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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동분 소피아 Mar 06. 2018

산골겨울에 먹는 물곰국 한 그릇의
가치

귀농아낙의 시골밥상

산골에서 혹독한 겨울을 잘 나기 위해서 행하는 의식같은 것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물곰국을 먹어야 제대로 겨울을 지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귀농하고 이곳 울진에 와서야 물곰국을 처음 먹어봤는데 귀농 주동자인 초보농사꾼은

일찍부터 그 맛을 알고 겨울만 되면 도끼눈을 뜨고 울진시장을 누볐다.    

(물곰을 씻어 놓았다.)


겨울 어시장에서 덩치에 비해 눈도 작고, 제일 느려터지고, 사람으로 치면 게을러 보이고, 야물어 보이지 않는 생선을 찾으면 얼추 물곰으로 때려 맞출 수 있을 것이다.

좌판에 드러누워 있는 모습에서 그것이 얼마나 입에서 부드럽게 목구멍을 타고 미끄러지듯 뱃속으로 들어갈지도  감잡을 수 있다.     

겉살은 내장까지 다 비칠 것만 같을 정도로 투명하고 연약해 보인다.

어쩌면 내장보다도 더 연한 살을 갖고 있으니 그가 바다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괜한 걱정까지 든다. 

내가 물고기의 삶을 걱정하는 것은 울진의 물곰이 최초이다. 

‘그렇게 물러터져서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아갈래?’ 뭐 이런 쓸데 없는 걱정 말이다.     

김훈 작가는 <라면을 끓이며>에서 울진의 물곰국에 대한 감동을 상세하게 언급했다.


“물곰의 살은 근육도 아니고 국물도 아닌 그 완충의 자리에서 흐느적거린다. 

그 살은 씹어 삼키는 살이 아니라 마시는 살이다.

이 완충의 흐느적거림이 인간을 위로한다. 물곰 살을 넘길 때, 생선의 살이 인간의 살을 쓰다듬는다.“ -김훈, <라면을 끓이며>에서-    

 

(살이 투명하다.)

초보농사꾼을 위해 곰국을 끓인다.

이곳 사람들은 곰국을 끓일 때 묵은지를 넣는다.

오래 묵힌 것을 넣는 것과 물곰의 흐느적거리는 형태가 왠지 닮아 있다.     

이번에는 초보농사꾼이 물곰을 사왔는데 아예 손질을 해달라고 해서 가져왔기 때문에 아쉽다.

어쨌거나 묵은지에 굵은 파와 마늘만 넣고 푹 끓인 물곰국을 좋아한다.  

   

일단 한 번 씻어 물기를 빼고, 겨울 무를 꺼내와 썰어넣는다. 

묶은지도 총총 썰어넣고, 청양고추와 대파도 넣는다. 

나중에 마늘을 찧어 넣고 간을 맞추면 된다.     

푹 끓인 곰국을 먹으면 땀이 쭉 난다는 초보농사꾼...

그러나 마주보고 같이 먹은 난 땀 사촌도 안난다.

음식도 사람과 궁합이 있는 것 같다.     

김훈 작가는 물곰국은 아침에, 뱃속이 비고 허전해서 축축한 위안이 필요할 때 먹어야 제맛을 알 수 있다고 했는데 초보농사꾼은 한 솥 끓여놓으면 아침, 저녁으로 한 사발씩 먹는다.      

겨울이면 항상 물곰이 시장에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잡히는 때가 있기때문에 매번 허탕치고 온 적이 많다.

올해도 곰국을 한 솥 먹었으니 겨울을 잘 이겨내고 봄을 맞을 준비 중 하나는 갖춘 셈이다.

당신은 이 겨울의 터널을 빠져나오기 위해 어떤 음식을 준비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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