아니지만. 하하.”

“아, 네. 제가 오늘 뵙자고 한 건 다름이 아니라”     


그때 그 회장 곁으로 웬 멋진 여성이 다가왔다.     


“회장님! 여기서 뵙네요!”

“오, 조 여사! 오랜만입니다.”     


그녀가 고갯짓을 살짝 하며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회장 역시 부드러운 미소로 화답했다.     


“지금 좀 바쁘니까 나중에 연락 줘요!”     


조 여사라는 여성이 자리를 뜨자 기남이 건조하게 말을 이었다.     


“회장님! 삼일 후 큰 사고가 일어날 겁니다.”

“뭐라고요? 사고? 무슨 사고?”

“그게...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회장님 건설회사에서 만든 다리가 붕괴됩니다.”

“뭐요?”     


그는 기남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바쁜 시간을 내 나왔더니 그게 지금 무슨 말이요?”     


그는 최대한 예의를 지키려고 했지만, 어이없다는 표정은 숨기지 않았다.     


“시간이 없습니다! 성주대교 다리 점검 오더 내리시죠!”

“허허! 앞뒤 없이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냐고요?”     


그의 리액션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제발 속는 셈 치고 그렇게 해주십시오. 부탁입니다.”

“그런데 말이요. 좀 이상한 게... 왜, 왜 그걸 당신이 내게 부탁하는 거요?”

“그건...”

“연예 기획사 대표면 차라리 내게 예쁜 여자나 소개해 주겠다고 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의 입에서 엉뚱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기남은 평정심을 유지하며 말을 이었다.     


“이번 사고로 회장님 회사는 성패의 기로에 서게 될 겁니다.”

“...”

“제 말을 믿기 힘드실 거라는 거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건 분명히 일어날 사고입니다.”     


생각에 잠겨 있던 회장이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좀 알아듣게 말을 해야지 않겠소? 날 납득시켜 보란 말이요.”

“제겐... 예지력이 있습니다. 해서”

“허허, 이 사람 생긴 거와 다르게 참 실없는 사람이구먼! 

바쁜 사람을 불러낸 것도 모자라 건설 경력이 20년이 훌쩍 넘은 우리 회사를 뭘로 보고 그딴 소릴 하는 거요!”     

회장이 흥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보시오! 우리 회사가 사우디에서 어떤 건설을 한 줄이나 아시오? 

예지력? 당신이 무당인지 뭔진 모르겠지만 됐소! 난 이만 일어나겠소!”     


기남에게 이야기할 기회도 주지 않고 그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문 쪽으로 향했다.

기남은 절망스러웠지만 꼼짝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를 설득할 수 없다는 걸 알아서였다.     

집으로 돌아온 기남은 할 수 없이 아버지 힘을 빌려보기로 했다.

아버지는 잠자리에 들었다 깬 목소리였다.

전화기 너머 진희가 쫑알대는 소리가 먼저 들렸다.     


<몇 신데 전화야?>

<그래. 나다! 웬일이냐?>

<아버지! 부탁드릴 게 있어 늦은 시간임에도 전화드렸습니다!

꼭 제 부탁 들어주셔야 해요.>     


***     


다음날 회사에 출근한 기남은 마음이 불안해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최준혁이 들어왔다가 기남 표정을 살피더니 조용히 나가려 했다.     


“최 부장님! 무슨 일 있으셔서 오신 거 아닌가요?”

“네. 그런데 대표님 생각이 깊으신 듯해 잠시 후에 다시 들르려고요.”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전.”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최준혁이 나가고 조급한 마음에 기남은 전화를 들었다.

아버지에게 다시 전화하기 위해서였다.     


<아버지! 어떻게 될 거 같으세요?>

<응. 내가 말은 넣어놨는데 좀 기다려 보라는구나.>

<아! 시간이 없어요. 당장 내일모레면... 아니, 알겠습니다.

연락받으시는 대로 저한테 전화 주세요.>     


통화를 마친 기남은 답답한 마음에 현장으로 달려가기 위해 사무실을 나섰다.          

다리 위를 쌩쌩 달리는 차들을 바라보며 기남은 생각에 잠겼다.     


‘이제 이틀 뒤면 국내 유수 건설회사에서 만든 다리가 무너져 내린다.

도대체 어떤 문제가 있었던 걸까?’     


분명 현생에서 사고를 접하고 신문을 읽었던 기억은 있는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문제점이 뭐였는지 기억한다면 일은 훨씬 수월할 거 같은데, 그게 안 되니 미칠 거 같았다.

답답한 마음에 기남은 다리 근처로 걸어갔다.

그리고 최대한 접근할 수 있는 곳까지 내려가려고 시도했다.

그때 갑자기 경찰 한 명이 나타나 그를 제지했다.     


“이봐요, 아저씨! 거기서 뭐 하시는 거예요?”          


사무실이 아닌 집으로 돌아온 기남은 다시 성북동집으로 전화를 넣었다.     


<아버지! 연락받으셨어요?>

<응. 하겠다고 말은 했으니까 기다려 보자꾸나.>

<아니, 그렇게 한가하게 대처할 일이 아니라니까요.>

<근데 말이야. 원래 행정 절차가 복잡해서 이건 나라님이 와도 어쩔 수 없다는데 난들 어쩌겠냐?>

<네. 알겠어요. 그만 들어가세요.>     


전화를 끊은 기남 곁으로 연주가 다가왔다.

이제 제법 배가 많이 부른 연주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자 기남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당신, 많이 힘들어 보이네!”

“응. 뭐 다 이러는 건가 보던데. 내 걱정은 말고 당신 요즘 많이 힘들어 보이는데 무슨 일 있어?”     


기남은 잠시 갈등했다.

얘길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연주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내가 들어서 도움이 안 될 거 같아 그러나 본데 혹시 또 알아?”

“...”

“아주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내게 떠오를지?”

“기가 막힌 아이디어?”     


기남이 머뭇거리자 연주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아, 이 사람아!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거든!”     


영문을 모르는 연주는 기남을 달래주고자 농담 섞인 말까지 하고 있었다.

기남은 엄청난 사실을, 그것도 많이 충격스러울 수 있는 일을 임신 중인 연주에게 말하는 게 맞는 건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해서 입술만 달싹였다.

그런 모습을 보던 연주가 말했다.     


“이건 뭐 곧 대재앙이라도 맞을 형국일세!”     


마침내 기남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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