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무릎이 기억해도 마음이 먼저 간다.
“왜 산에 가요? 올라가면 다시 내려와야 하잖아요.”
나는 평생 산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초록빛 숲길을 걷는 건 좋아했지만, 굳이 땀을 뻘뻘 흘리며 힘들게 정상까지 올라가는 행위는 납득이 안 됐다. 아름다움은 평지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데, 왜 굳이?
그런 내가 지리산 종주라니.
30대 중반, 산을 좋아하던 남편의 오래된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마침 추석 연휴도 길었고, 초등학교 3학년이던 딸아이에게도 특별한 추억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2박 3일간의 지리산 종주길에 올랐다.
시작은 꽤 낭만적이었다.
알록달록 물든 가을 단풍이 우리를 반겼고, 걱정과는 달리 딸아이가 제일 신났다. 아프리카 초원을 누비는 가젤처럼 통통거리며 걷는 아이의 뒷모습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지리산의 품을 깡충깡충 뛰어다니며 마음껏 누비는 그 모습이 대견하고, 멋졌다.
반면 나는 이틀째부터 무릎이 시큰거렸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천근만근. 무릎 관절이 “내가 왜 이 고생을 해야 하죠?” 하고 항의하는 듯했다.
아이는 그런 나를 보며 “엄마, 힘내!”라고 외치면서도, 순천에서 오신 대학교 교수님 부부와 친구가 되어 장터목 산장까지 신나게 걸어갔다. 교수님 부부는 “따님이 참 밝고 똑똑하다. 너무 재미있게 이야기했다”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고, 나는 고통을 참으며 조용히 ‘나는… 재밌지… 않다…’고 되뇌었다.
그러던 중 마지막 날, 천왕봉을 오르기 위해 새벽어둠 속을 헤집고 걷기 시작했다.
정말로, 정말로, 다시는 이런 산에 오지 않겠다고 백 번쯤 다짐했다.
그런데 그 모든 다짐이 무너진 건, 천왕봉 정상에서였다. 붉게 물들기 시작하는 하늘, 그 위로 장엄하게 펼쳐진 운해.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지리산 일출을,
그것도 지리산을 처음 찾은 내가,
운 좋게 보게 된 것이다.
그 순간, 모든 고통이 사라졌다.
딸아이의 반짝이는 눈동자,
여러 번 지리산 천왕봉을 올랐지만
일출은 처음 본다는 감동에 젖은 남편의 얼굴,
그리고 벅찬 내 마음까지.
마치, 지리산이 “그래, 네가 고생 좀 했으니 이거 하나 보여줄게”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그 일출은 우리 가족에게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하산길의 고통은 더욱 심해졌다. 계곡길을 내려올 때 헬기를 불러 달라며 거의 기어서 내려왔고 다시는 안 온다고 다시 오면 사람이 아니라고 다짐했지만, 그 다짐은 예상보다 빨리 흐려졌다. 시간이 지나고, 무릎이 아파서 쩔뚝거렸던 그 기억까지도 웃음이 된다. 가끔 힘들 때면, 이상하게 지리산이 떠오른다.
해무가 휘감은 능선, 발아래 구름바다, 그리고 천왕봉의 그 붉은빛.
힘들었지만, 그래서 더 깊이 남은 그 순간.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요즘은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그때는 가족과 함께한 여정이었다면, 이제는 오롯이 나 혼자, 내 두 다리로 지리산을 다시 걸어보고 싶다고. 물론 내 무릎은 아직도 “진심이야?”라고 되묻지만, 그 항의조차 정겹게 들리는 걸 보면… 정말 다시 가고 싶은 게 맞는 모양이다.
산을 오르는 게 목적이 아니라,
힘든 걸음 끝에 만나는 ‘나’라는 사람을 확인하는 게 진짜 산행이라는 걸,
그날 천왕봉에서 처음 알았다.
그래서 생각한다.
더 늦기 전에,
아직 내 무릎이 ‘결사반대’를 외치기 전에,
지리산 종주를 꼭 한 번 다시 해보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